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화되는 불교문화
오는 9월 30일 여의도 둔치 야외공연장에서는 신라시대에 국가적 행사로 성대히 치루어졌던 팔관회八關會가 재현된다. 서울 정도 육백주년 기념 행사의 하나로 열리는 이 행사는 본디 마음을 맑게 하는 불교 의식인 팔관대계八關大戒에서 나온 것이다. 신라시대에는 왕이 직접 절을 찾아가 부처님께 기도하고 궁중에서는 외국의 사신까지 불러 함께 즐겼으며 온 백성들도 고된 노동에서 벗어나 신나는 판을 한껏 벌였던 국가적 축제였다. 고려시대까지 연등회와 함께 국가의 중요한 행사로 치루어졌으나 조선왕조의 억불숭유 정책으로 거의 사라지다시피 하였다. 다행히 이번에 정부가 정도 육백년과 한국 방문의 해를 맞아 전통불교문화를 복원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왕조의 탄압으로 사라진 불교문화를 다시금 정부가 앞장서서 복원한다는 점이 씁쓸하지만 이를 계기로 대중 속에 불교문화의 저변을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만하다. 이번 행사에서는 팔관회의 재현만이 아니라 영산재도 함께 공연하여 불교문화의 진수를 보여줄 예정이다.
정부가 주선하여 불교문화를 보급하는 사례 말고라도 이미 불교전통의 의례가 사회적으로 정착된 실례가 87년에 있었다. 당시 치안본부(현재 경찰청) 대공분실인 남영동에서 고문으로 참혹하게 숨진 박종철 학생의 경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6월 민주항쟁을 이끌어 낸 박군의 죽음은 곧바로 군사독재의 폭정에 대항하는 대중적 시위로 번져 갔고 그 때 일반 대중에게는 조금은 생소한 “사십구재”를 지냈고 이를 기점으로 국민적 지향은 증폭되었다. 그 때 지낸 사십구재는 그 뒤 민주열사에 대한 통과의례로 굳혀졌으며 91년 봄 김귀정 학생의 죽음에서도 치루어졌으며 김남주 시인의 안타까운 운명 때도 역시 치루어졌다. 물론 불교 신자였다는 점에서 공통의 정서가 있었고, 사십구재라는 불교 전통의 의례를 보편화하여 대중이 자연스럽게 불교 문화에 익숙하게 되었음은 나타내는 바가 크다.
비슷한 보기로는 민주열사추모제를 들 수 있다. 적어도 87년 이전에는 민주열사에 대한 집단적인 추모제가 없었다. 그런데 87년 8월 다시 민중불교운동연합에서 주관하여 개운사에서 열린 “생명 해방의 대축제”에서 민주열사 천도제를 지낸 바 있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88년부터는 해마다 봄에 독재에 항거하다 숨진 무주 유주의 고혼을 달래는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이런 사례는 불교 전통 문화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발전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모범적인 것이다. 기독교 문화에는 제사가 없다. 더욱이 우리 민속의 태반은, 다양한 여러 신을 섬기는 기독교 세계관에서 말하자면 “우상숭배”에 기초하고 있다. 민속적 전통은 역사적으로 민중의 존경을 받았던 인물 역시 신으로 승격되는 파격성이 있다. 그러므로 민족적 문화의 토양은 불교의 세계관과 대단히 유사함을 지니고 있으며 한국불교는 바로 이 점을 섭수하여 대중화하여야 한다는 과제를 부여 받고 있다.
새로운 시도가 필요
대중 문화는 시대의 산물이며 그 시대의 생산 관계를 반영하면서 새롭게 발전한다. 따라서 어느 시대에 대중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문화라도 시대의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면 어느 땐가는 쇠락하게 된다. 유교문화가 좋은 본보기인데 봉건왕조의 정치이념을 반영한 전통을 현대화하지 못한 결과 현대에 와서는 집안의 기제사 문화 정도만 근근히 맥을 잇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도 점차 소멸되는 과정에 있고 이 상태라면 머잖은 장래에 맥이 끊어질 우려가 있다. 불교문화 역시 현대의 사회상을 전통 속에 녹여내지 못한다면 그와 같은 결과를 갖게 될 것이다. 현재 대중에게 일반화되어 있는 불교 명절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다행히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기에 해마다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지만, 그 밖의 불교 명절은 개별 사찰이나 종단의 행사에 그치고 있다. 민족문화의 근간을 이룬다는 한국불교의 화려함에 비추어 볼 때 불교의 다른 명절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옛날에는 음력 7월 보름에 행하는 백중맞이가 손꼽히는 명절에 들었다. 우란분절이기도 한 이 날 절에서는 선망조상先亡朝上의 천도를 빌며 아울러 백성은 여름 농사일을 마치고 연장을 챙기는 “호미씻이”를 하면서 세경을 받아 신명나는 놀이를 즐겼다.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이런 명절이 축소되어 그저 절 집에서 조상 천도제를 올리는 날로 명맥을 잇고 있다. 농업이 상대적으로 쇠퇴하고 도시화되면서 농경사회의 전통문화가 터전을 잃는데다가 불교에서는 이날의 현대적 의미를 발전시키지 못하였기 때문에 명절의 자리를 잃게 되었다.
85년 창립된 민중불교운동연합이 백중날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생명해방의 대축제”라는 명칭으로 연례행사화하였으나 90년대 들어 그 맥이 끊겼다. 민불련은 백중의 의미를 “대중공양”을 현대적으로 발전시켜 단순한 조상의 천도가 아니라 죽은 이의 뜻을 산 사람이 이어받아 더욱 힘차게 세상의 질곡을 헤쳐나가는 날로 기념하고자 했다. 부천 석왕사에서도 같은 취지로 백중 행사를 지역의 노동대중과 함께 하는 날로 정착시켜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 불교의 명절을 대중화하는 노력과 함께 민속절기를 불교가 싸안아야 한다. 91년 서울 영화사에서 동지법회를 사회화하는 시도가 있었는데 당시에 사회적 관심을 끌었던 “실종된 이웃”의 아픔을 함께 하려는 법회였다. 보통 연말이 되면 크리스마스다 뭐다 하여 사회 분위기가 들뜨기 십상인데 이럴 때 동짓날을 불교가 현대화하여 고통 받는 이웃과 함께 하는 날로 자리잡게 한다면 민족의 정서를 바로잡을 수 있거니와 왜곡되는 문화의 흐름을 올바르게 끌어갈 것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한국불교가 왕조의 도움을 받고 융성했던 유교와는 달리 끈질긴 생명력을 가졌던 배경에는 민족 속에 역동하는 불교문화를 존속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에 이르러서는 새로운 민족의 발전을 담당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불교명절을 비롯하여 세시풍속까지 아우르는 불교문화의 대중화를 위하여 과감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 성급한 제안이 될지는 모르지만 차기종단은 이 점을 각별히 인식하여 발전 계획을 수립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