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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날 포행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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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대 - 혜만 1997년 01월 179호
다른 겨울과는 달리 올 겨울 해인사에 꽤 많은 눈이 내렸다. 해인사 모든 스님들이 열심히 수행하고 마음이 청정 해서인지 눈마저 온 산사를 깨끗하게 덮었다.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는 날에는 학사대를 따라 걸어 본다. 되돌아보면 발자국이 줄줄이 따라 와서는 살며시, “스님, 스님은 열심히 수행하나요? 맡은 바 모든 일에 충실하고 있나요?” 하고 물어 보는 듯하다.
되돌아보면 길고 긴 지난 모든 날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라 하여도 지나친 말어 아닌 듯 싶다. 승僧, 속俗을 포함해 모든 일에는 기쁘 즐겁고 행복한 일 가운데도 슬픔과 괴로움이 따르는 것 같다. 중생의 일생이란 지나고 나면 한순간에 불과 하지만 좀더 높은 자리 좀더 많은 재산을 모으려고 아무런 생각없이 가리지 않고 몸부림치면서 살아간다. 추구한 목표가 웬만큼 이루어졌어도 만족하지 못하고 끝없는 욕망의 늪에서 헤매면서 살아가는 듯하다. 좋은 일, 좋은 자리 하며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며 정신 없이 달려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권력과 물질을 이루었다 하여도 인생을 되돌아보면 과연 지금 위치에 처해져 있는 자신을 발견 하게 된다. 무엇을 위하여 태어나고 무엇 때문에 이렇게 살았나하는 의구심이 생기고 지난 날에 대한 회의를 느끼며 자책하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쯤이면 벌써 인생의 끝이 보여 돌이킬 수 없는 업보가 쌓여 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 자신인 “나” 란 바로 무아無我이니 어디로 가고 오고 할 것이 없는 존재라고 설명하셨다. 자기 자신만 무명해서 “탐貪, 진嗔, 치痴, 삼독三毒에 빠져 자신만이 군림하고 있는 것처럼 굳게 착각하고 있다. 허상은 색色이므로 무상無想해서 어느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이 없고 바뀌지 않는 것이 없다. 만일 내가 허심이라면 나 또한 무상한 존재로서 그것을 믿는 자체가 중요하다. 허상을 박차고 마음을 털어 버린다면 해탈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인생의 목적은 도대체 무엇일까.
철학자들은 지아발전 또는 자아실현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밀씀하시기는 우리의 삶이 결국 집착으로 뭉쳐진 자신이 결국은 내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셨다. 인과응보 중에서 선을 행하면 선하게 되고 악을 행하면 결국 악과를 거둠으로 업보에 따라 무아의 지경에 갈수 있느냐 없느냐 결정된다.
결국은 선을 행하는 자는 인생의 참 목적을 이루고 달성하며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진실한 우리 중생이어야 되지 않을까….
우리는 간휴 수행자, 구도자이기만을 고집히여 앞의 빛만 보면서 따스한 기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너무나 강한 빛을 보면서 이것을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언제나 빛만어 비쳐 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언제나 어둠도 찾아오고 구름이 덮고 비가오며 눈마저 내려 모든 것을 하얀색으로 뒤바꾸기도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우리는 모두가 수행자이기에 구름이 끼고 비바람어 불어오더라도 언제나 본분을 잊지 않고 정진하면 언젠가 맑은 히늘을 볼수 있지 않을까. 나 자신에게 자책自策하여 본다. 먹물옷 입고 떳떳하게 하늘을 바라보면서 자신 있게 다닐 수 있는지, 조금은 창피하고 조금은 자부심도 느껴 보지만 역시 아직은….
눈 위의 발자욱을 뒤로 하면서 하늘을 한번 쳐다본다. 꽃송이 같은 눈이 온 하늘을 가득 메운 것 같다. 눈 오는 날의 포행길에서나 반성해 본다. 언제 어디서나 늘 가슴을 열고서 마음을 같이 할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도반들에게 짜증은 내지 않았는지, 선배 스님들에게 잘못하는 것은 없는지, 다만 나 자신만이 열심히 수행하며 살아 준다면 모든 이들이 이해하며 나의 진실함을 알아주겠지 하며 위안을 얻는다.
눈길을 따라 되돌아 온다.
나만의 발자욱이 가지런히 줄을 따라 흐른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 위의 발자국을 바라보니 괜시리 숙연해지는 듯하다. 눈 위의 발지욱이 아닌 긴 세월이 흐른 뒤의 나의 발자국은 어떠한 모양을 하고 있을까?
무명無名을 두껍게 쌓은 업보 보다는 윤회환생을 따라 해탈하여 극락왕생 할 수 있을는지….
이제 병자년이 저물고 정축년을 맞이하였다. 정축년에는 좀더 수행자답게 열심히 정진하며 해인사 모든 스님 건강하게 수행 잘 할 수 있기를 삼보전에 간절히 기도드려야 하겠다.
아무도 없는 눈 내리는 날 나의 발자국을 따라 학사대 옆 다경원에 들려 차라도 한 잔 하면서 수행자의 본분에 맞는 정축년이 되도록 계획을 세우며 차 향기 맡으면서 마음을 달래 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