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의 1996년은
유난히 진통이 많은 한해였다.
그 진통 가운데에도 대중의 지혜로
‘대중의 화합’ 이라는
빛나는 승단의 생명을 구현해 내었다.
이제 해인사는 최초로 대중의 뜻에 의해
소임자를 추대하는 호사를 맞이하게 되었다.
대중의 뜻에 따라 주지 소임을 맡은
보광스님을 모시고 앞으로의
해인사 운영과 의지에 대해 들어 본다.
지난 가을 한철 동안 해인 총림은 상당한 아픔을 오랫동안 겪었습니다. 산중이 어려울 때 스님께서 대중의 추대에 의해 주지 소임을 맡으셨습니다. 취임 소감을 한말씀 해 주십시오.
주지란 청정도량에 안주하여 삼보를 호지한다는 말이데 흔히들 시대가 바뀌면 법도 바뀐다고 합니다.
우리가 정한 법이라고 하는 것은 만고 불변의 법칙은 아닙니다. 그 시대에 맞지 않으면 개정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전에는 방장 스님과 원로 스님 몇 분에 의해 주지가 선임되었는데, 이번에는 사안이 특이해 대중 스님의 공의에 의해 추천된 것이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방장스님 이하 산중 노덕 스님, 대중스님께 감사 드리고, 총림의 원래 취지인 화합을 근본으로 총림의 살림을 해 나갈까 합니다.
이번에 새로 추대된 방장 스님께서도 앞으로 산중의 일은 모두 대중의 공의로 꾸려 가시겠다고 천명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떤 생각이신지요.
총림의 규모나 살림살이가 방대하다보니 사실 한두사람의 뜻이나 몇몇 사람의 힘으로 운영될 수 없다고 봅니다. 혹 소수의 힘으로 일을 하다 보면 자연히 편파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 보면 결국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대중을 위한 총림이지 소수를 위한 총림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대중 모두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권리보다는 의무를 먼저 생각하고 총림을 아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해인총림은 여느 산중과는 달리 여러 문중이 모여 집단을 이루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체제가 유지되어야 하는지,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유지 존속시켜야 크게 번창 할 수 있을는지요.
조계종 종도는 석가모니 한 부처님의 제자입니다. 부처님 이후로 불교가 전래되면서 많은 부파불교가 파생되었는데 부파불교가 장, 단점을 같이 안고 온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듯 단일 문중은 뜻을 모으기엔 좋으나 인정으로 흐르다 보면 문중의 독점적 피해를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 문파의 장점을 살리고 문파 골고루 인재를 등용한다면 오히려 단일 문중이 이끌어가는 것보다 장점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주지를 맡을 때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첫째는 누구도 총림의 화합을 저해해서는 안되고, 둘째는 설사 전에는 다소 허물이 있다 하더라도 대중이 인정하는 인재가 있으면 과감히 등용할 것이며, 셋째는 해인사 권익에 반하는 자는 용납 못한다는 취지입니다.
신중이 어려울 때 스님께서는 산중수습대책위원장을 맡아 건강까지 해치며 애쓰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지란 소임이 매우 어려운 중책인데 경영자로서의 포부를 말씀해 주시지요.
조사 스님들의 말씀에 ‘배울 학學은 날로 더하는 공부라 했고, 도道는 날로 덜어 버리는 공부’라고 했습니다. 그렇듯 이理와 사事는 둘이 아니지만, 사 언저리어 있는 주지는 사실 일거리가 많아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총림에는 현안 문제들이 많은데, 박물관 건립이 우선 문제고 장경연구소 설립도 추진해야 할 일입니다. 노덕 스님들께서 거론하시는 요사채 불사도 적극 추진할 계획입니다.
스님께선 일찍 강단에서 여러 해 동안 후학들을 지도해 오셨습니다. 예전의 학인과 요즘 학인들의 성향은 어떤지요. 또 앞으로 강원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는지요.
