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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어느 노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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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불장일기 - 효림 1994년 12월 154호
스님 간밤에 비가 내리더니 선뜻 겨울이 문 앞으로 다가왔다. 이런 저런 일로 바쁘게 지내다 보니 날짜 가는 것이며 세월 흐르는 것도 모르고 지냈는데 벌써 초겨울이 된 것이다. 들리는 말로는 강원도 일대에 폭설이 내렸다고 한다. 아침 신문에는 한계령과 대관령의 찻길이 눈에 막힌 사진이 실렸다. 비가 내리고 기온이 뚝 떨어지더니 살갗을 파고 드는 바람이 매우 차갑다. 지게문을 비닐로 미처 봉하지 못해 밤새도록 문풍지가 울어 대었다. 어제 저녁에는 책을 보다가 초저녁에 잠이 들었다. 그런데 문풍지 우는 소리에 한밤중에 잠이 깨었다. 그리고는 잠이 오지 않아 혼자 여러 가지 상념에 젖었다. 모처럼 혼자 빈방에서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내 고뇌를 아는지 멀리서 산짐승 우는 소리가 들렸다. 저 산짐승도 겨울비가 어지간히 추웠을 것이다. 나는 출가 사문이다. 이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그 동안 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종단을 개혁한다는 명분 아래 사문의 본 분사를 잠시 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너무 바빠서 자신을 돌아보고 일상의 생활을 점검할 시간조차도 없었다. 그렇다면 출가 사문이란 무엇인가. 아니 사문의 본분사란 무엇인가. 사문의 본 분사는 일대사를 참구하는 수행이다. 수행을 떠나서는 잠시도 사문이 설 자리가 없다. 종단을 개혁하는 것이 아무리 옳은 일이더라도 그것이 바로 본분사의 수행으로 직결될 때 명분을 가지는 것이다. 그래서 종단 개혁은 밖으로 불교사를 바르게 세우고 안으로 자기 본분 수행을 올바르게 하는 것이다. 그 동안 우리 종단은 불교사를 바르게 세우지 못함으로 본분 수행조차 계도를 벗어나 있었다. 전체를 떠나 개인이 없듯이 개인을 떠나서는 전체도 없었던 것이다(一中一切多卽).따라서 불교사를 떠나서 개인의 수행이 있었을 수 없고, 개인의 수행을 버려두고 불교사가 따로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불교사가 바르게 서면 개인의 수행도 바르게 서고 개인의 수행이 바르게 서면 역시 불교사도 바르게 서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전체를 두고 볼 때 종단 개혁이 불교사를 바르게 세우는 일이지만 사문 개인의 삶에서 볼 때는 바로 올바른 수행을 하는 그것이다. 그런데 요사이 우리 종단 개혁은 서로 엉켜 뒤바뀌고 있는 느낌이다. 종단을 개혁하면서 개인의 본분 수행은 돌보지 않고, 종단 개혁을 강 건너 불 구경 하듯이 하면서 개인의 수행에만 천착하고 있다. 이 둘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 종단 개혁은 바로 불교사와 개인 본분 수행이 둘이 아니라 하나로 통일되어 반듯해지는 일이다. 그 동안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종단 개혁이 바로 불교사를 바로 세우고 이어서 본분 수행을 바르게 하자는 운동이었다. 그런데 나부터 이 같은 역사와 수행이 하나로 통일된 개혁을 해나가기보다는 개혁이라는 이름에 스스로 매몰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만 감이 없지 않다. 요사이 종단 안팎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이 그런 생각이 들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종단 개혁이 마치 종권을 장악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종단 개혁은 결코 종권욕 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다. 명예를 탐착하고 자신의 직위와 위상을 높이려고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종단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종권과 명예를 얻은 부분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목적은 아니었다. 