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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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성태용
1994년 12월 154호
스님! 지난 몇 개월을 몇 년처럼 사셨지요. 눈 푸른 납자에게 갑자기 개혁의 핵심에 자리하여, 불교 개혁의 핵심에 자리하여, 불교 개혁의 문제를 새로운 화두로 지니시게 된 그 세월의 소감은 어떻습니까. 그 화두에서 한 소식 할만하시던가요. 그 화두야말로 앞뒤로 콱 철벽인 것이 정말 확철대오를 안겨줄 진짜 생사관문이더라고요.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스님께서 맛보신 경지를 저도 조금은 짐작하겠습니다. 이렇게 우스개로 말을 건네지만, 저도 정말 오랫동안 나름대로는 가슴을 앓았습니다. 불교계의 그 오랜 모순들, 실타래처럼 엉키고 설킨 문제들을 어떻게든 풀어 보려고 초췌해진 스님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꽤 속 앓이를 했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큰 물은 건넌 셈 이지요. 그리고 잘했든 훗날의 평가를 조용히 기다리는 그런 마음이 되는 시점이구요, 또 돌아보면 아쉬운 점들, 좀더 잘 풀어갈 수 있는 길이 수없이 보이기도 하지만, 그 나름대로 정말 어려운 고비를 용케도 넘겨 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실 거구요. 정말 그렇습니다. 개혁의 과정이 모두 잘 진행되지도, 또 그럴 수도 없었지만, 개혁회의가 안고 있는 원초적 상황을 주변에서 너무도 이해해 주지 않은 점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본디 너무도 어려운 시점에 너무도 큰 짐을 떠맡은 것이 이번의 개혁회의였고, 그 중압감 자체가 또 하나의 견딜 수 없는 짐이 되지 않았던가 싶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조계사에서 그 힘들었던 투쟁을..기득권을 지니고 무도한 힘을 행사하던 삿된 세력과 불교계에 대한 무지 때문에, 혹은 통치의 편의를 위해, 불교계를 장악하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섣불리 그 삿된 세력에 탄압을 순수한 대중의 힘으로 물리친 자랑스런 역사를... 그 힘든 과정을 견디어 온 개혁 세력이기에 한편으로는 어지간한 시련에는 굴복하지 않을 만한 저력을 지녔다 할 수 있지요. 그러나 그런 위대한 역사가 꼭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혁명적인 사태 뒤에는 그 혁명을 성취했던 주체 세력의 혁명 완수에의 열기와 거기에 따르는 대중의 크나큰 기대가 있기 마련이지요. 그러나 현실 적인 기반이 한번의 혁명으로 모두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구시대의 많은 문제들은 개혁의 수행을 완강하게 가로 막고 있는데, 하루 빨리 과감하게 개혁을 성취하지 못하느냐는 요구는 빗발치지요, 아직 완전히 타도되지 않은 삿된 세력은 호시탐탐 개혁에 틈바구니가 나기를 엿보지요. 여기에 조금이라도 무슨 잡음이 난다든지 개혁의 성과가 확실히 보이지 않으면 지금까지 지지자였던 대중은 갑자기 무분별한 비난자로 돌변하게 마련입니다. 무슨 개혁이 이 모양이냐, 치워 버려라... 여기에 숨죽이고 있던, 지난 시절의 영화를 잊지 못하는 삿된 세력이 슬그머니 끼어들면 “개혁은 이미 물 건너갔다”는 자조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기 십상입니다. 실제로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던가요. 그 무렵 저는 밖에 있었지만 그런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조그만 도움이라도 될까 하여, 대중 매체를 통하여 저 나름으로는 이런 분위기를 징계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하였습니다. “이번 개혁이 잘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 이번 개혁이 잘못된다 하여 우리가 부정했던 잘못된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또 다시 새로운 개혁이 있다는 점을 우리 모두가 확인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이러한 확고한 인식이 있어야만 개혁회의도 좀더 차분하게 개혁을 추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대개 이런 생각을 얘기했습니다. 스님, 실제로 조급한 생각이 드실 때가 많이 있으셨지요. 또 너무도 답답한 상황에 뭔가 쾌도로 난마를 자르는 식의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신 적도 있으시지요. 