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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보호권이 확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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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4년 07월 149호
법원의 새로운 판례
종단을 개혁하는 우리시대 최대의 불사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는 요즈음 한국 불교계에 희소식 하나가 조용히 전해졌다. 서울민사지방법원의 판결이 그것이다. 나라 안팎으로 뜨거운 정치 쟁점이 산적해 있고, 월드컵 축구마저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는 상황이라 종단의 문제가 자칫 묻혀지기 쉬운 때에 전해진 판결이라 큰 관심을 끌지 못한 사안이다. 법원의 이번 판결은 그 동안 문화재 보존이 개발 명분에 밀려 왔던 것을 감안할 때 큰 의미를 갖는다.
지난 6월 2일 서울민사지법 합의 51부(재판장 박준수 부장판사)는 서울 강남의 봉은사가 주식회사 신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던 공사금지 가처분신청 사건에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봉은 사내에는 많은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고 사찰 자체가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며, 주식회사 신성 측의 공사를 중지하라고 결정하였다. 다만 “봉은사가 공탁금 일억 원을 거는 조건”으로 공사를 중지하는 것이다.
이번 판결은 전통 사찰 주변에서 흔하게 발생하는 건축 행위나 개발 공사에 대해 사찰 및 사찰이 보유하고 있는 각종 문화재를 보호할 수 있음에 그 의미가 크다. 법원의 판결이 있기까지 공사를 강행하려는 측과 중지시키려는 봉은사 측의 갈등은 몸 싸움마저 일으켰다. 지난해 10월 봉은사의 북동쪽에 바로 붙은 강남구 삼성동 76번지에 지하6층, 지상19층의 고층 건물을 세우려는 공사를 시작하면서 문제는 발단되었다. 건물이 들어설 땅은 도시 공원법에 의하여 근린 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야산인 그 곳에 높이가 팔십 미터에 이르는 엄청난 높이의 건물이 봉은사 곁에 서게 된 것이다. 그것도 건물 한 동이 아닌 두 동이 나란히 설 계획이었으므로 만일 예정대로 건축될 경우 사찰이 입을 피해는 막대한 것이다.
봉은사 측은 지난해 12월하순부터 고층 건물의 신축 공사 현장을 찾아가 공사중지를 요청하였다. 신도 일천여 명이 공사를 항의하는 농성도 벌였다. 여러 면에 걸친 공사 중지 노력에 힘입어 올해 1월 7일부터 강남구청의 중재로 신성산업과 협상을 벌였다. 그러나 협상이 별 성과를 얻지 못하고 갈등이 계속되자 건축주는 공사를 강행하였다. 이에 사찰측에서 실력으로 공사를 중지시키려고 하여 충돌이 빈번하였다. 신성 측은 공사인부를 동원하여 봉은사의 출입문을 덤프트럭으로 봉쇄하기도 하고 대웅전 앞마당에서 연좌 농성을 하는 등 양측의 감정은 악화되었다. 타협점을 이끌어 내지 못하자 지난 4월 공사금지 처분신청을 서울민사지법에 냈고 그 신청이 받아들여져 신성산업의 공사를 중지시켰다. 일단은 법원의 판결이 아직 몇 차례 남아 있지만 지금껏 논란이 되고 있는 사찰 주변의 환경권에 대한 판례가 남게 됨으로써 봉은사만이 아니라 다른 사찰에서의 비슷한 사례에 이 판례가 준용될 수 있으므로 교계의 큰 관심이 아닐 수 없다.

문화재 보고로서의 사찰
문화재는 역사를 고증할 수 있는 실증적 자료로서 문자로 기록된 역사를 뒷받침하는 역사적 유산이다. 크게 분류하여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민속자료, 기념물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비록 외형상의 분류에 따라 이런 저런 문화재라 하지만 그 문화재 하나하나는 민족적 생명을 갖고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전해져 온 문화재를 얼마만큼 잘 관리하는지는 곧 민족 생명에 대한 보존과 계승을 나타내는 잣대가 된다. 지나치게 보호하여 그 본디의 의미를 훼손하여도 안 되고, 가치를 상실시키는 민족 문화를 경시하는 일이 있어서는 더욱 안 된다. 더욱이 한국 불교는 한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습합하면서 그 자체가 민족의 생명을 이어 가는 문화적 젖줄이며 민족 문화 유산의 보고이다. 두말할 필요조차 없이 민족 문화재의 대부분이 ‘성보 문화재’ 이다. 그러므로 사찰 주변의 환경이 무작정 오염되고 망가지는 일을 바로잡으려 함은 한국 불교의 유산을 지키는 일인 동시에 민족 유산을 수호하는 것이다.
