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송고구법의 송고시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불교문학 - 조기영 1994년 12월 154호
‘송고頌古’란 고칙古則을 송양頌揚한다는 뜻이다. 고칙古則을 시로서 읊으면서 담겨진 뜻을 기린다는 말이다. 따라서 송고시는 단지 회고懷古나 영고詠古의 형식과는 차이가 있으며 규칙, 곧 조사나 고인들의 행적에 나타나는 불법의 오묘한 진리를 시라는 방편을 통하여 간결하게 노래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불전佛典에서의 ‘송頌’은 ‘게송偈頌’의 한역어漢譯語에 해당하지만 본디 ‘송頌’ 이란 ⌜시경詩經⌟의 여섯 가지 문체 가운데 하나인 ‘송’에서 유래하였다. 옛 사람의 덕을 칭송한다는 뜻이다. ⌜벽암록碧巖錄⌟이나⌜대등국사어록大燈國師語錄⌟에서도 이러한 의미로써 송고의 개념을 취하고 있는데 특히 불조의 언행을 송양 하는 것을 송고라고 하였다. ‘고古’라는 것은 만유의 법됨을 의미한다. 사통팔달의 완전성을 함유하는 항구적인 진리가 바로 ‘고’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는 현세의 모든 인간에게 살아 있는 삷의 법칙과도 같다. ‘다문多聞‘이야말로 청정한 도량을 닦아 무상의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모든 불자들의 수행의 기반이라고 할 때 ’다문多聞‘은 바로 ’고‘에 의거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송고집頌古集⌟은 올바른 수행과 진정한 선정의 세계를 제시하는 지침이자 조사들의 가르침에 해당하는 것이다. 혜충慧忠 국사國師에게 어떤 스님이 “어떤 것이 옛 부처님의 마음입니까? 하고 묻자 국사가 대답하기를 ”담과 벽과 기와 쪽이다“하였다고 한다. 만유의 실재가 법 아님이 없으며 또 부처의 마음이 아님이 없다는 말이다. 실재는 언제나 그 자체로 불법이며 불심이기 때문에 따로 어디서 찾을 필요가 없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양산위佯山偉는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노래하였다. 옛 부처의 마음은 지금과 같으니 내년 봄이 올지라도 꼭 기억하라. 古佛心 卽如今 切記取來年春 ⌜설두송고雪竇頌古⌟를 대본으로 원오 극근克勤이 당시의 수행자들에게 평창評唱한 것이 바로⌜벽암록⌟인데 여기서 원오는 ”송고頌古란 단지 조사들의 수행길을 두루하여 선을 설명한 것이요, 염고拈古란 대강 관담款談에 의거하여 공안公案을 판결한 것이다“하였다. 육조六祖 혜능慧能대사大師가 어느 날 제자들에게 ”나는 신주新州로 돌아 가련다. 서둘러서 나룻배를 손질하라“하니 제자들이 ”스승님께서 지금 떠나시면 언제쯤 돌아오십니까?“하고 물었다. 이에 혜능 대사는 ”잎이 떨어지면 뿌리로 돌아가나니 돌아올 때는 말이 없는니라“하였다. 법진일法眞一과 송원松源은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조사의 언행을 칭양하였다. 오온의 산 덩어리가 온통 공허하여 올 때 말이 없고 갈 때엔 자취 없네. 잎이 져서 뿌리로 가는 뜻 알아야만 나중이라도 비로소 이 종지를 알리라. 五縕山頭一噓空 來時無口去無蹤 要明葉落歸根旨 末後方能達此宗 구름이 트이니 절로 하늘이 넓어지고 나뭇잎이 떨어지자 뿌리로 돌아가네. 안개 낀 파도 속으로 고개를 돌리니 뱃노래가 저 멀리 마을 굽이 퍼지네. 雲開空自闊 葉落卽歸根 廻首煙波裡 漁歌過達村 법진일은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의 인간의 몸은 본디 공허한 것이니 만남과 이별이라는 세간의 속정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요체를 공안으로써 제자들을 깨우친 혜능 대사의 행적을 칭양하면서 노래하였다. 다시 송원은 이러한 깨달음의 종지가 온 마을에 퍼지는 어부들 노랫소리처럼 오랜 세월 동안 속세의 중생들에게 교훈이 되었고, 불자들의 수행과 참선에 지침이 되었음을 노래하였다. 이와는 달리 보각普覺 국사國師 일연一然의 다음의 송고시는 만남과 이별이라는 인간적 상정常情을 노래하면서 애절한 풍취를 자아내고 있다. 천축국 아득한 하늘가 첩첩의 설산으로 애를 쓰며 기어오른 스님들이 애처롭네. 그 얼마나 달을 보며 돛단배를 보냈던고 구름 따라 돌아오는 한 사람도 없네. 天竺天遙萬疊山 可憐遊士力登攀 㡬回月送孤帆去 未見雲동一杖還
