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교 신도가 아니지만 전주 모악산 금산사를 지주 찾는다. 인간을 구원하러 오실 내세불인 미륵을 보기 위해서이다. 광활한 김제 만경평야를 어머니처럼 품에 안은 모악산의 미륵 부처는 풍요한 땅에 살면서도 억압과 가난에 찌든 서러운 백성들을 구원해 줄 해방신으로 신앙되고 었다.
그래서인지 이 고장은 천하는 만민의 공유물(天下爲公)이라 외치며 대동계大同契를 조직하여 혁명의 봉화를 올렸으나 역적으로 죽은 정여립이 활동한 곳이며, 제폭구민除暴救民 척양척왜斥洋斥倭 깃발을 들고 일어선 동학농민혁명이 시발된 곳이며, 인류의 상생해원相生解免을 주장한 강일순의 증산교가 발원된 곳이며, 한말 최익현이 항일 의병을 기의起義한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이 곳은 미륵 신앙과 해방의 정신이 산맥처럼 면면히 이어왔고 강물처럼 도도히 흘러오고 있는 고장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금산사 미륵에 대한 나의 인상은 자비로운 모습이 아니라 근엄하고 위협적인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오늘도 이 곳을 찾아 미륵부처를 우러러 보고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 당시 민중들이 장군감은 힘있는 해방신을 원했던 것일까? 혹시 신라조정이 미륵전을 조정하고 자신의 권력을 미륵의 권위와 동일화함으로써 백성들의 소원을 내면화시키고 제압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이러한 느낌은 어릴적부터 지금까지 나의 뇌리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수수께끼이다. 나는 미륵전 앞에 서기만하면 처음으로 이 곳을 찾은 어린 시절 추억이 되살아난다. 아니 어쩌면 이러한 옛 추억이 그리워 이곳을 더욱 자주 찾는지 모른다.
내가 금산사 미륵을 본 것은 초등학교 졸업여행을 이 곳으로 오게 되면서였다. 내게 이 여행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저녁밥을 먹고 드넓은 절방에 학생들이 모두 모여 벽돌림으로 노래와 장기자랑이 시작되었다. 내 목소리는 점병이라 이런 때는 은근히 오금이 질렸으나 나는 다행히 사회를 보았고 아무도 나를 지명하지 않았다. 그런대로 넘어가는가 했더니 뜬금없이 어느 여학생이 안심하고 있던 나를 놀라게 했다. 그것도 은근히 내가 좋아하는 수줍고 얌전한 여학생이 용김하게 나를 지명한 것이다. 모두들 뜻밖의 사건에 우하! 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것은 내 평생에 처음으로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게 된 사건이다. 나는 가슴이 뛰고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어떻게 노래를 불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나의 금산사에 대한 추억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나는 금산사에 도착해서 삼 층 불전 앞에 서 있는 거대한 미륵을 보고 질겁을 했다. 부처님은 그림에서만 보았던 석굴암의 부처님처럼 자비로운 모습을 상상했고 산제당 부처님도 길가 바위에 그려진 부처님들도 모두 소탈하고 인자한 모습이었는데 이 미륵은 너무나 커서 얼굴을 올려다 보아도 잘 보이지 않고 무서운 마음뿐이었다. 나는 겨우 미륵의 발만 보고 그냥 나와 버렸다. 어째서 이 부처님은 이처럼 거대하고 무섭고 위협적인 모습을 하고 삼 층 건물을 뚫고 나갈 듯 갇혀 있는 것일까. 나의 상상력을 완전히 압도해 버렸다. 은진 미륵은 노천에 서 있으므로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 금산사 미륵의 경우처럼 노천에 안치할 수 없는 목불을 삼층 높이로 옥내에 조성한 것은 보는 이를 놀라게 하려는 계획된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나의 이러한 미륵에 대한 의아스런 첫 인상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금산사 미륵부처님은 당시 정복자인 당나라 병사들과 이들 외세를 끌어들인 신라 병사들에게 무참히 짓밟히고 착취당하며 피눈물을 흘려야 했던 백제 유민들이 구원을 기도하던 대상이었다. 그러므로 이 고장 백성들은 수백년을 이 금산사 미륵에게 빌어 왔고 지금도 빌고 있다. 오늘도 자기들을 구원하러 오지 않은 이 미륵을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민중들은 또 무엇을 빌고 있을까? 아니면 미륵은 이미 이 세상에 왔다는 말인가? 고구려를 부흥시키겠다던 궁예도, 백제를 부흥시키겠다던 견훤도 스스로 자기가 미륵이라고 자처하지 않았던가? 아니면 미륵 부처님은 우리 마음 속으로만 올 뿐, 영원히 현신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늘 따라 미륵의 모습은 으시시 한 기분까지는 들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도 미륵 부처님은 언제나처럼 변함없이 위엄과 무위를 자랑하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고 나는 미륵을 바라보며 옛추억과 한없는 헛된 상념에 젖는다.
부처의 발심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그의 계획은 무엇이었을까? 인간은 노동을 통하여 재화합 생산하고 집단생활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으며, 아울러 노동의 경험을 기억하고 전승하며 자기와 동류 집단을 의식하고 조화해 나 갈 수 있는 존재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노동은 헛된 것이 아니며 생산은 자연을 빼앗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문화를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기억의 축적과 전승, 욕망과 노동을 버린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 짐승과 같은 자연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화를 모두 헛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또 과연 인간이 욕심을 버리면 진정 행복한가? 부처가 욕망을 버렸다면 그것은 생명체가 아니며 돌부처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프로이트는 성性적 욕망조차 헛된 것이 아니라 가장 진실한 인간의 모습이라고 보지 않았는가? 만일 부처가 힘든 노동을 하지 않아도 먹거리가 풍부한 아열대지방이 아니라 먹거리가 부족한 추운 지방에서 태어났다면 물욕과 성욕 등 욕망을 버리라고 강조하지도 노동과 집단의 중요성을 놓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부처는 당시 성을 생명 창조의 근원으로 보고 성기와 다산을 숭배하는 풍조가 인구 증가와 천연의 먹거리를 부족하게 하여 고통스런 노동이 요구되었고 급기야 전쟁이 일어난 원인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나의 상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래서 나는 절을 자주 찾는다. 사실 내가 부처를 좋아하는 것은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진리를 깨닫지 못한 어리석은 백성이나 벌레같은 미물까지도 사랑했기 때문이다.
나는 절대적 진리보다도 평화를 더 소망한다. 절대적 진리는 평화를 보장하지 않는다. 나는 진리보다 자비로운 부처를, 그리고 국가, 제도, 사회, 진리라는 보편적인 허상의 이름에 의해 억압 받는 민중을 해방하러 온다는 미륵을 더욱 좋아한다.
나는 평생 헛된 추억과 모든 것을 의심하는 미망을 버리지 못할 것이며, 따라서 부처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미망을 안고 절을 떠난다. 그러나 나는 미륵을 보기 위해 이 절을 다시 찾을 것이다.
1997년 1월 12일 금산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