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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의 숨결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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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 이호신 1994년 07월 149호
지난 시간 나의 그림 수업은 희망과 절망이 함께 빛과 그림자를 드리웠다. 십 년 전 현실에 지쳐 있는 나에게 지역답사는 새날의 빛처럼 ‘이 땅의 은혜’ 였다. 그러나 때로는 지역 삶을 통한 애증愛憎은 혼란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십세기 물질 문명과 충돌하는 전통과 오늘의 양상이 빚어 내는 모순 속에서 방황하였다. 따라서 조형 목표를 설정하고자 했던 나는 긴 모색의 터널 속에 빠져 있었다. 나이 서른이 되어 문화 유산을 찾은 탓도 있지만, 오늘날 이 땅의 교육과 정신 문화는 무엇을 향해 가는지 개탄스러웠다. 때로는 시대간의 엄청난 호흡단절을 실감하면서도 이 땅에서 자생하는 ‘뿌리 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을 찾아 길을 떠났다. 그 일은 내가 이 땅의 사람으로 태어난 체감과 체질을 확인하는 일이고, 다양한 지역의 풍토와 정서를 체험하며 쌓아가는 길이었다.
생애를 걸고 오로지 돌만 쪼다 눈을 감았을 석공의 자취에 감탄하기도 하고 한때 불국토를 이념으로 이룬 많은 유물과 유적에서 총체적인 문화 능력을 느끼면서 오늘의 현실을 안타까워 했다. 말이 천 년이지 이름에 연연하는 오늘의 예술가가 또 다시 천 년이 지난 뒤 비바람 속에서 침묵해 온 저 문화 유산에 무엇으로 견줄 수 있을지 돌이켜 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시절 나의 그림은 지엽적인 사물에만 머물러 나무를 그리다가 숲은 보지 못하고, 숲에서 헤매다 산을 놓치는 낭패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답사를 통하여 차츰 위안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 흙의 숨결이 내 가슴에 젖어 오는 감격으로부터 부질없는 명리를 떨 칠 수 있었고, 무엇을 위해 찾고 어떻게 그려야 할지를 고민하기에 이른 것이다.
문득 저문 논에서 마주친 농투성이의 지친 모습에서 이농 현상으로 인한 폐가와 신흥 아파트가 새 역사의 땅으로 겹치는 현장에서 나는 또 한 장의 역사로 기록될 인문과 자연 그리고 지리의 현주소를 생각했다. 이십세기 자본주의가 낳은 인위적인 모순 속에서도 대지의 자연은 넉넉한 품으로 두 팔을 벌리고 달려 오는 자는 언제나 품어 주는 숨결이 있다. 사계의 변화가 각별한 이 땅에서 새벽의 여명과 해돋이의 장관, 대숲의 시원함과 솔밭의 아늑함, 갯벌에 빠지는 노을의 황량함, 저 멀리 사라진 달과 별빛이 새삼 그리운 이 땅에서 우리의 정서를 가꾸고 회복하는 일은 진정 무엇일까. 소리 없이 소통하는 자연의 순리는 나의 경험으로 눈을 새삼 닦고서야 존재의 현상으로 기운이 차 오르고 사물과 대상이 또한 질서 있게 정연하였다. 따라서 과거와 오늘의 수맥이 비로소 흐르고 묶인 매듭이 풀리듯 잠시 고였던 물길이 터지는 소리를 들었다. 공해와 수질 오염의 환경에서도 끈질기게 뿌리를 내린 초목, 떠난 자리에도 볕은 어김없이 찾아 들어 흐드러지게 핀 꽃, 인적 드문 산야의 야생화와 돌부리 하나도 이 땅의 소산이 아니던가. 비탈진 산허리에서, 호미질 하는 아낙의 뒷모습에서 이 흙에서 자라 우리의 생명을 이어주는 콩밭과 고추가 예전 같지 않지만 파꽃과 배추 흰나비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결국 뭇생명의 존귀함이 제 생명으로 이어지는 공존인가 보다. 이렇듯 선인들이 뼈를 묻어 온 터전에서 뿌리를 내리고 토양에 순응하는 우리의 숨결이 또 다른 날의 바람 속에 있을 뿐이다. 이 모든 것들이 누굴 위해 피고 지며 누구에 의해서 제 모습으로 당당하게 반짝일 수 있는 그 날이 올 것인가.