불법을 깨우치고 진리를 구하려 신라의 아리나발마阿離那跋摩,혜업惠業, 현태玄泰,구본求本, 현각玄恪, 혜륜惠輪, 현유玄遊와 이름을 알 수 없는 두 스님이 멀리 인도까지 고행의 길을 갔지만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그들의 구법求法정신을 칭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잎이 떨어지면 뿌리로 돌아가나니 올 때는 말이 없다는 혜능 대사의 교지처럼 그들은 말없이 고국으로 돌아와 중생들에게 널리 불법을 시현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일연은 다음의 송고시 에서 이러한 종지를 노래하였다. 수풀 헤치고 바다 건너 안개 먼지 무릅쓰고 지상사의 문을 열고 진리를 얻었구나. 찬란한 연화장蓮華藏은 나의 고국 같으니 종남산이나 태백산이나 봄은 매 한가지리라. 披棒헤海마바 至相門開마바珍 深深다化我故國 終南太伯一故國 이 작품은 의상義傷 대사가 중국으로 들어가 화엄종의 제3조인 지엄至嚴으로부터 화엄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것을 두고 칭양한 것이다. 고인의 행적을 통하여 불법을 깨우친 비로자나불毘盧자那佛의 세계, 곧 연화장漣華藏의 세계에서는 감도 없고 옴도 없으며 만유가 여여如如하기 때문에 중국에 있으나 신라에 있으나 언제나 평온한 고향과 같이 느껴진다. 서산西山대사大師의 (숙원효암宿元曉庵) 세 수는 일종의 회고懷古 형식을 갖춘 송고시로서 옛 고사가 머물던 암자에 들어 참선을 행하며 깨달음을 이루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향기로운 풀이 난 삼월 봄날 진경을 찾아서 호계를 지나네. 약한 바람에도 꽃잎이 날리고 고요한 산엔 새들이 지저귀네. 芳草三春日 자眞過虎 化飛風弱力 山靜鳥能啼 흐르는 시냇물 소리 거문고를 타는 듯 칼같이 뾰족한 층층 봉우리 들쑥날쑥.구름이 깊은 곳에 스님은 선정에 들고 소나무 늙으니 학이 둥우리 옮겨가네. 鳴潤琴常泰 層峯劍不齊 雲深僧入定 松老鶴移· 바둑 두던 사람 어디로 갔는고 길 위에 이끼 덮혀 헤매는 구나. 밤이 오자 맑은 꿈에서 깨이니 배나무 사이 달이 창을 향했네. 著局人何去 封苔路欲迷 夜來淸夢거 梨月向窓低 깨달음을 이루면 중생이 부처요 모든 것이 불법이듯이 맑은 꿈에서 깨인 서산의 눈에는 청정무구한 자연의 세계가 법처일 수밖에 없다. 진경眞境, 곧 참된 진리를 찾아서 호계虎溪를 지나올 때만 해도 약한 꽃잎처럼 바람에 날리던 미혹한 마음이었건만 구름 깊은 곳 이 암자에서 선정에 들자 곧바로 무념 무상의 경계가 펼쳐지고, 각오覺悟를 이룬 뒤에는 배나무 사이로 흰 달이 이 마음의 창을 향하여 나직이 떠있듯이 세간의 모든 번뇌와 분별을 초월한 고요만 있을 뿐이다. 선정에 들어가는 마음의 자세를 ‘소나무 늙으니 학이 둥우리 옮겨 가네’라고 표현하였고, 창 앞에 떠있는 달은 각오의 초월적 경계이자 그 예날 바둑 두던 사람, 바로 원효의 모습이다. 태고太古화상和尙의(승로달마乘蘆達摩)역시 대표적인 송고시에 해당한다. 높고 높아서 잡을 수 없고 넓고 넓어서 맞설 자 없네. 지혜가 미치지 못하는데 물어 뭐해. 어찌 지금껏 너를 어쩌지 못했는가. “모른다”고 했으니 “모른다”는 것은 무슨 물건인고. 양왕이 그 검은 속을 알지 못하였네. 그 검은 속마음이여.오묘한 씀이 항사처럼 끝이 없네. 巍巍乎沒巴鼻 蕩蕩乎無與敵 智不到處安用問 如至今無奈어 云不識 不識箇什아物 深王不지지黑 這어黑어 妙用恒沙也無極 ‘누런 갈대 사이로 쓸쓸히 맑은 바람이 일어나고 잔잔한 흰 물결 하늘에 닿으니 불러도 돌아오지 않고 누가 관음대사가 다시 나왔다고 말했던가, 돌! 