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 대미를 장식한 전국 본말사주지대회는 그 바탕에 ‘승가의 권위 회복’ 을 기본 성격으로 깔고 있다. 곧, 권부의 정책 전횡으로부터 사찰 환경과 문화유산의 ‘위임관리’ 에 대해 전권을 거머쥐어 온 조계종 승단의 ‘자구 본능’ 이 결집되었다는 의미를 지님과 더불어, 그 매개자로서 최종 총무원의 위상에 근원적인 지각 변동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행사였다. 더구나 위임관리자격인 교단에 대해 종토세, 토초세 등 과도한 토지세금 부과 정책이 무분별하게 적용되었고, 이를 해결해야 하는 총무원의 위상이 ‘범어사 종토세 대법원상고 기각’ 이라는 또 하나의 장벽이 돌출함으로써 권위를 크게 손상당했다는 요인도 겹쳐졌다. 그 가운데서도 권부 쪽에서 더 이상 불교계 쪽에 조계종 창구 독점화 정책을 펴지 않을 조짐, 곧 진흥회 창립법회 사건 같은 사례가 주요변수로 작용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이 같은 외형적 양태의 변모 못지 않게 불교계는 이미 ‘승가적 권위 존중파’ 와 ‘승가적 실리 추구파’ 로 크게 나뉘기 시작했다. 해인사 내홍內訂을 대표적 사례로 들수 있겠지만, 개혁 이후 총무원의 장악력이 약화되었다는 결함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실리 추구의 리더십에 기울어져 버림으로써 이른바 교단주의의 위기 가 도래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다시 말해 지방 각 교구의 등귀 현실과 총무원 중심의 어설픈 교단주의 강화 전략이 서로 합일점을 찾지 못한 ‘불교 실리’ 를 대의명분으로 강력하게 부각시킨 결과 가장 시급한 종단의 정체성 확립에서 결함을 드러낸 것이다.
사실 한국불교에서 교단주의의 토대는 미흡하기 짝이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과도한 불교 재산과 흡인력은 사회적 관리 체계를 지향하지 않는 국가관리 체계에만 치중함으로써 조계종 총무원이라는 중간 관리자를 잉태했을 뿐이었다. 종단 개혁은 사실 교단주의를 목표로 하면서도 승가의 권위 회복과 병행되어야만 성립할 수 있다는 고유한 특성이 있었다. 그러나 교단주의 전략가들은 승가의 권위 회복보다 종단 실리를 앞서 부각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취약한 입지를 만회하기에 급급했고, 더욱이 승가의 권위를 종단운영에서의 경영 독재의 수단으로 변질시켜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물론 여기에는 권부 쪽의 불교계 공략이라는 외인外因이 깊게 작용한 면이 있다. 김영삼정권 아래 대중주의에 입각한 리더십이 보편화되면서 사회의 여러 조직들이 극도로 취약해진 반면, 그나마 커다란 표밭을 거머쥐고 있는 종교권이 정치적으로 위상 급부상한것이 그 외인의 주범이었다. 불교는 특히 생태적으로 포지티브Positive 캠페인에 익숙한 체질 때문에 반정부로 돌아섰을 경우 일시적으로 ‘관리 부재’ 라는 치명적인 요인에 휩싸일 가능성이 컸고, 그것은 96년 지자제와 총선에서 일부 입증되었다.
이런 혼돈 가운데에서 불교 관리자격인 ‘조계종의 절대화’를 재차 가능하게 하는 접근 방법이 ‘권력과 실리추구’라는 한 측면과 ‘대중에 대한 권위 회복과 사회적 영향력 강화’ 라는 또 다른 면이 함께 자리잡기 시작하였으며, 그 점은 조계종의 행보에 따라서라 규정되기 시작하였다.
정치와 경영의 충돌
97년도 한국불교는 이런 추세 속에서 조계종의 선택이 큰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더욱이 대통령 선거라는 정치 변동의 주요 기제가 그런 상황을 재촉하고 압박해 들어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문제는 결국 압박과 선택의 상호작용에 의해 불교의 토대 전반이 축소되고 만다는 사실에서 야기된다.
알다시피 불교계는 개혁이란 큰 변동을 겪으면서 안으로는 내부의 자정력을 키우고 밖으로는 다양성과 전문성을 접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96년의 상황은 그 변동의 한계성을 스스로 인정하는 쪽으로 기울게 만들었으며, 오히려 그 공백을 전통적인 승가의 권위에 의존하여 풀어갔다. 그러나 현실 운영은 경영과 실리라는 상황적 변이에서 더 깊게 작용하게 함으로써 승가권위 복구가 오히려 불교의 순수함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결국 불교계의 자생적 동력은 사회적 다양성과의 직접 접목에서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불운도 겪어야 했다.