만일 명예에 탐착하였다면 오히려 산중 깊숙이 들어앉아 청정한 명예를 원하는 것이 옳았을 것이다. 오직 종단 개혁을 위하여 위법망구위법망구 하는 마음으로 임했을 뿐이다. 이것이 개혁에 동참한 모든 대중의 마음이며 정신이다. 만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개혁을 팔아 자신의 권익을 챙긴 사람일 뿐이다. 행자 소임을 볼 때였다. 하루는 수종사에 노스님 한 분이 찾아오셨다. 옷은 남루하고 초라했다. 노스님은 공양을 다른 사람의 배는 더 드셨다. 그러고도 숭늉과 함께 누룽지까지 한 발우 잡수셨다. 물론 오후 불식을 하시는 탓으로 오공 이후는 일절 아무 것도 잡수시는 것이 없는 분이다. 육십 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 전체가 배고픈 시대였다. 그래서 밥을 많이 먹으면 으레 주지 스님의 눈치를 받기 마련이다. 그런데 객으로 오신 이 스님은 일절 누구의 눈치를 보시는 분이 아니었다. 그뿐이 아니라 이 분은 아무 예고도 없이 오신 분인데 그대로 객실에 눌러앉아 살기로 작정을 하고는 떠나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우리 행자들이 눈치껏 누룽지를 구수하게 끓여주면 그렇게 좋아하시며 칭찬을 했다. 그리고 낮이면 혼자 산으로 올라가 진언주력을 하면서 몇 시간이고 내려오시지 않았다. 우리 행자들에게는 대단한 인기가 있어서 가끔씩 행자 방에 들려 좋은 법문을 해 주셨다. 예날 중국의 고승과 우리나라 신라 시대와 고려 시대의 큰스님들이 공부하던 이야기와 근세 고승들의 수행담을 아주 구수한 입담으로 해 주셨다. 콧물을 자주 흘렸는데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코 좀 풀고 ”하고는 문밖에서 “팽”하고 코를 푸셨다. 그래서 별명이 “코 좀 풀고 스님”이 되었다. 이런 스님이라 다른 스님들은 모두 싫어했다. 먼저 옷차림이 깨끗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주지 스님이나 누구에게나 거리낌이 없이 말을 하는데, 누가 잘못하는 것이 있으면 가차 없이 질타를 하셨다. 그러니 스님들이 싫어하실 수밖에.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노스님은 본디 종단에서 알아주는 스님이었다. 일제 때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분으로 오십 년대 정화 운동 때는 선봉장으로 교단의 청정가풍을 위해서 일했다고도 한다. 그런데 비구 대처간의 장기화된 싸움과 절 뺏고 종단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투쟁이 점차 고질화되어 가자 어느 날 모든 것을 홀연히 벗어 던지고 깊은 산중으로 들어 가셨다고도 한다. 한번은 우리 행자들의 방에 들어오셔서 이런 법문을 하셨다. “산중에 있는 나무들 가운데 가장 곧고 잘생긴 나무가 가장 먼저 잘려서 서까래 감으로 쓰인다. 그 다음 못생긴 나무가 큰 나무로 자라서 기둥이 되고 가장 못생긴 나무는 끝까지 남아서 산을 지키는 큰 고목나무가 된다. 못생긴 나무는 목수 눈에 띄어서 잘리더라도 대들보가 되는 것이다. 너희들도 산중에서 수행하는 사람이 되려면 가장 못난 사람, 재수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산을 지키는 주인이 되고 불교계의 거목이 되는 것이다. 부디 초발심에서 물러나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나는 없는 재주를 가지고 자랑하다가 젊은 시절 공부하기 좋은 때를 잃어버린 어리석은 사람 이니라”하는 얘기도 하셨다. 지금 생각하니 그 때 그 노스님의 얘기가 무엇을 뜻하는 것이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것도 같다. 그리고 나도 부디 그 노스님처럼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 자재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종단 개혁의 일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듯이 우리들이 바라는 것 또한 종권 싸움이 재연되는 것이 아니듯이 우리들이 바라는 것 또한 종권 싸움이 재연되는 것이 아님도 분명하다. 만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종단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나 역시 일생을 그 노스님처럼 자주 코나 풀면서 살아야겠다. 물론 어느 낯선 절의 객실에 앉아 있으면 내게 누룽지 한 사발 갖다 주는 행자쯤은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