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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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고형렬
1997년 01월 179호
사람의 마음은 의심할 것 없이 사람의 몸 속에 있습니다. 사람의 몸 속에 있는 마음은 어떤 구조로 있는 것일까요. 심리학에서 구분한 의식 구조의 내용보다 심오하게 마음의 구조를 자세하게 풀이한 법문을 읽었습니다. 그 글을 읽으면서 고향 앞바다에 첫날의 해가 떠오를 때처럼 마음이 쿵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마음은 여덞의 부드러운 살의 층이라고 해야할까 겹이라고 해야 할까하는 이름 붙이기 어려운 무엇으로 박혀있고 감싸져 있다고 합니다. 마음까지 가는 길의 구조를 살펴 보면 아름다움과 오묘함을 느끼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1월의 우리들을, 저 깊은 아뢰야식에 있는 한번도 본 적사 없는 마음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조용히 감이 잡혀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요한 마음의 발견과 생활일 것입니다.
사람의 몸 맨 안쪽에 있는 마음에 가기 위한 첫단계가 l식에서 5식으로 눈, 귀, 코, 혀, 몸입니다. 이 단순한 기관에 여섯번째의 것인 경계를 분별하는 ‘의식’이 작용하는데 이 의식이 가장 난해한 아뢰야식(8식)과 말나식(意7식)을 대상으로 하여 자아와 아집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교묘해서 우리들이 일상에서 모르고 지나치는 일이지만 7식은 8식을 의지하고 행세를 하고 6의 의식은 또 열여덟 가지 마음 작용을 하는 7식을 자신의 자아라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자아집착의 뿌리는 주로 7식에서 유전되고 사라지고 일어난다고 합니다. 어떻게 거문고의 줄을 잘 고르고(如調鉉之法) 자신의 본바탕을 천진한 마음으로 지키는 것(守本眞心 第一精進,, 선가귀감49), 곧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원이 이루어질 것인가.
그런데 의식 그 안쪽으로 슬쩍 들어가면 거기 아뢰야식이라는 곳이 있답니다. 아뢰야식이라는 곳은 무서운 곳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겁부터 나기도 하는 이상한 이름을 가진 마음의 거처입니다. 부사의하게 그늘이 있고 빛이 있고 물이 있고 절벽이 있고 죄가 있고 선이 있고 나도 모르는 업이 있을것 같습니다.
아롸야 ālaya란 말뜻은 ‘영구한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 이라고 합니다. 이러하다면 무서운 곳이 틀림이 없을 것인데 믿기지 않게도 그 곳이 우리의 태반일 거라는 느낌이 자꾸만 들썩거립니다.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 만남, 음죄, 생각 그리고 눈, 귀, 코를 스친 것들이 모두 이 곳에 정말로 저장되는 것은 아닌지 조용히 지나온 날을 돌아보고 앞날을 내다보는 초하룻날이 시간에 문득 밝아지기도 하고 캄캄해지기도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불안정하고 란스러운 일입니다.
모든사람은 누구나 평생에 한두 번 심리적, 사회적, 육체적인 어려움에 맞닥뜨립니다. 서른여덟이 되던 1993년 새해 벽두, 나는 묘한 허탈감에 빠졌습니다. 그 1월에 다행히 조계사 앞길을 지나다가 한 서점에서 한글본「열반경涅槃經」을 얻었습니다. 그 해 연말까지 모두 읽고 다시 이듬해 정초에 그 서점에 갔더니 「열반경」 Ⅱ권이 그 자리에 그대로 꽂혀 있었습니다. 그 경전을 팔천원에 사서 일 년 동안 읽으며 삼십대를 넘기고 사십대에 접어들었습니다. 그 「열반경」을 스승처럼 집에 모시고 있는데 그 경 위에는 어떤 책도 물건도 올려 놓지 않습니다. 제일 높은 곳에 두고 있지요. 그 경전을 이 년 동안 읽으려고 꽤나 노력을 들였습니다. 만취한 날 밤에도 그 경전을 펼쳐서 한줄이라도 읽고 잠을 청했으니까요. 이 년 동안 모두 읽기로 정했던 그 때의 그 처음 마음은 아이의 결심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경전에 ‘장藏’-저장의 뜻-이라는 비밀스러운 문자가 나옵니다. 그것이 바로 아롸야가 아닌가 하고 저는 생각하고 있고 또 지금은 그 ‘일체중생실유불성-切聚生惠有佛性’ 의 성품이 바로 만물의 마음과 통로가 나 있는 것이 분명하리라는 예측을 갖고 있습니다. 정말 모든 생명에 불성-깨달음의 마음’ 이 있으니 얼마나 즐거운 일이고 자비로운 일이겠습니까. 시 쓰는 일 또한 ‘장藏’ 속에 무엇인지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좋은 것들로 잘 저장되기를 바라는 일입니다.
좋은 내용의 원고가 반듯한 글자로 입력되고 교정되어 좋은 종이에 인쇄되고 제본되어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들처럼 인과가 엇갈린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 ‘장’속에 무엇인지를 이미 저축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죽는 날까지 저장될 것입니다. 그것들은 대부분 슬픈 것들이거나 어두운 것들일 것 같습니다.
조사들은 이 근본 무명의 주체인 심의식의 뿌리 또는 종자인 아뢰야식을 뿌리 뽑거나 부수어야 한다고 합니다.
작용하는 순간에만 물상을 비추고 있는 수정체 같은 눈 등의 5식은 아뢰야식의 말초이고 해탈의 문제는 그 8식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하는 신비한 심리작용들이 무려 쉰한 가지나 된다고 하는데 그 심리들은 마치 거대한 유리창 밖에서 움직이는 그림자와 같습니다. 그러니 그 무늬들은 아름답고 고달프고 가련하며, 찰나적이고 무지하고 허망하여 과연 누가 그것을 모두 알까 싶은 수많은 심상을 불러 일으키는 형상과 움직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의 경우에 바로 이런 것들이 시의 옷이고 마음입니다. 순간순간 얼굴도 익히기 전에 사라지고 마는 모든 약한 존재들이 덧없고 슬픔으로써 아름다운 것이며 생명입니다. 찰나와 같은 존재들, 살아있고 숨쉬고 사라지는 것들이 바로 소이인연이고 시의 주제입니다.
셜경 속의 아침 햇살로 새해를 맞이합니다. 인천에 사는 한 시인이 보내준 한문본 「열반경」( 고려대장경)을 다시 읽으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먼길에서 돌아오는 아버지를 마중 나가는 이른 봄 소년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몇 년이 걸리든 「열반경」을 읽어나갈까 합니다. 순타 이야기, 오래 사는 이야기, 네 가지 모양, 달 비유, 사자후보살 등등. 활구사구活句死句 모두 닭이 알을 품듯이 오래 저상하고 되새김질 해서 깊은 뱃속으로 넘기고 싶습니다. 나 자신에게 비노니, 새해에는 부디 나를 그 경에 있는 ‘영아행’처럼 처음 마음을 가진 천진한 아이가 되게해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