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 동안의 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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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소은정
1994년 09월 151호
인연이 닿아 올 여름에는 해인성지에 잠시나마 머물 수 있는 복덕을 누렸다. 불전에 삼배조차 제대로 드릴 줄 몰랐던 문외한이 지칠대로 지친 마음 쉴 곳을 찾을 요량으로 훌쩍 집을 떠난 것이 비록 기한부였을망정 뜻밖에 어줍잖은 출가가 되고 만 셈이다. 본디 편안한 생활을 즐기는 성격은 아니지만, 처음에는 스님들이 생활하는 법도를 따르기가 쉽지 않았다. 가는 사람은 붙잡지 않는다고 하니 실은 슬그머니 그냥 돌아가 버리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좀 적게 자고 자고 까다롭지만 예를 갖추어 공양하고 다리가 저리도록 반가부좌 좌선하는 것도 한이틀 되풀이하니 적잖이 적응이 되었다.
새벽 세시, 가야한 하늘을 수놓은 은하가 비추는 산길을 걸어 법당에 이르며 언제나 스님들께서 먼저 오셔서 환히 불을 밝혀 두셨다. 어색하지만 단정하게 승복을 입은 임시 출가자들이 동그마니 앉으면 새벽 예불이 시작되었다. 법당에서 비롯하여 온누리에 울려퍼지는 듯한 새벽 예불 소리는 너무나 장엄하여 듣는 이의 온몸이 잔잔히 떨리었다. 세상에 그토록 아름다운 합창이 있을 줄이야. 돌이켜 보면, 수련의 모든 과정이 그러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좌선은 가장 힘겨운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화두는 그만두고서라도 흐트러짐 없는 자세를 오랜 시간 동안 견디는 일조차 여간 힘겹지가 않았다. 몸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려고 스님네들은 어깨죽지에 얼마나 많은 죽비를 맞아야만 하셨을까.
수련 일과의 대부분이 이루어지는 보경당 안에는 군데군데 ‘묵언黙言’ 이라는 두 글자가 쓰여 있었다. 그것은 바로, 우리는 여기 이 곳에 함께 모여 앉은 사실만으로도 벌써 많은 얘기를 나눈 셈인데 굳이 무슨 말들이 더 이상 필요하겠냐는, 이제는 철저하게 혼자가 되어보자는 뜻 다름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그런 침묵 가운데서도 참지 못하고 터져 나온 소리들이 있어 쉬 잊혀지지 않는다. 부모은중경을 함께 독송할 때와 참회의 천팔십배를 드릴 때 이곳저곳에서 들려 오던 간간히 흐느끼는 소리들... 그 무엇보다도 불가의 가르침을 여실히 함축해 보여 주는 스님들의 일과는 바로 발우공양이 아닌가 싶다. 얼핏 보면 궁색한 먹거리를 앞에 두고 무에 그리 복잡하게 형식을 따지는지 싶지만, 바로 그 하찮은 먹는 일마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음은 수행인으로서 당연한 자세가 아닐는지. 간단하고 담백한 발우공양에서 탐식과 살생을 멀리하는 미덕을 배울 수 있었다. 또한 천수통에는 티끌 하나 허락하지 않음은 소중한 시주물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남은 찌꺼기 따위로 땅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배려를 보여 주는 것이리라. 이와 같이 살뜰하고 지혜로운 발우공양으로 절 집의 부엌에서는 퐁퐁 거품이 둥둥 떠 있는 구정물을 흘려 보내는 일은 결코 없을터이니, 이보다 더 장한 부엌 살림이 또 어디에 있을까. 색안경을 쓰고 연신 사진기 셔터를 눌러대는 법당 밖 저들도 한번쯤 이 발우공양을 하였으면 하는 염원을 하였다. 우스운 얘기지만 한번은 천수가 탁한 벌로 같은 조원들이 그 물을 다시 나누어 마신 적이 있는데,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생각하니 오히려 그 물맛이 감로수甘露水나 진배 없었다.
어느 날은 아침 공양을 마치고 비구니 스님들만 있는 아담한 어느 암자로 산보를 갔는데, 아기자기하게 가꾼 꽃밭과 스님들의 해맑은 모습이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관상은 심상에서 나온다고 하였는데, 스님들이 그런 모습을 한 것은 그 마음들을 닮은 까닭이 아닐까.
해인사, 아니 한국불교의 보배 ‘팔만대장경’을 가까이서 알아 볼 수 있었다는 것 또한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제작을 가능케 한 지극한 정성과 불심을 알고 난 뒤에는 보는 것이 예전과 같지 않았다. 그냥 보는 것과 알고 보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반가운 사실은 해인사 고려대장경연구소에서는 이미 대장경의 전산화 작업을 시작했으며 또한 적잖은 자원 봉사자들이 이 일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왜 이 시대인들은 천 년 전의 사람들이 감내한 그 번거로움과 수고로움을 다시 한번 되풀이해 보는 갸륵한 마음을 내지 못하는지 안타깝기도 했다. 편리한 컴퓨터 대신 목판과 조각도로써 천 년 저느이 그 장엄 불사가 이 시대에 다시 한번, 그리고 또 다시 천 년 뒤에 재현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흐뭇할까. 하지만 혹시 알까. 지금 전산화 작업을 하는 중에도 어떤 이는 모니터에 한 글자 쓰여질 때마다 그 때처럼 한번씩 절을 올리고 있을는지.
수련대회 마지막 날에 수계식이 있었다. 연비할 때 아픔을 느끼면서 이제부터는 언제나 초발심을 잊지 말며 참다운 불자의 길을 가리라 마음 속으로 다짐했었다. 합장 반배하고 산문을 나서니 뜻밖에 식구들이 먼 길을 마중나와 있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멀어져 가는 가야산 자락을 자꾸 뒤돌아 보며, 고마운 스님들과 좋은 인연으로 짧지만 함께 할 수 있었던 정다운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는 사이 입가에는 미소가 번져갔다. 닷새 동안의 어설픈 입산 출가는 그렇게 끝이 났지만, 지금 여기 책상 맡에는 그 때 스님들께서 선물로 주신 ‘다향茶香’ 이라는 글귀가 쓰인 찻잔에 맑은 물을 담고 그 위에는 고운 꽃잎 하나 띄워 놓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그 앞에 합장 반배 드리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