참 된 것은 결코 크게 소리 치거나 요란스럽지 않다. 요즈음의 생활 문화가 무질서하다면 과거의 문화 터전은 질서를 잃지 않았다. 좋은 옛 그림은 볼수록 조형 세계와 사유의 질서를 담고있어 잔잔하게 그리면서도 깊은 넓은 파장으로 우리를 안식으로 이끈다. 문방 생활의 격조와 집터를 잡아도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안목, 결코 넘치지 않게 심고 가꾸는 여유와 소박함, 세한삼우歲寒三友로서 세속의 번잡함을 이겨내던 그 깐깐한 지조는 다 어디로 갔는가. 오늘의 문화 현실은 뿌리는 상해 가는데 꽃과 열매만을 구하려는 우매함이 돌출하고 엉뚱한 접목과 토양에 부대끼는 유실수를 심으려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서구의 모방과 수입 문화에 열을 올려 무엇이 선진국인지조차 모르고 GNP 놀음에 ‘서구화는 곧 선진화’ 라는 슬로건에 우리 것은 매몰되고 무시당했다. 이 땅의 것은 모두 허약하고 보잘것없다는 식으로 덮고서야 마음 편하게 수용 문화를 자족할 수 있었다. 문화 예술인 스스로도 혼란의 기로에서 선택을 강요 당하는 현실에서 자구책보다는 대세의 흐름에 동조하였고, 집단 논리로서 국제화 시대의 정당성을 옹호하였다. 그러나 곰곰이 따지고 보면 그들의 노력은 하나같이 밖으로부터의 위세였지 우리 것을 찬찬히 살펴보고 전통의 광맥을 캐려는 노력은 참으로 미진하였다. 해외 여행이다 연수다 하여 이웃 나라의 필수로 관심을 나타내면서도 우리의 지역 박물관과 지방 문화를 살피는 일에는 참으로 인색하였다. 결국 이러한 상황은 주체성을 상실한 채 너나 할 것 없이 세태의 흐름에 떠밀려 정통정신의 망각과 분별없는 생활문화를 초래해 온 것이다.
요즈음 들어 이러한 반성은 문화와 문명이 같지 않다는 인식과 함께 문화가 인간 생활의 총체적 모습이며,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려고 일구어 낸 방식이라는 인식 아래 서구 문화 일변도의 문화 가치 기준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나 또한 나의 작업 방향과 조형 목표를 서구 지향 일변도의 세태에서 이 땅과 내 몸에서 솟구치는 기운으로부터 시작하고 싶다. 새삼 선인의 지혜가 그립고, 꺼진 등잔에 심지를 돋구어 바른 전통의 등불을 밝혀야 함은 실로 나 자신을 부르는 마음자리인 것이다. 그 일은 아직도 이 땅에서 찾을 수 있는 삶의 소박한 진원지와 정신 문화의 원류를 찾아 떠나는 일이고, 삶과 자연의 조화 그 질서를 찾아가는 일이다. 나 또한 이 숭고한 미덕의 실천으로 망각된 우리의 문화 자산을 일깨우고 이웃에게 소용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때론 자랑스런 조형 유산의 터전을 복원해 보려는 노력과 오늘의 실상을 그리는 일, 또한 선현들의 체취를 찾아 헤매는 시간이 헛되지 않음을 긍정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 상황은 가혹하게도 환경 오염과 자연 훼손으로 이 땅의 산하는 슬픔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길을 떠나 올 적마다 절감하는 애증의 배반은 곧 이 땅의 슬픔이요, 나의 괴로움이다. 따라서 이 땅의 진원지를 찾아서, 반도의 숨결을 찾아 떠도는 한 언젠가 꿈과 한이 포개지는 시간이 될 것이고, 내 그림 또한 시대의 아픔과 소박한 꿈의 터전을 찾아 뒤척이며 흐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