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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소리는 은은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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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황남호 1994년 09월 151호
한번도 길다고 느껴본 적이 없는 방학이다. 학교 보충수업, 학원에 쫓기다가 불교 신자이신 부모님의 권유에 힘입어 답답한 도시와 일정에서 벗어나려고 ‘해인사 하계 수련회’에 참가하였다. 양념으로 남학생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나에게는 일석삼조의 완벽한 휴가(?)였던 것이다. 들뜬 마음으로 해인사로 향한다. 아무 일 없다는 듯 몇 번씩 와 본 해인사라서 생각없이 들어선다. 변함없이 들려오는 색색 처마밑 풍경 소리는 언제 들어도 마음을 편하게 한다. 섬세하고 웅장한 부처님과 주변의 조각품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석굴암을 만든 석공의 ‘영감’과 ‘정성’을 연상해 본다. 회색 옷을 똑같이 입은 우리는 첫날부터 빡빡한 일정을 마치고 탁 트인 밤 공기를 마시며 숙소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볍다. 집 아닌 숙소로 향한 길은 편지 못한 마음과는 달리 푸석하고 먼지 나는 친숙한 땅을 밟는 기분 좋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까만 하늘에 달 하나 눈썹같이 떠 있고 별은 눈에 띄지 않는다. 달 하나로 장식하기에는 너무 넓고 까만 천장이었는데.
다음 날 아침 새벽에 세 시에 일어나 예불을 드린다. 반쯤 감긴 눈으로 부처님을 원망하며 절을 하다 보면 땀이 난 등을 스쳐가는 새벽 공기와 바람을 느낀다. 「어린왕자」속의 왕자에게 의미있는 그 장미처럼 어떤 바람보다 나에게 의미있는 바람이 된다. 세 시간 동안의 예불 뒤에 꿀맛 같은 아침 공양 시간이다. 발우 공양-자기가 먹은 그릇에 물을 부어 찌꺼기까지 마시는-을 하기에 정말 죽을 맛이다. 스님께서 강조하시는 ‘숭늉’ 얘기를 듣고 이제 구수한 숭늉이 나오는가 했더니 발우 속의 물이라니 세상에 이렇게 야속할 수가. 과일 한 조각 주지 않으니 괜히 서러워진다. 거기다가 잠깐 사귄 친구들의 물까지 마셔야 하는 일명 ‘폐수물’을 마시기란 지옥가기보다 더 싫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작은(?)노력으로 음식에 대한 고마움을 절실히 깨닫게 해준 이 발우 공양이 오히려 고맙게 여겨진다.
가부좌 자세로 앉아서 스님의 재미없는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그 얘기에 깨닫는 게 아니라, 그걸 들으면서 뜻밖에 다리가 아파도 참아야 한다는 인내를 배우게 된다. 가끔씩 다리가 아파서 펴고 있으면 어느새 스님께선 죽비로 왼쪽 어깨를 친다. 남학생들 다 보는데 차마 아프다는 소리는 못하고 인상만 찌푸리고 있으면 다시 오른쪽 어깨를 준비삼아 두 대를 가볍게 때린다. “따다 탁, 탁” 리듬감 있게 박자를 맞추는 죽비 소리가 밉상이다.
저녁에는 참선을 한다. 시범을 보이는 스님의 모습에서 또 다른 모습의 부처님을 본다. 잡념 하나 없는 평화로운 얼굴에서 부처님의 미소를 찾아본다. 윤회 이야기나 세속 삶의 덧없음을 얘기하는데 물소리와 바람소리 섞인 법문은 흥 나는 팝송이나 가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앞의 것이 세속을 벗어난 소리라면 뒤의 것은 때에 찌든 속세 소리같다는 점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자연의 신비함과 장엄함에 취해 본다.
마지막 날은 천팔십배가 있었다. 다리가 아파 죽을 지경인데 능청스럽게 잘 하시는 스님이 얄미워진다. 손에 들고 있던 염주를 바로보던 스님께서 한번씩 우리가 잘 하고 있는지 살피기 위해 뒤를 돌아본다. 땀을 뻘뻘 흘리면 스님 절을 쫓아가는 우리를 보며 대견스러워 하고, 나도 그 모습에서 힘을 얻는다. 백팔배도 잘 못하는 내가 천팔십배를 하고 나니, 부처님 말씀처럼 온 세상이 다 내 것 같았다. 도중에 게으름 피우는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려고 죽비를 들고 가는 도중, 죽비 소리가 나자 바로 그 자리에서 절을 하는 스님의 모습에서 절 한배의 허용도 자신에게 용납하지 않는 철저함을 느낀다. 새벽 세시에 일어나 오로지 부처님만을 생각하며 생활하는 모습은 겉으로, 수식 하나 없이 안으로 깔끔하고 당당하면서 화려할 수 있는 알찬 생활임을 느끼게 한다.
넷째 날은 ‘자성광自性光’이라는 벌레 같은 법명을 받았다. 다른 애들은 예쁜 법명을 받는데, 나는 남자 이름에 이런 법명이라니, 부처님의 불공평을 탓 해 본다. 이렇게 수계식을 마친다. 처음 간 수련회였지만 다른 어떤 것보다 뜻깊었다. 나흘 동안의 소중한 체험과 생각들을 감사하게 여기며 다음 수련회에서는 자유 시간을 주었으면 하고 스님께 감히 부탁드려 본다. 자연을 느끼며 생각할 시간-풋풋한 흙냄새와 향긋한 풀내음을 맡으며, 에어콘이나 선풍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부드럽고 시원한 바람에 전율을 느끼고, 오랜만에 내리는 비를 보면 문학 소녀(?)가 되어 볼 수 있는-이 부족하여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들 정신이 헤이해질까봐 빽빽히 시간표를 짠 스님 나름대로의 뜻을 무신한 생각이지만.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던, 무궁무진한 우주의 신비처럼 막연하 부처님의 세계에 몇 발짝 가까이 간 듯하다. 팝송 대신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밥을 먹고 난 뒤 커피 대신 녹차를 마시고, 피자 대신 가래떡을 즐기고, 콜라 대신 수정과를, 양주 대신 막걸리를 마시는 현대인의 모습을 기다리면서... 물질적인 것보다는 그 이상의 정신적인 것을 찾을 수 있는, 멋을 알고 여유를 부릴 줄 아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이번 수련회를 통하여 고생하시고, 특히 해인사는 더 이상 아무 생각없이 들어설 수 있는 의미없는 곳이 아님을 깨닫게 해 주신 여러 스님들게 감사드린다. 지금도 여전히 부처님은 웃고 계시고 풍경 소리는 은은하게 흩어지고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