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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축년을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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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법연 1997년 01월 179호
정축년丁丑年, 바꾸어 말해 소해이다.
띠를 나타내는 열두 짐승 가운데 불교와 연관지어 이야기 되지 않는 짐승이 있겠는가만은 소처럼 많은 소재와 상징으로 원용되는 짐승도 드물 것이다.
어느 사찰을 가든 쉽게 볼 수 있는 ‘심우도’가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열 장으로 나누어져 있는 ‘심우도’ 그림은 마치 소를 찾는 과정이 만화 영화와 같다. 그림이 이야기 전개와 잇닿아 있어 그 뜻만이 아니라 보는 재미를 더해 준다.
‘심우도’에 나오는 소는 우리의 마음, 곧 마음 찾기를 소라는 짐승, 길들어지지 않고 코뚜레도 없는 막무가내의 소 찾기와 길들이기를 상징적으로 은유한 그림이다. 그러나 ‘심우도’에 나오는 소는 일반적인 소의 모습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듯하다. 보통 우리가 소를 이야기할 때 떠올리는 소의 덕목인 죽어서까지 철저하게 인간들에게 각부위별로 식용화되는 헌신성과, 살았을 때의 노동이나 순종 따위 말이다.
소 이야기 하나 더 하자.
옛날 어느 수행승이 시골길을 가다가 나무에 매어져 있는 소 곁을 지나게 되었더란다. 그 스님의 마음인 즉 한갖 미물인 소이지만 소의 신세가 여간 불쌍하지 않아, 한마디 해 주었다지. “발보리심하라”고. 묵묵히 새김질만 하던 눈 큰 소가 스님의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너는…” 하는 반문을 하자, 그 말이 천둥처럼 스님의 목덜미를 잡아 채었단다. 스님은 그 자리에서 확철대오를 하였단다.
가만히 생각하면 홍소를 터트리지 않을 수 없는 소의 대답에, 스님의 뜻밖의 자기 통찰 깨달음이 아닐 수 없겠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간간이 겪는 자신의 어리석음의 구석진 곳을 깨닫는 순간을 찾는 것과 견주어 보면 더욱 큰소리의 웃음이 나지 싶다.
심우도에도 나와 있듯이 고삐만 틀어쥐고 있으면 소를 길들일 수 있다는 어리석음은 또 하나의 틀에 갇혀버리고 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중섭은 소를 많이 그린 화가다. 그 소들은 일제치하에서 ‘억압된 민족적 분노를 표출하는 적절한 소재이기도 하고, 순하디 순하여 금방이라도 뜨거운 눈물을 철철 흘려 버릴 듯한 그 시대 민중들의 슬픈 소이기도 하였다.
정축년, 우리 소의 눈망울은 어떤 표정이어야 하나. 새해에는 저마다의 소를 찾아 나서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