저는 개혁회의에서 방생 법회 금지, 스님들의 승용차 제한 따위의 포교를 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우리 스님들이 너무나 갑갑한 상황에 계시는 것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그런 문제라면 저도 늘 생각하고 그 취지에는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그런 식으로 한번에 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런 생각을 하신다는 것 자체가 뭔가 화끈하게 개혁의 정신을 안팎에 선양해야겠다는, 그래야만 개혁이 정말 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일반 대중에게 알려야 하겠다는 강한 필요를 느끼셨다는 증거지요. 그 때 저희들이 정말 개혁의 튼튼한 울타리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스님들을 곤핍하게 만들고 있구나 하는 반성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스님들이 지혜롭게 개혁을 그런 식으로 몰고 가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는 역시 우리 스님들이라는 안심을 하기도 했구요. 그런 안심이 들면서 저로서는 우리 제가 불자가 할 수 있는 일을 차분히 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과제라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개혁회의의 활동에 관심을 조금 덜 두게 되었지요. 우리 재가 불자의 위상에 대하여는 스님들이 배려를 너무도 안 해 주신다는 그런 투정을 부리고도 싶었습니다. 물론 저는 지금 섣불리 재가 불자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려고 나서면 국면을 매우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회나 어떤 대의기구에 재가 불자 사회가 벌집 쑤신 듯이 분열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구요. 그렇지만 그런 문제가 아니라, 사부대중을 진정한 사부의 대중으로 세우기 위한 제도적 골격을 마련하시는 데도 조금은 인색하시지 않으셨는지요. 너무 제 입장에서 생각하는지 몰라도 앞날의 이상적인 불교계의 모습을 세우는 데 골격이 될 새로운 종헌, 종법에 재가 불자의 위상에 대한 배려가 충분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스님들이 하시는 일에 관심을 쏟기 보다는 우리 재가 불자의 든든한 연대를 이루어 나가는 작업을 서둘러야 하겠다. 스님들께 의지하려 하기보다는 우리들 나름대로 힘을 모아서 우리가 진정 바로 설 수 있는 초석을 만들어야 하겠다 하는 쪽으로 움직이게 되었지요. 한편 스님께서는 그런 저에 대하여 무심하다는 서운함이 있으셨겠지만, 잠시 동안은 서로의 일에 충실한 것이 좀더 나은 앞날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부대중이 각각 자신의 위상을 스스로 제고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친 뒤에 전체의 조활ㄹ 자연스럽게 모색하는 것이 장기적인 불교 발전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튼,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적어도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그러한 후회는 없이, 앞날의 불교 발전을 위한 주춧돌 하나는 확실히 놓으셨다고 저는 봅니다. 총무원장 선거 과정의 잡음 등으로 또다시 개혁의 이미지에 흠집을 내려는 사람들이 있을지 몰라도, 그것은 전반적인 승려 사회의 성숙도의 문제일 따름입니다. 그런 것을 문제 삼아 근본을 부정하려는 것은, 민주제도의 운영 과정의 미숙과 대중의 의식이 성숙하지 않아서 나오는 문제로 민주 제도 전체를 부정하는 것과 같은 잘못이지요. 적어도 우리의 선택에 확신을 가지고, 그러한 선택에 걸 맞는 우리가 되도록 채찍질하는 노력이 필요 할 것입니다. 참, 이제 총무원장 선거도 무사히 끝났으니 이제 어쩌시나요. 새로운 종단 체제에 남으셔서 개혁의 마무리까지 하실 참이신가요. 제 생각에 스님 기질로 보아 그러실 것 같지는 않고... 아마 훌훌 털어 버리고 걸림 없는 납자의 신분으로 돌아가실 것 같은데... 제 생각이 맞지요. 저도 스님이 그러시는 것에 찬성입니다. 꼭 내가 해야 한다는 아집 때문에 불교계, 아니 우리 사회가 얼마나 상처를 입었던가요. 그러나 그렇더라도 부탁이 있어요. 스님이 그 동안 골머리를 앓았던 불교 개혁의 화두만은 괴롭더라도 그대로 지니고 가세요. 그 동안 바친 세월이 아깝지 않으세요. 그만하면 화두가 꽉 뿌리를 내렸을 만도하구요. 그 화두로 한 소식 하셔서 온 불교계를 다시 일깨우는 사자후를 발하신다면 그 또한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스님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모습이 눈에 선하지만, 제 부탁을 마음으로는 이미 접수하셨을 줄 믿습니다. 곧 눈 푸른 납자의 옛 모습 다시 뵙기를 기대하며 주제 넘은 사설 이만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