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 핵심은 교육과 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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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이영일
1994년 12월 154호
얼마 전 교계의 환경 관련 심포지움에서 어느 환경 운동가의 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불교는 먼저 자체 정화에 힘쓰는 것이 환경 운동의 출발점이 된다는 것이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현재 불교적 산소 요구량(BOD)부터가 절대 부족하다는 얘기다. 불교의 현주소와 불교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한 환경 운동가의 입을 통해서 이렇게 듣는 것이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조계종은 지금 개혁 불사를 하고 있다. 불자들은 물론 많은 국민들이 이 불사에 관심과 기대를 걸고 있다. 개혁이란 끝없이 진행되어야 하지만 결정적인 때는 자주 오지 않는다. 개혁회의가 내세운 개혁 내용을 다섯 가지로 요약 하면 다음과 같다. 국가 권력으로부터의 자주화, 사부대중이 참여하는 민주적 종단 운영, 청정한 계율과 바른 수행으로 승풍 진작, 화합 종단의 위상 확립, 불교의 사회 역할 확대이다.
국가 권력으로부터 자주화는 그 동안의 조계종 종단 분규가 상당 부분 국가 권력의 연줄이나 개입 속에서 발생했다는 자각에서 비롯되었다. 다라서 국가 권력에 의지하면 문제가 풀린다는 승가의 전근대적 의식이 사라지지 않는 한 매우 바뀌기 어려운 문제이다. 또 사부대중이 참여하는 민주적인 종단 운영은 재가 불자는 물론 비구니들의 참여도도 열악한 현실을 생각하면, 비구승들의 일종의 기득권 의식이 효율적 종단 운영에 대한 사부대중의 동참 필요를 느낄 때까지 얼마쯤 지나야 가능해질 전망이다. 청정한 계율과 바른 수행으로 승풍 진작이라는 목표는 계율이 경시되고 율사의 모습이 승가의 기본으로 확립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역시 요원한 문제로 남아 있음이 사실이다. 화합 종단의 위상 확립은 이번에 종단이 선거를 치루면서 보였던 위계 질서와 문중 및 사제 관계의 붕괴 현상에서도 드러났듯이 날로 악화의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교의 사회 역할 확대는 포교 차원에서 사회 일선을 뛰어다니는 스님과 신도가 많지만 종단적 지원이 미약하고 스님들의 활동은 특수성과 한계성을 공유하고 있어서 새로운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개혁회의의 종단 개혁 의도는 그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쉽게 풀기 어려운 문제이다. 지금 위에 열거한 다섯 가지 개혁 목표는 그 반석을 마련 했다고 장담하기 어려운 시점이며 정작 달라진 것은 약간의 종헌, 종법 개정에 불과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곧 총무원장 선출 방식에서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이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선거라는 다분히 세속적인 분위기가 한층 높아짐으로써 그에 따른 부작용, 곧 정치 승려(권승)의 양산을 불러왔으며 엄격한 위계 속의 화합이라는 전통적 미풍양속이 허물어지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지금까지의 개혁 내용은 그 동안 치룬 크나큰 홍역에 비해 너무 초라하지 않은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기득권을 유지하거나 획득하려는 구성원들이 이 과정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반대 세력이 방해에 나서는가 하면, 방관하는 사람들로 호응도가 낮은 상태에서 개혁 불사는 많은 불안과 난관에 부딪혔을 것으로 안다. 또 일의 과정에서 채찍과 당근 곧 타협과 오해가 서로 맞물리면서 오늘의 결과밖에 얻을 수 없다는 점에서 개혁회의의 고충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이유는 어떻든 개혁회의의 업적이 아쉬운 대로 만족스러운 것은 분명 아니다. 해야 할 일과 시기를 놓쳤다는 얘기다. 또 이와 같은 결과는 전적으로 개혁회의만의 책임도 아니다. 넓게는 조계종 스님과 신도가 함께 책임져야 할 문제이다. 개혁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종단의 산적한 문제들이 단번에 모두 해결 될 수도 없는 일이다. 문제는 많고 사람과 시간은 없다. 그러므로 중창기 계획 아래 근본적으로 손 댈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것에 총력을 기울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개혁회의에 대한 명확한 평가는 나중에 이루어지겠지만 지금은 평가보다는 당장 무엇을 할 것인지를 심사숙고할 때이다. 또 누가 자리에 앉는가보다는 무슨 일을 하도록 독려할 것인지를 애종심 하나만으로 고민할 때 이다. 여기서 종단이 앞으로 역점을 두어야 할 부분을 세 가지만 지적하고 싶다. 교육과 재정 그리고 법사 제도 확립이 바로 그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일은 사람과 돈이 한다. 사람을 키우고 챙겨야 한다. 자질이 크게 문제된다면 모르거니와 뜻이 다르다고 배척할 이유가 없다. 또 돈 관리를 제대로 해야 한다. 부처님의 삼보정재가 개인적 명리나 안녕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된다. 