현실을 흡인하지 못한 채 현실 장벽을 돌파하려면 자연히 당면 과제를 최소화하든지 ‘경영 독재의 편의적 장치’를 가동해야 한다. 이 이치는 97년도 불교계 상황에서 주요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짙다.
여기서 불교계는 하나의 분기점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불교의 전통가운데 집단운동의 핵인 대중공의를 중시하는 제도가 기로에 선다는 측면이 있으며, 특히 이것은 새로 잉태된 교단주의와의 접목 과정에서 새 행태를 가름할 필요가 크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존의 종단구조와 신행 행태에서의 균열을 가져올 수 있다.
재가불자들의 처지가 오히려 문제로 부각될 여지가 크다. 불교의 고유한 승가 정신에 의해 이미 자각된 재가불자들과 교단주의라는 새 행태와는 결코 쉽게 접목되지 않으리라는 점을 먼저 고려해 보아야한다. 이와달리 전통적인 신행을 중시하는 신도 쪽의 경우도 불연속성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곧, 교단주의가 통일성을 잃어 지향점이 난립하게 되면 신행 행태가 개별화된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적인 압박과 교단의 경영 실리가 상호불연속을 그리게 되는 현실이 있다.
사실 교단의 실리 욕구라는 소재는 정치와 경영이란 두 얼굴을 동시에 갖고 있다. 정처권의 갖가지 압박은 소재가 아무리 다양하더라도 종교권에서 볼 때는 정치적인 욕구로 굳어 버린다. 전통적인 신행에 의존할수록 그것은 더욱 단순해진다. 그러나 종단의 처지로 돌아서보면, 실리라는 명분 아래에서의 각종 행태는 정치권에 대해서는 정치가 되고 일반불자들 쪽에 대해서는 경영이 되는 양면으로 구성되어 었다. 여기서 야기되는 결과가 더욱 문제다. 극단적인 예가, 96년 총선 과정에서 온갖 종교편향정책으로 인해, 불교권에서 야기된 반여당 기운과 달리 일부 교단주의적 승단이 친여당운동을 벌인 것이다.
결론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출가승단 쪽에서는 하나의 교단이 쉽게 형성되더라도 재가불자들을 하나의 교단으로 묶어내기란 현실 속에서 불가능하다는 사실의 발견이다. 다른 하나는 그나마 불자들의 결속과 규합은 승단 전체가 아니라 개별 승려와의 결합으로 귀착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실정법에의 귀속
여기서 주목해야 될 사실은, 그러한 현실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종단중심부는 종단을 운영하는 데에서 계속해서 교단주의에 대한 집착을 고수해 나갈 것이며, 그 동력은 불교세를 확장하기보다는 오히려 축소시킬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교세 확장은 한국불교의 고유한 전통이 아니다. 사실 정토화 같은 개념은 교세 확장이라기보다 현실의 교화와 현세의 구원이란 포괄적인 개념이 우선이다. 한국불교의 전통을 지켜 온 여러 종단과 불자들은 그런 접근법에 더 익숙해져 있다. 그렇지만 종교편향정책이 보편화된 현 정권 아래서 불교의 위기감 고조는 현실에서 곧잘 교세 확장이란 새 이데올로기를 창출해 버렸고, 그 속에서 교단주의가 쉽사리 잉태되었다. 어떤 측면에서는 94년 불교개혁 이후 급조된 교단주의식 경영기법이 이끌어낸 교세 확장 필요론은 현실의 강한 장벽 앞에서 도리어 무기력해질 수 있다. 그것은 불자들의 정체성을 약화시키는 요인을 제공하는 동시에 대외적 영향력은 오히려 약화시키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여기에는 대개 교세 확장이라는 종교적 이데올로기가 특정 종단을 곧잘 이익집단으로 변질시키는 속성이 또한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종교는 이른바 사회적 실정법상으로는 초월적인 존재인 반면, 이익집단은 실정법의 치열한 각축장에 맡겨진다. 이익집단으로서의 이미지 부각은 결과적으로 종교가 실정법의 권한 내로 귀속되는 역기능을 낳게 되고, 그 마지노선이 무너졌을 때 빚어지는 사회적 결과는 예측 불능에 될 공산이 크다. 이는 특히 정부와 종교가 불평등한 관계를 맺고 있을 때 더욱 그렇다. 이를테면 과거의 불교재산관리법이 그랬듯이, 정부와 불교종단의 불평등 계약 관계 아래에서는 종단이 이익집단으로 변질되면 득은 없고 손실만이 가중되는 현실을 벗어날 길이 없다.
