해인사의 내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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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해인사 개산 1,200년 - 원택
1997년 02월 180호
해인사로 출가하여 기야산에 머문지도 벌써 이십오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갔다.
처음 출가하였을 때 누가 “스님, 가야산은 어느 계절이 가장 좋습니까” 하고 물으면 서슴없이 “가을 단풍철입니다” 하고 대답하곤 했다. 그런데 차츰 살면서 누구에게 또 그 질문 받으면, 이제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글쎄, 어느 계절이 좋다고 해야 되지?’ 하고 망설이게 된다. 산에 오래 머물러 살다보니 그 변화하는 계절마다의 특색과 묘미가 있어 선뜻 “가을 단풍철이 좋다”고 대답할 수 없게 되었다.
로마를 두고 말할 때, 삼 일 둘러 본 사람은 로마를 다 알고, 석 달 둘러본 사람은 로마를 알 것 같고 모를 것도 같고, 삼 년을 살면 로마를 모른다고 한다고 한다. 그와같이 가야산에 오래 머물러 사니까 어느 계절 좋지 않은 계절이 없다. 그래도 딱 한 점을 찍어라 하면 가야산 가득히 함박눈이 내려 쌓일 때라고 하고 싶다.
요사이 국민들도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서 문화유산 더미 속에 살고 있는 우리 스님들로 하여금 당황하게 한다. 소임을 살 때 대적광전 앞 탑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한스님이 오더니 “스님, 저기 한번 가보시지요.” 해서 무심코 따라 갔더니 현당 끝 돌담의 어느 부분을 가리키면서 “스님은 이걸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였다. 그 곳은 축담을 높게 쌓아 놓았는데 그 밑부분 가까이에 짐승 얼굴이 조각된 돌덩이가 거꾸로 박혀 있었다. 탑이나 계단의 돌조각이었을 돌덩이가 대접받지 못하고 그 곳에 그렇게 박혀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구석에 있어서 망정이지 정말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지금은 어찌 해 볼수도 없는 상황이다.
큰스님 사리탑을 건립하려고 여기저기를 둘러보았지만 오늘 과연 옛 선조들의 돌조각 솜씨를 따라갈수 있겠느냐에 대해서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 자연히 옛사람들의 예술 정신이나 솜씨에 대해서 경탄하지 않을 수 없는 심정이 되어 갔다. 그러다가 95년 l2월에 해인사 고려팔만대장경판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기쁨을 만끽하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몽고 침략이 계속되어 경주의 황룡사 9층탑이 살레탑에 의해 불 타고 곳곳의 절과 탑들이 파괴되었다. 그 뒤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그들이 거쳐 가는 곳마다 사찰이 화염에 휩싸이게 되니, 화엄사 각황전과 신라의 석경은 그래서 불타 버리고 지금은 석경의 파편들이 국보로 지정되었다. 최근에는 육이오 전쟁으로 인해 전국의 크고 작은 사찰들이 전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재로 변해 갔다. 한암 큰스님의 원력이 없었다면 상원사 문수동자상도 우리는 영영 보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런 생각 속에서 고려팔만대장경이 어떻게 이렇게 온전히 보존되어 올수가 있었을까를 생각하면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서가 아니라 부처님과 많은 보살들의 보살핌이라고밖에 생각할수없다.
고려팔만대장경이 서기 1251년에 완각되었다 하니 2001년이면 완간 750년이 된다. 750년 동안 아무런 잘못없이 경판이 보존되어 온 것은 고려사람들이 얼마나 정성을 기울여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는지를 반증해 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여러가지 학설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강화도 선원사에 모셔져 있던 팔만대장경판이 1398년 5월에 서울 지천사로 옮겨지고 그 해 후반기에 해인사로 옮겨졌다고 하니 1998년 가을이면 강화도에서 해인사로 고려대장경판이 옮겨 온 지 꼭600년이 되는 해이다.
여기서 한번 생각해 볼 것은 선조들의 지혜이다. 강화도에서 해인사로 옮겨지지 않고 다른 산으로 옮겨졌다면 700여 년의 세월 속에 일어난 병화兵火로 아마 잿더미로 변하였을 것이 아니겠는가. 그럼 가야산 해인사를 선택하여 민족의 크나큰 유산으로 남게 하였을 그 판단을 누가 하였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이태조와 조정 중신들의 판단이었겠지만 나는 왕사로서의 무학대사를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무학대사의 안목으로 가야산 해인사만이 고려팔만대장경을 잘 보존할 수 있는 곳이라고 선택하는 주도적 역할을 하였을 것이라고 본다. 무학대사는 1405년 금강산에서 입적하였다.
그래서 앞으로 해인사 불사는 750년 동안 잘 보존되도록 책임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해인사의 사세가 든든해야 된다. 또 끝없이 고려팔만대장경의 위대성을 일반 국민에게 일깨워 주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세계인의 화합을 떨치는 월드컵대회가 개최되는 2002년은 해인사 창건 1200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이 21세기를 향하는 6년 동안에 해인사를 어떻게 발전, 변모시켜 나가야만 새로운 시대에 그 역사적 역할을 다할 것인가를 심사숙고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침 이러한 때 해인사는 일만여 평에 이르는 구 해인초등학교 자리에 21세기를 맞이히는 대작불사大作佛事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그 대작불사의 내용들은 첫째, 성보유물관, 둘째, 대불大佛조성, 셋째, 참선수련원 넷째 만물전 및 국제회의장 건립, 다섯째, 대장경연구소및 도서관건립, 여섯째, 영빈관건립이다.
앞으로 육 년 동안 이런 대작불사를 성취하여 서기 2002년이 되면 “한국의 해인사에서 세계의 해인사로”, “세계
모든 불자들의 참선 수행터로’, ‘세계문화유산의 순례지로” 해인사 창건 l200주년을 기념하고 싶은 것이다.
삼한일통三韓一統의 결심을 다진 신라의 지도자들은 국민정신의 결집을 위해 진흥왕은 황룡사를 창건하고, 선덕여왕은 구층탑을 조성하여 아홉 이웃 오랑캐 나라들이 항복해 올 것을 발원하였다. 이제 다시 분단된 나라의 통일과 겨레의 화합을 기원하고, 지구촌시대에 사는 배달겨레 미래의 웅비를 비는 발원터로써, 국제화시대에 걸맞는 세계불교의 중심지로써 역할을 다하는 해인사가 되기를 바란다.
또한 민족의 통일과 화합을 축하하는, 월드컵 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기원하는 훌륭한 기념물이 되기를, 남북의 신도와 세계의 불교도들이 화목한 모습으로 불공을 드리는 장엄한 불전이 되기를 바란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