또한 국가도 그러한 인식을 하기 때문에 다른 종교에는 없는 ‘전통사찰보존법’을 제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물론 이 법이 과연 사찰의 발전을 위한 법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어쨌든 제정 목적이 “민족 문화의 유산으로서 역사적 의의를 가진 전통 사찰을 보존함으로써 민족 문화의 향상에 이바지하게 함”(전통사찰보존법 제1조 목적)에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정부가 지금까지 사찰 경내의 문화재 보호에만 신경을 썼을 뿐 사찰 주변의 환경에는 무관심했고 어떤 경우에는 정부가 앞장서서 전통 사찰의 주변환경을 훼손시키기도 했다. 특히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지방 재정을 확보하려는 마구잡이 개발이 잇따르고 있어 사찰의 피해는 막심한 실정이다. 가까운 예로 수원의 봉녕사를 들 수 있다.
수원시가 시 행정상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봉녕사 입구에 대규모 쓰레기 매립장을 설치하였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 매립장을 형질 변경하여 대형 교회가 세워질 뻔 했으나 봉녕사 측의 거센 항의로 현재 형질 변경이 안 되고 있다. 봉녕사만이 아니라 골프장 건설 등으로 피해를 입는 사찰도 적지 않다. 이런 피해를 입으면서도 법으로 보호 받지 못하여 왔는데 이번 법원의 판결은 바로 이 점을 직시하여 문화재의 보고인 사찰의 주변 환경에 대한 ‘보호권’을 인정하였다.

교계의 적극적인 관심이
전통사찰보존법은 이 법에 의해 등록된 사찰 경내에서의 영업 활동 금지(제9조)등을 규정하고 있으며 사찰에 부속한 동산이나 부동산의 사용에 대한 규제(제6조)를 명시하고 있다. 사찰의 밖에 대해서는 어떤 규정도 없다. 반면에 문화재보호법은 지정문화재(보호물 보호구역을 포함한다)의 현상을 변경하거나 그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행위를 할 때 장관의 허가를 받도록 명시하고 있다(문화재보호법 제20조 등). 곧 등록 사찰이 보유하고 있는 문화재 또는 그 보호 구역에 대해 일정한 규정이 있어 어떤 행위를 하고자 할 때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전사법은 사찰 경내의 보호를 중시하지만 문보법은 문화재의 보호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그 영향권까지 포함한다. 그런데 현행 건축법 시행령 제8조의 각항은 특정문화재로부터 백 미터 이내의 지역에 건축하는 건축물의 경우 시, 도지사의 사전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신성산업은 봉은사 경내의 지정 문화재인 판전에서 상당한 거리를 두고 건축을 하고 있으므로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법원은 건축법시행령의 취지 역시 일정한 거리 밖이라 하여도 전통 사찰의 부속 건물 비록 그것이 사전 승인 대상 문화재에서 누락된 것일 경우에도 보호 받아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법원은 문화재 보호를 하나의 ‘환경권’으로 해석하여 지정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사찰의 경내 전체를 전역으로 인정한 것이다. 만일 수원지가 세수 확대를 위해 쓰레기 매립장 터를 형질 변경하여 봉녕사 입구에 대형 교회가 들어설 경우 건축법 시행령으로는 타당한 조치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법원의 판례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은 분명코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보호 구역의 훼손일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 문화적 환경“의 보호를 우선하려면 건축법 시행령의 수정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지정문화재로부터 일정한 거리 이내로 되어 있는 조항을 지정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경내로부터 일정한 거리 밖으로 바꾸어야 한다. 여기서 경내라 함은 사찰의 경우 외곽 담장 또는 일주문이나 매표소 등을 경계로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사찰을 단순히 유형의 문화재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무리한 조치일 수 있다. 민족의 무형적 유산인 음악과 춤 그리고 공예 기술 등이 살아 있는 곳이 사찰이며 무엇보다 정신적 귀의처가 사찰이다. 그럼에도 전사법과 문보법의 취지가 지금껏 수도 도량을 보호, 보존하는데 많이 부족하였다. 국가나 지방은 돈벌이 하기 위해서 사찰 주변 환경의 보호를 뒷전으로 제껴 놓았다. 그런 까닭에 곳곳의 도량이 망가지고 오염되었다. 지리산 천은사 위로 지리산 횡단 도로가 개설되어 고찰로서의 분위기가 훼손된 예는 가장 좋은 보기이다.
이제라도 민족 유산의 보고인 사찰이 진정 보호 받을 수 있도록 각종 법령을 수정, 보완할 필요가 있다.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온 불교 관계 법령을 단일화하는 작업을 정부와 불교계가 공동으로 착수하여야 겠다. 이번 법원의 판결이 상급심에도 고스란히 인정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