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통일체의 상징 비로자나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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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의 부처 - 장휘옥
1997년 02월 180호
불교를 믿든 믿지 않든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로, 적어도 과거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리 생활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 한국 문화 속에 면면히 흘러 내려온 사상에 있다. 「화엄경」을 중심으로 형성된 화엄사상이 바로 그것이다.
「화엄경」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은 신라시대이며, 그 뒤 화엄사상은 우리 문화와 활발한 접목을 꾀하면서 한국 불교 교학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 왔다. 신라시대에는 원효나 의상과 같은 고승들에 의해 해동 화엄으로서 신라불교의 중심이 되었고, 고려시대에는 화엄교학을 중심으로 하나의 종파를 성립하였다. 또한 불교의 모든 종파가 선종과 교종으로 통합된 조선시대에도 화엄은 교종의 중심 교학으로, 강원의 승려는 물론 참선하는 승려들에 의해서도 끊임없이 계승되어, 오늘날 한국불교사상을 지탱하는 큰 뿌리가 되었다.
화엄사상은 한국의 문화발전에도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문화재로서 중요한 불국사나 해인사와 같은 한국의 큰 사찰 가운데는 「화엄경」의 교주인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화엄 사찰이 많으며, 한국 각처 명산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비로봉이라는 이름도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상징하여 붙인 이름이다. 이처럼 화엄사상은 예술적인 아름다움의 형태를 통해서도 우리와 깊은 관련을 맺어 왔다.
이와 같이 우리는 지금 알게 모르게 화엄사상을 간직한 채 생활하고 있으면서도 막상 「화엄경」이 어떤 경전인지는 잘 모르고 있다.
「화엄경」의 정확한 제목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이다. ‘대방광’ 이란 대송, 곧, 진리를 의미하고, ‘불화엄’ 이란 아름다운 연꽃으로 옥대를 장식하듯이 보살어 갖가지 꽃으로 부처님의 세계를 장식한다는 의미다. 이 경의 교주는 비로자나불이다. 바이로차나
Vairocana라는 범어를 발음대로 번역한 것인데, 뜻은 태양의 광조光照 작용을 신격화한 이른바 ‘광명의 부처님’을 말한다. 이것은 마치 태양이 일체 세간의 어둠을 없애고 일체의 만물을 성장시키는 것처럼, 우주에 두루가득해서 우주의 구석구석까지 무한한 빛을 비추는 우주의 통일체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말하자면 광명 그 자체가 바로 비로자나불인 것이다.
화엄교학에서는, 비로자나불은 삼세간三世間이 융화하여 그 사이에 어떠한 차별도 두지않는 원만무애법계의 불신佛身, 다시 말하면 비로자나 부처님의 지혜로서 비추는 경계를 모두 통틀어 불신이라 하기 때문에 산이나 강도 부처님의 본체이고, 어리석은 중생의 몸도 부처님의 본체이며, 깨달은 세계의 법신, 보신, 화신의 삼신도 부처님의 본체라 힌다. 이렇게 생각하면 계곡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소리도, 소니무 끝에 부는 바람 소리도, 처마 끝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도 모두다 비로자나부처님의 사자후가 되는 것이다.
소화엄경이라 할수 있는「범망경」에는 비로자나불에 의한 우주의 통일적인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우주 전체를 천엽의 연꽃으로 나타내어(연화장 세계), 그 연꽃의 중심에 비로자나불이 앉아 계시며, 오른손은 모든 사람에게 공포를 없애 주는 무외의 공덕을 베푸는 시무외인施無畏印을 하고, 왼손은 모든 중생의 원을 들어주는 여원인典願印을 하고 계신다. 그리고 천엽 하나하나에는 비로자나불의 응현인 대석가大釋迦가 중심을 이루고(千釋迦), 하나의 잎이 다시 백억의 세계로 나뉘어 그 백억 세계의 하나하나에 대석가의 분신인 소석가小釋迦가 자리잡고 있다(백억석가)고 설하였다.
「화엄경」은 일반적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성도한 지 그 두번째 되는 7일(14일째)에 금강보좌를 떠나지 않고 바로 그 자리에서 해인삼매海印三味라는 삼매에 든 채, 문수보살, 보현보살과 같은 상근기의 보살들을 위해 스스로 깨달은 내용을 설한 것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리불이나 목건련과 같은 부처님의 제자들(聲聞)은 그 자리래에서 함께 들었어도 이해할 수 없었으며, 따라서 석가모니가 성도한 뒤 재자들을 위해 최초로 설법한 내용을 수록해 놓았다는 「아함경」으로도 전해질 수 없었다고 한다. 이와같이 「화엄경」은 언어로 묘사할수 없는 부처님의 깨달음의 경지를 언어로 표현해 냈다고 하는 데 그 특색이 었다.
「화엄경」에는 여러 종류의 삼매가 보이지만, 「화엄경」전체를 일관하는 삼매는 해인삼매이다. 일반적으로 불타의 설법은 먼저 삼매에 들어 사려와 분별을 끊고 망념과 망상을 억제하여 마음을 한곳에 모아 사유한 뒤, 삼매에서 깨어나 설하는 법문-예를 들면 「법화경」의 무량의처삼매無量義處三昧, 「반야경」의 등지삼매等持三味 등-인 것에 견주어, 이것은 삼매에 들어간 채 깨어나지 않고 삼매 그대로의 상태에서 설한다고 하는 점에서 다른 경전과 구별된다. 이런 까닭에서인지 「화엄경」은 부처님 자신이 설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 주변에 모인 수많은 보살들이 삼매에 들어 부처님이 깨달은 내용을 감득한 뒤, 부처님의 가피력을 받아 설한다.
여기서 ‘해인’이란 비유로 쓰인 말이다. ‘해’ 란 끝없이 깊은 바다라는 뜻이며, ‘인’이란 도장 찍은 듯이 나타닌다는 의미이다. 넓고 깊은 바다에 바람과 파도가 잠들면 수면에는 삼라만상이 도장 찍은 듯이 한꺼번에 나타난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의식을 통일하여 마음속에 무지(無明)의 바람이 자고 망식妄識-잘못된 인식주관-의 파랑이 일지 않으면 절대지혜의 진실한 마음에는 무한한 시간에 통하고 무변한 공간에 두루하는 우주 일체의 진실한 모습이 각자 그 모습대로 한꺼번에 도장 찍은 듯이 그 빛을 발하게 된다. 이것이 해인삼매의 경지이다.
현재 우리가 접하고 있는 「화엄경」은 처음부터 하나로 묶어진 것이 아니라, 각 장章이 독립된 경전으로 성립되었다가 4세기쯤에 중앙아시아의 우전국 또는 그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서부 인도의 어느 지역에서 집대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렇게 집대성한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한 것에는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중국 동진 시대에 불타발타라가 번역(418-420)한 60권「화엄경」이고, 둘째는 당나라 시대에 실차난타가 번역(695-699)한 80권「화엄경」, 셋째는 같은 당나라 시대에 반야삼장이 번역(795-798)한 40권 「화엄경」이다. 여기서 40권본은 60권본과 80권본 가운데 ‘입법계품’ 만을 따로 독립시켜 만든 것이므로 완전한「화엄경」은60권과 80권 「화엄경」뿐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