한 스무 해 전 내가 해인사 강주로 왔을 때도 이런 질문을 받은 기억이 납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교육에 대한 내 주관은 변함이 없습니다. 교육은 ‘백년대계’라 했듯 도제양성 없인 불조의 혜명도 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흔히 시대가 바뀌고 사람도 예와같지 않아서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세속의 차원에선 맞는 말일 수 있으나 불법을 배우는 데 있어서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나는 고집합니다. 불법 공부는 절대로 시대와 사람을 논할수는 없다고 봅니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서 불법이 바뀔 수도 없고 사람이 바뀌었다고 해서 불법이 바뀔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불법은 만고의 절대적인 진리 이기 때문에 사람이 법에 맞추어야 됩니다. 불법을 배우는 차원에서 법이 사람을 맞춘다면 문제가 많다는 말씀이 경에도 있습니다.
강원 공부는 고집스럽게 옛 방식대로 세미나 교육식 논강을 해서 강주스님 앞에 다시 공언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이를 하버드세미나식 공부라고 하는데, 우리는 사실 몇 백 년 전부터 실시를 했습니다.
요즘 강원에 일반대학 체제의 커리큘럼을 가진 방안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런 일반대학 체제로의 강원 교육의 전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반대입니다. 그것은 이원화해야 한다고 봅니다. 요즘 그대로 드러났듯 일 년에 사억 원 이상을 들여서 은해사에서 교육원 승가대학원을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과거 부처님이 제정하선 율도 고쳐야 한다는 망발들을 하기도 합니다. 사람도 그 때 사람이 아니고 시대가 바뀌었으니 율도 바뀌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런 식으로 바꾸어 버리면 부처님 법 하나도 남지 않을 겁니다. 성현들이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승가대학의 교육체계가 일반 대학보다 훨씬 우월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씀일 수 있는데, 구체적인 사례로 그 우월성을 말씀해 주시지요.
지금 스님네들은 그렇게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논강하기 전에 각자 경을 보지 않습니까. 전날 각자 경을 보고 다음날 산통을 흔들어 해당되는 사람은 각자의 뜻을 개진해서 많은 사람이 의론을 하는 것을 논강이라고 하는데, 거기에서 나온 좋은 점이라든가 이견들은 다음날 강주 스님 앞에 나가 공인을 받잖아요. 이런 방식이 요즘 현대판 세미나가 아닌가 합니다.
오랫동안 강단에 계셨던 스님께서 어느 날 다 놓아 버리고 선방으로 떠나셨습니다. 그 땐 어떤 마음이셨는지요. 사교입선했던 스님께 선원에서 거는 기대가 크리라 생각됩니다. 앞으로 총림의 선원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출가한 지가 벌써 올해로 만 사십 년이 되는데, 스무살 때 나름대로 원을 세웠습니다. 처음 십 년은 경을 착실히 보고, 다음 십 년은 참선을 하고, 그 다음은 포교, 그 디음 십 년은 시주 밥값을 해보겠다는 원을 이행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십 년 배웠기에 십 년 갚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깅주로 있다 떠나려하니 나이가 사십이 넘어 있었습니다. 그 때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걸망을 지고 일주문을 나서면서 나이 사십이 넘었는데 이제 선방으로 가서 무슨 도가 터지겠는가 그러나 다음 생에도 이 길을 갈 것이니 지금부터 시작하는 마음으로 가지 않으면 안된다. 금생에 시작하면 ‘내생엔 한결 쉽겠자 하는 마음으로 떠났습니다.
