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작扁鵲이 도망친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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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로 가는 길 - 박원순
1997년 01월 179호
지난 12월 l l일 전국경제인연합회 부절 한국경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95년 30대 그룹이 창출한 부가가치는 56조5천1백53억 원으로 국민총생산의 162퍼센트를 차지하였다. 이것은 1994년의 그것보다 2퍼센트 높아진 것이다. 30대 그룹 가운데 현대, 삼성, 엘지, 대우 등 4대 재벌그룹의 부가가치 창출액이 국민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5년 6퍼센트, 90년 6.6퍼센트에서 95년에는 9.2퍼센트로 급증했다.
재벌이 국민총생산의 엄청난 부분을 차지했다는 것은 경제력 집중과 독점, 불공정 거래, 빈부격차 등 숱한 국민경제의 왜곡을 낳는다. 문제는 그 문어발에 의해 질식 당하는 것이 기업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경제, 언론, 정치, 문화, 그 모든 것이 재벌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지난 l995년 2월 23일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은 사회경영, 반도체, 자동차 등 3개 분야만 집중적으로 챙기겠다고 언명하여 그가운데 “사회경영”이 무엇인지에 무엇인지에 집중되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그 당시 “정계, 학계, 언론계 등 사회 각계 각층으로부터 오백여 명의 지석인들을 뽑아 싱크탱크를 결성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분야에 걸쳐 건설적인 자문도 하고 영향력도 행사하면서 국가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생각”이라고 주석을 달았다.
기업이 기업의 경영에서 나아가 사회경영까지 하겠다는 것은 탐욕이다. 그러다 기업마저 제대로 경영하기가 어렵게 된다. 온 세계의 가업이 적자생존과 무한경쟁 속에 생사를 걸고 있는 터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를 경영하겠다는 이 나라재벌의 의지는 차라리 여유라고 해야 할지.
경제학에서 ‘규모의 이익’이란 말이 있다. 일정한 규모가 되기까지는 규모가 커질수록 생산성을 높일 수가 있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기업규모가 너무 커지면 이 이론이 통하지 않는다. 더구나 경기라는 것이 있어 재벌이 포식한 기업 가운데 어려운 기업이 있게 마련이고 그러면 잘 되는 기업이 남긴 이윤을 그 곳에 쏟아붓게 마련이다. 기업에서 남긴 이윤은 마땅히 그 기업의 좀더 나은 생산성 향상을 위해 집중 투자하여 어려운 시기를 예비해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그 돈을 딴 데 빼돌렸으니 애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반도체가 호황일 때 흥청거혔던 재벌이 지금 “우리 경제는 총체적 위기”라고 요란스럽다. 서양에는 유명한 재벌이라는 것이 없다. 유명한 기업만이 있을 뿐이다. 하나의 상품으로 세계 최일류가 된 기업들이다. 컴퓨터의 IBM이 그렇고 자동차의 포드, 항공기의 보잉사가 그렇다.
중국에 유명한 의사 편작扁購이 환왕桓王을 진찰하였다. 편작이 왕의 병은 지금 초기이니 지금 치료하라고 권유하였으나 왕은 곧이 듣지 않았다. 얼마 뒤 다시 진찰하고 이제 병이 깊어졌으나 지금도 늦지 않으니 빨리 치료하라고 재차 권유하였다. 왕어 허튼 소리라고 물리쳐 마침내 환왕은 병으로 눞게 되어 편작을 급히 불렀다. 편작이 진찰 뒤 “이제 병이 골수에 박혔으니 신의神醫도 치료할 수 없다”면서 도망쳐 버렸다. 환왕은 얼마가지 않아 죽었다.
이종남이라는 작가가 한국의 재벌도 이와 꼭 같다고 이 고사에 비유하여 단언한 것이 1986년의 일이었다. 재벌의 병이 편작이 고칠 수 없을 만큼 골수에 박히지 않았는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