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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겨레의 성지, 백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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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의 숨결과 풍정 - 이호신 1994년 09월 151호
백두산!
겨레의 자손으로 태어나 백두산을 떠올린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하물며 반세기 동안 금단의 땅이었던 백두산을 찾아가는 것은 내 생애의 환상이요, 미지의 꿈자리였다. 백두산은 현실의 이상으로서 차마 범접하지 못할 성지요. 내 영혼 자락에 묻어 둘 성역이었다.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단군의 개국 신화가 시작된 곳. 백두산은 배달겨레의 가슴 깊숙이 아로새겨 있는 민족의 영산이자 국토의 성역이요. 통일 조국의 신앙처가 이니든가. 위로는 광활한 발해의 영토와 막강한 고구려의 기상을 품어 왔고 아래로는 백두대간의 혈관과 천지의 기운이 실핏줄처럼 국토 산하에 스며 가이 민족혼의 맥박이라 할 것이다. 이처럼 오랜 경외와 금단의 시간을 넘어 꿈의 실현으로 백두산 길이 열린 날은 지난 칠월 하수이었다. 조선족 중심의 중국땅 연길과 용정을 거쳐서 백두산 가는 길은 불볕 더위와 비포장의 흙먼지와 설레임의 장도로서 여섯 시간이 넘게 걸렸다. 평남벌은 곡창 지대의 풍요를 묵시적으로 보여 주고 화룡은 담배 생산지답게 집집마다 건조 흙담집이 즐비하다. 창 밖의 윗도리를 벗은 새까만 아이들의 눈빛과 광할한 초지는 언제고 개발의 힘을 기대하는 환경일 뿐인가. 조선족의 연길과는 달리 판자 조각에 붉은 한문 간판은 모두 조악해 보이고 반듯한 건물하나 찾기가 어려웠다. 마침내 백두산(장백산) 매표소에 도착하자 한국의 선경, 현대, 쌍룡그룹의 광고탑이 반가운 것은 마치 중국 땅에서 백두산을 지켜 내는 우리의 희망을 보게하는 까닭일까. 할인승 승합차로 나누어서 잘 닦여진 길을 따라 오르자 울창한 숲과 산림지대는 해발 이천 미터를 기점으로 민둥산이 펼쳐졌다. 갑작스런 초원지대에는 구름송이 풀, 두메양귀비, 패랭이꽃, 바위구절초, 씨범꼬리 등 희귀한 야생화들이 산자락을 휘돌아간다. 올라온 길을 뒤돌아 보자 마치 산무덤이 군집을 이룬 듯한 능선 아래로 흰 띠를 두른 길목만이 선명한 것이 귀가 먹먹하고 아랫도리가 싸늘하게 느껴졌다. 장백산 기상 관측소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황급히 급경사를 기어오르는데 저 하늘과 맞다은 산정이 백두 영봉이요, 그 아래로 천지가 펼쳐진다 하니 갑자기 숨결이 가빠져서 나의 걸음은 더디게도 자꾸만 미끄러졌다. 아, 백두산 천지!
나는 한참을 속으로만 웅얼거릴 뿐 일체의 상념도 일행의 모습도 분간할 수 없이 면벽삼매에 든 선승처럼 굳어졌다. 무슨 기대와 소망을 호흡해야 할지, 다 부질없는 망상은 버리고 다만 장엄한 영봉의 기상과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천지의 저 맑은 쪽빛을 내내 바라볼 뿐이었다. 이곳저곳 봉우리를 살피는데, 건너편 장군봉 지역은 북한땅이라 하니 그제서야 분단의 현실과 백두산 천지가 진경으로 다가왔다. 나는 비로소 스케치북을 펼치고 붓을 들었다. 청명한 천지는 일 년 중에 사십여 일에 그친다고 한다. 귀한 행운 속에서 일행이 막 하산하려는데 구름이 휩싸이는 영봉의 모습은 마치 공연이 끝난 뒤 무대의 막이 서서히 내려지는 것만 같다. 천지의 물은 달문(月門)을 거쳐 장백폭포(비룡폭포)로 떨어지는데 이끼의 비릿한 풀내음과 용트림하는 물길을 거슬러 오르자 깍아지른 절벽에 방금 물빨래 광목을 들어올린 것 같은 물줄기가 장관을 연출했다. 천지의 물은 아스라이 송화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비록 지표상 천지가 송하강에 잇대어 있다지만 지하 수맥의 실핏줄을 이루어 두만, 압록강 이남으로 흘러들었음을 어찌 부인하랴. 백두산을 떠나오면서 더 이상 관광을 목적으로 민족의 성산이 개발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찌 민족과 겨레의 상징인 영산을 쉽게만 달려갈 수 있을까. 더운 가슴과 벅찬 동포애로서 준령을 넘는 성찰의 시간 또한 공감되어야 하리라. 따라서 민족이 흩어져 이민과 유랑의 길을 떠돌다가도ꡐ백두산ꡑ을 떠올림은 민족공동체의 집합이자 원천이 되고 마는 까닭에 겨레의 정신은 오늘에서 내일로 살아 숨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