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움 끝의 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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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조향림
1994년 09월 151호
찜통 더위에 내가 짜증내지 않고 잘 회향할 수 있을까, 조금은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해인사 일주문을 들어섰다. 벌써부터 긴장해서 그런지 평소 해이한 합장도 바른 자세로 이쁘게 되었다. 조금은 떨리는 사천왕문과 부처님이 될 수 있는 불이문을 지나니 바로 보경당이 시야에 들어왔다. 수련 첫 시간은 발우공양 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수련 기간 중에 밥줄이 걸린 문제라 열심히 들었다. 발우란 양에 알맞은 그릇이란 뜻이고 범어로는 ‘발다라’ 라고 한다. 또 발우 공양은 모든 사람이 똑같이 나눠 먹는다 하여 ‘평등 공양’ 이라고도 하고 ‘청결 공양’ 낭비 없는 ‘절약 공양’을 뜻한다. 죽비소리에 따라 달라지는 절차가 무척 복잡했고 머리 속에서 왔다 갔다 했다. 저녁 공양 시간에 다행히 스님께서 자상하게 잘 지도하면서 내일도 잘 하라고 하셨다. “오늘 한 것은 맛보기야. 내일은 얘기 안 해 줄 거야.” 이렇게 말씀하셨다. ‘난 오늘도 가르쳐 주었지만 우왕좌왕했는데’ 내가 먹어 걸른 퇴수물이지만 마시기엔 조금 찝찝했다. 그래도 다른 조원에게 피해 갈까 두려워 다 마셔버렸는데 이 물 속에 고춧가루 등 다른 양념이 팅팅 붓는 것 같은 망상이 들었다. 청결 공양이긴 하지만 내 뱃속에선 전혀 아닌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공양 때에는 양념을 그릇에 많이 묻히지 않으려고 반찬 대신 국만 먹고 찬은 받지 않았더니 조금 깨끗해졌다. 지금 밝히는 것이지만 매우 죄송하게 생각한다. 이렇게 두 번 했다.
저녁 공양 때 팔조가 너무 떠들었다. 나도 걱정은 했다. 혹시 퇴수물 마실 것 같아 조용히 하라고 밥 먹으면서 손짓 눈짓 다했다. 점심 때 삼조, 일조가 마셨기 때문이다. 퇴수물 거두고 바루를 싸려고 하는데 스님께서 다시 펴라고 하셨다. 역시나 마시는 것이다. 얼마나 맛이 이상한지 거기에다 반찬 냄새까지 섞여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그 때 그 작고 동글한 안경에 동글한 얼굴이 얼마나 밉게 보이는지, 그리고 퇴수물을 먹이면서 싱글싱글 웃는 모습이 어찌나 정이 뚝 떨어지는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지금 밝히지만 억지로 다 먹고 자면서 그 스님 욕을 중얼중얼 많이 했다. 이제 와서 대단히 죄송하다고 하면 스님께선 빙그레 웃겠지.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스님께서 싱글싱글 웃는 모습이 참 잘생겼던 것 같다. 그 뒤로는 퇴수물 노이로제가 걸려 계속해서 세 끼를 물만 먹고 굶었다. 정말 발우 공양은 힘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집에선 밥풀도 다 긁어 먹어 밥을 남기지 않는다면 생활 발우 공양이 아니겠는가? 잘 해야지 했던 다짐이 발우 공양만은 잘 하지 못해 씁쓸하다. 다음 해는 더 잘 할 것을 기약하고 스님과 부모님 그리고 부처님께 용서를 빈다.
새벽 예불을 마치고 부모은중경을 독경하였다. 이 경을 한번이라도 읽어 본 사람이라면 부모를 죽이지도 업신여기지도 불효하지도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면 과연 나는 어떤가. 기성 세대라 얘기가 통하지 않는다면서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마구 고집을 부리고 밥도 안 먹고 속만 썩였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난 이제부터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려고 한다. 이 길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올바른 일이라 생각한다. “내 어머니가 비록 레프라(문둥이)라 하더라도 다른 어머니와 바꾸지 않을 것이다” 하는 말처럼 난 어머니를 그리고 아버지를 사랑할 것이다. 가뭄 속에서도 비는 쏴와쏴와 잘도 내렸다. 얼마나 반가운 비인가? 그렇게도 뙤약볕만 내리쬐고 오지 않던 비가 수련 기간중에 온 것은 수련생 중에 큰 인물이 있기 때문일거라고 스님께서 말씁하셨다. 그 사람이 혹시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짧은 비였지만 해인사 경내에 산뜻한 푸르름과 깨끗함을 느껴지게 하고 내 마음도 싱싱하게 해 주었다. 내가 큰 인물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끝없는 노력과 질주가 필요하겠지만 난 해낼 자신감이 조금씩 생겨났다. 중학교 삼학년 때 나는 통도사 방장스님을 뵈었다. 그 때 어렵게 가슴을 졸이면서 아는 스님을 통해 만나뵈었는데 내가 삼배하고 나서 어린 마음에 무슨 말씀을 들어 보려 했지만 스님께서는 내게 침묵만 가르쳐 주셨다. 그 뒤로 나는 높은 경지에 이른 분들과 회색 옷을 입고 머리카락이 없는 사람은 아주 무뚝뚝하고 어려운 종교라 생각했다. 하지만 수련 생활은 힘들지만 불교가 그리 어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자신을 찾긴 어렵지만 어려운 것도 어찌 보면 쉽고, 지겹던 주제의 법문도 자신의 마음에 따라서는 쉽고 재미나는 법문으로 바뀐다고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좌선도 어렵게만 느껴지던 것이 지혜는 샘솟고 괴로움은 사라진다고 생각한다면 해 볼만 하지 않는가. 이 모든 걸 생활 속에서 흉내라도 내 본다면 얼마나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천팔십배를 했다. 가장 화려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처음에는 다리도 아프고 온몸이 다 쑤시는 것이 하기 싫고 짜증나기에 충분했다. 절을 하면서 절은 왜 만들어서 수련하러 온 우리들을 이렇게 땀으로 목욕시키는지 부처님을 원망도 했다. 하지만 오백배를 마치고 쉴 때 조용히 걸으며 생각하니 이왕 하는거 잘 해 보자는 생각이 들어 열심히 했다. 그러고 나니 아픈 건 어디가고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내가 다 해냈다는 그 희열. 해 보지 못한 사람은 모르리라. 성인은 ‘몸을 환난으로 여긴다’는 말이 생각난다. 잠깐이나마 성인의 희열을 느꼈던 것 같다. 힘들고 괴로웠지만 뭘 얻어 가는 것 같은 수련회는 소리없이 끝났다. 하지만 많은 수련생은 가슴속에 하나씩 꼭꼭 넣어 갔으리라. 숙소가 너무 멀어 염치없다 치고 남학생 칫솔을 빌어 양치질하고 캠프파이어 때 잘 놀지 못한 일. 수련 법우들과의 작은 다툼, 장난기 어린 편지 등 아련한 추억을 뒤로 하고 힘들었지만 즐거운 마음과 활기찬 몸으로 법보종찰 해인 신문을 나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