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희 그 끝은 보이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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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최태욱
1994년 09월 151호
방학을 며칠 앞둔 어느 날, 해인지를 보던 어머니께서 ‘해인사 불교수련대회’에 관한 안내문을 보고 참가를 권하셨다. 이제까지 몇몇 수련회에 참가해 보았지만 그렇고 그래서 이 역시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별 뜻 없이 그러겠다고 했다. 이십오일 두시. 등록을 하고 잠시 뒤 일정이 시작되었는데 얼핏 보니 특별한 모임 등에서 여러 명이 함께 온 경우가 꽤 되는 것 같았다. 별로 사교적인 성격이 못되는 탓에, 이십팔일까지 혼자서 참 심심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강의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친구를 사귀고, 잠들기 전까지 우리 조의 대부분 법우님들과 안면을 익힐 수 있었다. 마지막 회향식 날 여러 법우님들과 작별하자니 무척 아쉬웠다. 예전의 나로서는 그 짧은 시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생각하면 그것 역시 수련회 성과 가운데에 하나라고 느껴진다. 이제껏 참가해 본 여러 다른 ‘수련회’가 대체로 야유회적이었던 것과는 달리, 불교수련회는 정말로 ‘수련’을 목적으로 한 까닭에 수련회라면 이쯤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만치 내게는 인상적이었다. 수련 일정에 포함된 여러 가지, 예를 들어 발우공양이라든가, 백팔배, 참선, 사경 들에 담긴 그 참다운 의미를 깊이까지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도 흔히 말하는 ‘뭔가 다르다’는 느낌만큼은 확연히 받을 수가 있었다. 과정 가운데는 무척이나 힘들고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도 있었지만, 그러한 과정을 하나하나 거쳐 가면서 내가 스스로 성장하는 모습을 그려 볼 수가 았었다. 중학교 일학년 어린 법우들이 어렵고 힘든 수행 과정을 열심히 이겨내는 모습을 보면서 더 큰 힘을 얻게 되기도 하고, 어린 법우님들을 격려하고 법우님들을 서로 격려하며 더욱 수행에 몰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지나간 삼박 사일 동안의 일정, 결코 길지 않지만 짧지도 않는 그 시간 속에서 내가 얻은 것을 일일이 다 얘기할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예전의 나는 불교를 단순히 ‘알기’만 했는데 이번 수련회를 통해 불교에 좀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다. 내가 직접 느끼면서 불교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여전히 그 끝은 보이지 않지만 말이다. 돌이켜 보건대 단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그 기간이 너무나 짧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삼박 사일의 짧은 기간은 이번 여름 방학을 다른 이제까지의 어떤 방학보다 더 뜻 깊은 것으로 만들어준 시기이기도 하다. 이 소감문이 다음 수련회에 참가한 여러분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지만, 짧은 글로 해인지의 한 페이지를 망쳐 놓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끝으로 내게 좋은 인연 맺게 해 주신 해인사 포교원 여러 스님들과, 강당에서 정진하는 스님임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잠시 미루워 두고 삼박 사일 귀중한 시간을 우리를 위해 보낸 현민, 덕영, 혜만, 혜종, 일우스님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