黃나起淸風 平波白浪連天千古色 闔國人追喚不廻 誰道觀音再出來咄 양왕을 대하여 ’모른다‘고 말했으니서쪽에서 온 좋은 불심의 곡조로다. 온 세상 사람들이 화답하지 못하자 푸른 갈대 일부러 맑은 물결에 띄웠네. 對深王道不識 好箇西來曲調 擧世人和不得 靑蘆故汔淸彼路 양무제梁武帝가 달마達摩 조사에게 묻기를 “어떤 것이 거룩한 진리의 제일의第一義입니까?” 하자 달마조사가 “확연히 거룩한 진리는 없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다시 양무제가 묻기를 “나를 대하고 있는 그대는 누구요?” 하니 달마 조사가 “모른다” 하였다. 양무제가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하자 달마조사는 갈대잎을 타고 강을 건너 위魏나라로 가버렸다.양무제가 이 일을 지고誌公법사에게 물으니 지고 법사가 말하기를 “폐하는 그 분을 아십니까?” 하였다. 양무제가 “모른다” 하자 지공 법사가 말하기를 “그 분은 관음觀音 대사대사로서 부처님의 심인心印을 전합니다” 하였다. 이에 양무제는 후회하여 칙사를 보내어 달마 조사를 부르려고 하였다. 지공 법사가 말하기를 “폐하의 칙사가 아니라 온 세상의 사람들이 가더라도 그 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하였다.이러한 달마 조사의 언행에 대하여 설두현雪竇顯과 승천회承天懷는 다음과 같이 송고하였다. 거룩한 진리의 확연함을 어떻게 분명히 분별하리오. 마주하여 묻는 이가 “누구오” 하니 도리어 “모른다”고 말하네. 이로 인해 몰래 강을 건너니 그 어찌 가시밭길을 면하리오. 온 나라 사람이 쫓아가도 다시 오지 않으니 천고 만고 세월 동안 공연히 생각이 나네. 생각하지 말아라. 맑은 바람이 땅을 돌 듯 어찌 끝이 있으리오. 聖諦廓然 何當辨的 對問者誰 還云不識 因茲暗渡江 豈免生深棘 闔國人追不再來 千古萬古空相憶 休相憶 淸風아地有何極 남국의 큰 스님은 한 눈만 푸르렀고 양나라의 어진 임금 두 눈이 밝았네. ’모른다‘니 ’확연히‘는 쓸모가 없고 홀로 고생하며 서쪽 나라로 돌아갔네.
南天大士아眸碧 深土賢王隻眠明 不識廓然無用處 孤踨마羅過西京 이 작품들은 불법을 전파하려고 중국에 온 달마조사와 양무제 간에 벌어졌던 일화를 칭송한 것이다. 이는 단지 범어를 사용하는 달마 조사와 중국어를 사용하는 양무제 간의 언어 불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하여 숭명교崇明敎는(진제무성론眞帝無聖論)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진제眞蹄란 지극히 오묘하고 절대적인 것을 말하고, 성인聖人이란 신기로운 지혜로써 행위가 있는 자를 말한다. 행위가 있으면 방편을 말할 수 있고 절대적이면 진실에 나아갈 수 있다. 진실이란 마음을 온전하게 하여 자취를 없애고, 방편이란 끝을 거두어 근본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제라는 것을 어찌 말로써 그 뜻을 밝혔을 뿐이다. 양무제가 어떤 것이 거룩한 진리의 제일의제第一義蹄냐고 물었을 때 달마 조사가 모르겠다고 한 것은 거룩한 진리를 무시하거나 참으로 몰라서가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형상이나 말로써 진제를 구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달마 조사의 속마음을 알지 못한 양무제는 그야말로 각주구검刻舟求劍의 어리석음을 범하고 말았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 것은 그 손가락의 뜻이 달에 있으며, 말로써 도를 표현하는 것은 그 말이 도에 있다. 말만을 귀담아 듣고 도를 돌아보지 않으면 도를 안다고 할 수 없으며 손가락만 바라보고 달을 보지 않으면 도를 안다고 달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지극한 도를 아는 사람은 언제나 언어 밖의 진리를 묘하게 깨닫게 되고 형상 이전의 실체實體만을 얻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