거꾸로 실정법 체계에 의해 종단의 경영력과 관리력을 키우려 한다면 이것이 하등 문제될 게 없다. 오히려 이점으로 작용하리라는 계산법은 오직 한 교단주의 내에서만 가능한 것이지 불교 전체의 필요 욕구와는 거리가 있다. 이것은 분명 97년 한국불교계를 판가름하는 주요 잣대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허구적 사회참여 노정
그 동안 불교계는 이 같은 맹점을 상쇄하는 사회적 공리 담당역이 존재해 왔다. 사회정의 구현에 앞장서는 각종 시민운동에의 참여가 그것이다. 그러나 97년은 이같은 시민운동이 안고 있는 한계가 그 본질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시기적인 특성이 있다.
미국에서 발달된 시민운동은 원래 80년대 초기부터 강경보수주의의 보조자로서 자리잡아 왔다. 그것은 대개 상대적 정의관에 입각한 경제와 공명선거운동 같은 부분이 절대적 정의관으로 통제되고 규정짓는 데에 그 원인이 었다. 다시 밀해, 자본과 노동의 상호작용을 부정하고 ‘경영독재’ 를 희구하는 성격이 시민운동에 잠복되어 있으며, 검찰과 변호인권의 균형 속에 사법부의 위상 찾기를 부정하고 ‘검찰권 절대화’ 를 보조하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 변동의 합리적 기제인 선거운동 과정에서 공명선거운동 같은 접근법이 구질서 우위권 확립에 악용되는 점도 있다. 올바른 선거운동이란 바로 상대 후보를 유권자에게 올바로 인식시키도록 각종 소재를 선포하는 것이라는 개념을 통해 보면 이해가 쉽다. 이같은 시민운동 단체들이 미국에서는 이미 보수 공화당과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드러난 사례가 있다.
문제는 결국 한국의 정치 변동이 극점에 달하는 97년에 그러한 운동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본질을 드러낼 수 밖에 없다는 점과 관련하여, 한국불교에서 외피로 작용한 지난 이삼 년 동안의 과도기적 모습들이 그 피해자로 각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계의 공리적 외피들이 더 이상 보호막으로 작용하지 못할 한계 상황이 연출될 가능성이 크다.
공동화현상초래
이 같은 상황은 불교가 우리 사회의 ‘정신적 사표’ 로서의 기능에서 퇴조하였음올 의미할 수 있다. 정치 변동기가 사회적 혼돈성을 가중시키는 시기적인 특성을 감안한다면, 불교계의 사회적 위상 변화는 매우 치명적이다.
한국불교는 출가수행이라는 신분의 절대성과 우수한 민족문화유산의 보존관리라는 양 측면이 유지의 기본 골간으로 작용하여 왔다. 쉽게 말해 ‘신분’과 ‘재산권’이 조계종과 같은 거대 종단을 유지해 온 것이다.
한국불교가 우리 사회의 중심축을 형성할 만큼 영향력이 클 때는 ‘신분’ 은 내부적 결속과 충원의 주요동력이었고 ‘재산권’은 외부적 신뢰 구축에 더 주효했다. 반면 중심축이 약화되면서부터 그 기능이 서로 뒤바뀌어 ‘신분’ 이 사회적 신뢰 구축의 근간으로 특화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성철 큰스님의 열반을 전후한 시기가 그 주요 전환점이라고 할수 있다.
그 뒤로 불교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접근법에는 오히려 ‘신분’의 특화가 더욱 강조되는 특성이 있었으나, 불교계 지도자들은 ‘재산권’에 더 치중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96년은 그 극점들을 노출했으며, 그 결과는 97년부터 불교계의 리더십 공동화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불교계와 사회가 접목되는 현실에서는 ‘신분’ 에 대한 희구가 더욱 강해지기가 쉽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출가수행의 고귀성과 우월성이 세속의 가치에 의해 시험될 수도 있다는 진단이 가능하다.
문제는 이럴 경우 불교계의 종합적 관리 능력 부재라는 현실 장애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 불교계 외부로부터 배속화의 강렬한 욕구가 부각되는 난잡한 현실을 불교계 내의 단순 세속화 의욕으로는 해소시키기 어렵다는 진단이 제기될 수 있다. 더욱이 과거 같으면 이런 충돌은 불교계 외곽과 사회와의 충돌에 그쳐 그 영향력이 최소화되었으나, 97년도 같은 시점에서는 이미 그 충돌의 주체가 불교계 중심으로 변화될 여지가 충분하다는 점에 주목해야할것 같다.
97년의 특성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점은 국제화된 한국을 운위하는 주축, 곧 안보와 경제 협력 양측면 모두 경색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과잉 생산과 재무재표 악화로 가중되는 경제 위기감과 대북 압박론으로 고조되는 안보 위기 모두는 실상 우리 사회의 내적 긴장력을 높이는 주요 동력이다. 이 동력은 불교계가 처한 갖가지 불안정한 상황을 더욱 극대화시키는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