사람의 지혜와 능력과 덕성이 충일하면 못 할 일이 없다. 또 사람이 잘 구성되었더라도 돈이 받쳐 주지 않으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따라서 교육과 재정은 앞으로 조계종의 사활이 걸린 중차대한 두 기둥이라 하겠다. 교육은 곧 구성원의 자질과 직결되며 적재적소에 알맞은 수준 높은 집단을 만드는 선결 과제이다. 현대사회에 여느 종교의 성직자도 불교의 경우처럼 배출되지는 않는다. 한마디로 소수 정예의 양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또 재정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일에 빼놓을 수 없는 에너지며 동시에 부조리와 타락의 밑바탕이기도 하다. 종단의 많은 일이 돈이 없어서 안 되고 있고 한편으로는 돈 때문에 많은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교육과 재정만 제자리를 잡으면 나머지 문제는 당장은 해결이 어려워도 시간이 가면 저절로 풀리게 마련이다. 그리고 풀리기 어려운 문제가 있더라도 이 두 가지를 중심에 놓고 수정하고 보완해 주는 차원에서 방향을 조정해 주어야 한다. 문제는 현실 속에서 교육과 재정을 어떻게 구현할 것이냐만 남아 있다. 지금까지 이 분야에 관심이 엿보는 것은 아니지만 종단 차원이 아닌 개인 차원에서 또 근본이 아닌 지말적인 차원에서 시도되었다는 점에서 부진함을 면치 못했다. 지금처럼 사미계를 받고 강원이나 선방으로 가는 방법은 거구로 바뀌어야 한다. 일 년쯤 행자 생활을 마친 뒤에 바로 계를 주어서는 안 된다. 행자 신분 그대로 각 강원(본사의 승가대학)에서 교육을 시켜야 한다. 강원은 이 년 쯤으로 커리큘럼을 혁신해 교육한 뒤에 사미계를 주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승가대학이나 동국대 불교대학을 나오게 한다. 졸업과 동시에 비구계를 주고 그 다음에 개성이나 특기에 따라 선방이나 대학원, 가람 수호와 사회 포교 활동에 나서게 한다. 이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법복이나 법계의 차별화가 뒤따라야 할 필요도 있다. 재정은 중앙의 집중 관리와 효율적 집행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지금처럼 빈부 격차가 심하고 주지 싸움이 끊이지 않는 것은 돈을 합리적으로 운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디서 얼마의 돈이 들어오고 어디로 어떻게 돈이 흘러가 쓰여 지는 지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승풍 진작 등 그 어떤 개혁 시나리오도 꿈 속의 일이다. 은사를 잘 만나거나 재주가 좋으면 주지가 될 수 있고, 주지가 되어야 돈도 생기고 대접도 받는다는 발상이 꿈틀대게 해서는 되며, 이제는 신도들이 앞장서서 이를 제지해야 한다. 종단의 모든 돈은 최소한의 사찰 유지비를 제외하고는 일단 중앙으로 모두 모았다가 다시 집행하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총무원의 부조리는 구조적으로 예방해야 함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여기에 이 가지만 덧붙인다면 법사 제도의 확립이다. 스님들의 손이 미처 미치지 않는 곳에 법사가 늘 있어야 한다. 얼마 전에 법사종이라는 법사 종단이 출범했지만 이런 독립 선언이 나왔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지금처럼 신행 단체 차원의 산발적이고 자생적인 법사가 아니라 총무원에서 엄선해 관리하는 법사가 필요하다 현역을 떠난 근법사, 교법사 출신과 종단적으로 활용할 만한 환승, 부처님 법에 밝고 신행이 돈독한 불자 등 교계의 고급 인적 자원이 지금 부처님 일을 찾고 있다. 차츰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해 주도록 방안을 강구하고, 그 제도를 종단적 으로 공인하고 법계를 엄격히 제도화해 스님을 보좌하고 포교 일선에서 승속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하도록 준 성직자 활동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그 밖의 갖가지 일은 화급한 일이 아니면 당장 해결할 욕심을 내어선 안 된다. 생각만 가지고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매달리거나 언제까지 아쉬워만 할 일이 아니라 중요한 것부터 차근차근 하나씩 쌓아 가야 한다. 세 번째 과제가 어렵다면 먼저 앞의 두 가지만이라도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스님과 가까울수록, 절집을 깊이 알수록 신심이 떨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바라건대 곧 탄생할 새 종단에서 이와 같은 일을 적극 추진해 주길 바란다. 지금 세상은 숨 가쁘게 변하고 있다. 변하는 세상을 좇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할 실질적인 방안을 세우자는 이야기다. 어느 인물이 들어서건 어떻게 종헌, 종법이 바뀌든 교육과 재정 그리고 스님의 손길이 미처 닿지 않는 분야를 받쳐 줄 종단적 중간 계층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종단 개혁 사회 선도는 아득할 뿐만 아니라 분규의 악순환은 앞으로도 간헐적으로나마 계속 된다는 사실을 조계종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원력이 없는 스님, 호법신장이 되지 않는 신도는 그나마 부족한 불교의 산소 요구량을 파괴하고 부처님의 복덕을 갉아 먹는 이른바 해종 행위자에 다름 아닌 시절이 찾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