총림의 선원 운영은 개선해야 할 문제가 있지만 사변에 있는 주지가 특별히 이렇다 저렇다 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선방에 한 십 년 있으면서 제가 경험한 바로는 선원을 지키는 납자가 전적으로 뜻을 모아 개선 보완해야 한다고 봅니다. 선원의 제반조건이 아무리 잘 갖춰 있다하더라도 공부는 지신의 용심에 달려 있는 것이지 어떤 조건이나 개선책이 납자의 공부를 시켜 준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옛말에 ‘공명정대 하면 통달신통이라 했고 청렴결백 하면 큰 위신력이 난다’고 했듯 회두공안이 화두를 깨쳐야만 도통한다는 면에서 보면 엄청난 압박감도 없진 않으나 나는 가장 쉽게 생각했습니다. 즉 공심公心이 공안公案이고, 모든 명예나 집착을 버리는 공심空心이 공안空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공평무사 한 마음만이 공안을 공부할 수 있고 일체사에 벗어나 마음을 비워야만 공안이라고 봅니다
승가의 대중살이는 화합이 첫째라고 합니다. 총림 안에는 선원과 강원 이외에도 율원이 있고 또 후원에서 수행하시는 노덕 스님들도 많0| 계십니다. 율원의 역할과 노덕 스님들의 역할, 처우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불법을 수행해서 성불할 때까지의 초석은 부처님의 율입니다. 계율 없는 수행은 모래성을 쌓는 것과 같아 총림에는 율이 근본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점이 강조되어 율원이 설립되었고 율장도 만들어졌습니다. 율원에 율주와 율원장이 계시니 웬만한 조건은 갖춘 셈입니다. 먼저 율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져 산중의 모든 법도는 그분들이 세워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번 해인사 사태의 원만한 수습에는 노덕 스님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절 살림을 종무소에서만 행정을 담당하고 모든 일을 재단할 것이 아니라 큰일이 있으면 노장스님네들을 모시고 좋은 의견을 들어 반영할 생각입니다. 그렇게 되면 노장님들이 소외감도 덜 느끼시리라 믿습니다.
앞서 말했지만 노스님들을 모시기에는 요사채가 너무 부족한 형편입니다. 지금 법전 방장 스님께서도 요사채를 잘지어 노장님들을 편히 모실 수 있게 하라고 여러 번 당부의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요사채 문제만은 꼭 적극 추진해 노장스님들을 잘 모실 생각입니다.
요즘 가야산 골프장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을뿐만 아니라 환경오염 문제도 심각한데 대처방안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팔만대장경이 세계적인 유산으로 지정된 터에 그 옆에 골프장을 짓는다니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환경문제도 모두 자업자득인지라 환경단체가 나선다고 될 일도 아니고 숨을 못 쉬고 물도 못 먹을 지경이니 국민 모두가 심각하게 반성할 일이지요. 해인사 자체에서도 생활오폐수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할 것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수행자들의 자세도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이 시대를 사는 수행자는 어떠 해야 할는지요.
나는 일찍이 세간살이 차원에서는 인정으로 타협해야 하고 불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인정으로 타협을 해서는 안 된다는 철칙을 세웠습니다. 불법 진리는 천겁 만겁 지나도 달라질 수 없습니다. 수행자는 항상 자기 자신을 버리고 부처님 법에 맞추어서 수행을 해야지 시대나 사람, 환경, 조건을 가지고 천년을 논해도 아무런 이익이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나보고 고집이 세다고들 합니다.(웃음)
스님께서는 지금까지 대중의 외호를 받던 이판에 계시다 처음으로 외호를 해야 하는 사판의 입장에 서셨습니다. 어떠한 빙법으로 대중 외호를 하실는지요.
평소 견성 성불하고 밥값을 하려고 생각했지 외호하고 시간이 나면 공부하겠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주지라든지 포교는 배제하고 살았습니다. 어쩌다 내키지 않는 소임을 맡게되었는데, 기왕사정이 이러하니 이 기회에 사십 년 동안 부처님 은혜를 입었으니 밥값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대중을 잘 보필하고 살림을 잘 살아야 하는 의무가 곧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의무 없는 권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갑사합니다. 혜인사 사태가 원만히 마무리된 시점에서 해인 총림을 아끼는 모든 대중들, 그리고 「혜인」지 독자들에게 한말씀 해주시지요.
앞으로 해인 총림은 부처님 법대로 화합을 위주로 해 모든 것을 처리해 나갈 것입니다. 「해인」지도 부처님 법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잡지가 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