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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옛 수도 집안 땅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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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의 숨결과 풍정 - 이호신 1994년 12월 154호
고분벽화, 빛나는 겨레의 은총 이호신 한마디로 집안集安땅의 고구려 벽화는 우리 겨레에게는 물론 인류에게 영원히 빛나는 자랑 스런 유산이자 은총이다. 문명의 역사를 거슬러 “고구려”는 장골의 뼈와 기상을 지닌 대륙인이 거친 마파람을 안고 깃을 날리며 말을 달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승천해 버린 것 만 같다. 그리고 그 승천의 내막과 생전의 이야기를 고분벽화를 빌려 남김없이 증언해 놓은 것만 같다. 지난해부터 ‘아! 고구려...’(조선일보 주최) 전람회가 열풍을 몰고 성료된 시월 말 통계에 따르면 관람객은 무려 삼백오십팔만 명으로 남한 인구 열두 명 가운데에 한 명꼴이 전시장을 찾았다니 언론의 홍보 기능을 떠나서도 유례없는 일로서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 그 주된 관심은 일차적으로 단절된 북방민족 문화를 다시금 만끽하겠다는 의식이 고무된 것이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고분벽화를 통해 고구려 사람들의 생활, 종교, 우주관을 접할 수 있으며 또한 고분벽화의 우수성에 한껏 매료되었기 때문이니라. 이처럼 고구려 열풍에 들떠 있던 지난여름 나는 실재하는 고분벽화의 현장을 찾아 유년 시절의 까마득한 도판과 익히 본 사진에서 벗어나 현지의 벽화를 살펴보는 행운을 누렸다. 먼저 ‘오회분오호묘’는 벽에 바로 그린 조벽지粗僻地 기법으로 채색이 그대로 밀착되어 천오백 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 선명함을 찬연이 발산하고 있었다. 황룡이 꿈틀대고 주작이 날개 짓 하는가 하면 주악비천상과 수레바퀴 신 그리고 소머리를 한 농사의 신 눈에는 그 때 박은 푸른 보석이 반짝이고 있었다. 한껏 물기를 머금은 방울 자체가 자연 코팅 역할을 해 주어 도리어 벽화 보존을 꾀한다니 놀라운 선인의 예지에 감탄할 뿐이다. 그러나 ‘무용총’에서 는 감동에 앞서 가슴이 아렸다. 벽화 기법상 회를 바른 뒤에 그리는 화장지化粧紙 벽화라서 박락이 심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 상태가 매우 악화되어 있었다. 활을 쏘고 달리는 고구려인의 얼굴이 지워져 가며 말의 다리가 잘린 채였고 현실 동쪽벽의 무용도는 다섯 명의 무용수 가운데 한 사람만 얼굴이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 아픈 벽화의 상흔 속에서도 뿜어 내는 벅찬 기상의 현세와 천상의 세계는 시간을 초월한 천지창조의 만다라로서 보는 이의 영혼을 흔들어 놓았다. 어떤 이는 눈물이 솟구쳤다고 하거늘 마침내 영겁의 시간으로부터 배달의 영혼이 환희로써 물결치는 생명의 고동소리를 들었으리라. 나 또한 벽화를 보는 순간 겨레의 자손임을 은혜한 반면 그림을 업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한없이 부끄러웠다. 지워진 무용총 벽화를 모사 복원해 보려고 오십 육년 전 일제의⌜통구通衢⌟(일만문화협회간)도판을 구해 살펴보니 당대의 발굴 성과와 선명한 벽화에서 또 다시 우리의 근대사가 서글퍼서 착잡해져 왔다. 우리의 빛나는 유산이 애초 일제에 의해 해체되고 발굴되어야만 했으니, 고분벽화는 그 자체가 무덤 속의 그림이다. 따라서 처음 제작자는 후세의 사람들이 무덤을 파헤쳐 예술성이 운위되기를 바랬을 턱이 없다. 단지 매장자의 영혼을 기려 오롯한 성심으로 그들의 능력껏 최선을 다했을 따름이다. 그러한 벽화가 어째서 오늘날 이처럼 만인에게 크나큰 감동으로 다가서고, 예술적 가치와 더불어 연구 대상의 보고로 떠오르는가. 그것은 오로지 제작자의 성심이 오늘과는 달리 현제의 이기심을 초탈한 가운데 비로소 가능하며, 시간을 초월하는 영감일 것이라는 생각이 미치자 무딘 나의 붓끝은 자꾸 떨려만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