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물 맑히기’ 빠진 중장기 발전계획, 거룩한 스님에의 귀의는 불자들만의 바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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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9년 08월 210호
조계종 총무원장 고산스님과 교육원장 일면스님, 포교원장 정련스님이 19일 불교회관 1층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6대 종책 방향과 60개 사업과제를 골자로 한 ‘화합과 공생의 자비공동체 구현을 위한 종단 중장기 발전계획’을 발표했다.
6대 종책 방향은 수행과 포교 중심의 승가상 구현, 신행의 정립 및 신도조직의 강화, 불교문화의 대중화를 통한 전통문화의 재창조, 불교사회운동 전형 창출 및 조직 건설, 불교정보화 인프라 구축, 기간시설 건립 등이다. 각 종책 방향을 구체화하려는 종단근현대사 연구, 사찰 납골당 건립 지원 등 6개 부문별로 4~18개의 사업과제를 제시했다.
조계종은 “세계화·정보화, 민족문화에 대한 관심 증대, 시민사회단체 및 종교의 역할이 증대되는 사회변화와 승가의 위의와 지도력 향상을 요구하는 종도들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고 6대 방향 및 60대 과제 선정의 의의를 설명했다.
60개 사업과제는 올해부터 시작해 2002년까지 완료하거나 1차 성과물을 낸다는 계획이다. 각급 신도 단체 임원 연수, 자비의 대중화 기금 조성 둥 이미 실행하고 있거나 기획단계에 들어간 것도 있다.
조계종은 중장기 사업계획 수립으로 21세기를 향도 할 불교상을 정립하고, 종단사업의 일관성과 집중성 유지, 종단구성원의 공감대 형성과 역량을 결집하기 위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업계획 발표의 목적 가운데 하나가 고산총무원장 체제의 공고화에 있음을 감추지 않았다.
조계종의 중장기 사업계획은 95년 ‘종단 4개년 발전계획’이라는 명칭으로 추진되어 97년 교계지도자 설문조사(1500명 대상)를 통해 ‘종단 5개년 계획안’을 마련했고, 98년과 올해 상반기까지 사회환경과 조건에 비춰 종단의 내부 역량과 한계를 점검하여 사업의 구체성과 집중성을 보완하는 등 오랜 연구를 거쳤다. 당초 지난해 10월 발표 할 예정이었으나 종단사태로 미뤄졌다.
이번 중장기 계획 수립에 경영학의 전문이론을 활용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종단의 계획 수립에 전문기법을 도입해 사업과제 선정의 과학성을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종도들의 이해를 구하겠다는 방안은 발전적인 모습임이 분명하다. 즉, 종단이 처한 환경 분석과 내부능력 분석의 결과를 결합함으로써 전략방향을 도출하는 SWOT 분석기법을 도입, 조계종의 강점과 약점, 기회와 위협 요소로 주변 환경을 분석했다. SWOT은 조계종의 강점(strengths)과 약점(weaknesses), 주변환경의 기회(opportunities)와 위협(threats)에서 영문 첫 글자를 조합한 표현으로, 이 기법은80년대 초 미국 레이건 정부의 경제정책을 수립하는데 적용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조계종은 이와 함께 브레이크 다운break down 기법을 적용해 1차로 선정된 사업과제 가운데서 기술적, 경제적, 법적, 조직적, 사업기간 등의 타당성 검토를 거쳐 필요한 사업이라도 역량이 미치지 못하거나 사업기간이 적정하지 못하면 제외해 실현성을 높였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한 중장기계획에서 흐트러진 승풍을 바로잡는 ‘청정승가 구현’에는 소흘했다는 지적을 면하지 못한다. SWOT 분석을 하며 내부 약점 가운데 승가와 관계된 것이 분규 이미지 고착과 구심력 미약, 수행풍토 및 사회적 지도력 결여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종책방향으로 ‘수행과 포교중심의 승가상 구현’으로 잡았다. 그리고 종책 방향을 실현키 위해 열개 사업을 선정했다. 올바른 승가상을 구현하지는 취지일 텐데, 현재의 흐려진 승풍을 바로 잡을 사업은 설정되지 않았다. 승가 교육제도 및 체계를 개선한다는 것은 앞으로 출가하는 사람에게 제대로 교육해서 올바른 승려를 배출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어른의 교사이듯, 어른들은 아이들의 교사이다. 서로 배움을 주고 받는다는 점에서 승가도 다른 집단과 다르지 않으나, 승가의 특정상 기성의 논리가 더욱 영향력이 크다. 기성 승단에 대한 바로 잡음의 대책이 빠진 것은 승가교육의 많은 부분이 오염된 채 이어진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최근에 총무원 주변에 돌고 있는 괴문서는 조계종 승단의 승풍이 얼마나 흐려졌는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이다. 이 괴문서는 ‘종단을 걱정하는(육화회, 청림회. 실천회) 중앙종회 의원 일동’을 발신처로 하고, 원로, 중진, 종회의원, 본·말사 주지, 선원, 강원, 종립학교, 교계언론, 일반언론, 재가신도단체를 수신처로 하고 있다. 발신처에서 전형적인 괴문서의 형식을 띠고 있다. 이 괴문서는 한 중진급 중앙종회 의원스님의 행위를 고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괴문서를 본 사람들의 반응이 놀라웠다. “설마, 그 스님이 그럴 리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은 없었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런 소문은 예전부터 있었는데”라며, 왜, 누가, 지금 이런 문서를 만들어 배포했느냐는 쪽에 더 관심이 많았다. 총무원 주변의 움직임을 정치적으로 보는 견해가 대부분이었다. 괴문서에서 주장하고 있는 내용의 진위 여부에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괴문서가 총무원 주변에 뿌려진 지 닷새쯤 뒤부터는 어디서 뿌렸으며, 종단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스님들 간의 갈등관계의 산물이라는 설득력을 얻어 가고 있다. 그러면서 “갈등 관계에 있는 상대방도 깨끗하지는 못하므로, 괴문서 소동은 곧 가라앉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승가내의 은처, 도박, 축재가 더 이상 놀라움이 아니라는 도덕불감증의 종단 현실이 안타깝다. 94년 개혁종단이 들어서며 은처승에 대한 조사가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발표되지 않았을 뿐더러 은처승의 축출을 위한 어떤 조치가 취해졌는지 종도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다. 은처승에 대한 조사자료는 해당되는 개인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다. 음해하려고 의도적으로 생산권 소문과 추측일 뿐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조사는 신중해야 하고, 해당자에게 조사된 자료의 열람이 허용되어야 하고, 변명과 자료에 대한 반론권도 주어져야 한다. 자료가 종단의 이익을 위한 뚜렷한 목적에 쓰여져야 함도 당연하다. 그렇지 않으면 자료 소유자의 무기로 둔갑해 악용될 수 있다. 무산되었지만, 지난 해 11월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은처파일’을 이용해 득표에 이용하려 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정부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정司正이 행해지지만, 그 때마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이유도 사정자료를 정권안보의 도구로 쓰기 때문이 아닌가. 명명백백明明 白白해야 하는 이유가 또한 여기에 있다.
‘청정승가’는 조계종의 대외용 선전문구로 전락해선 안 된다. 그런데 7월 9일 열린 초심호계원의 지난해 8월 서울 삼성동 혜림장 도박사건 관련 스님들에 대한 징계도 온당한가 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관련자 열한명의 스님 가운데 한 명만이 공권정지 이 년의 징계를 받았다. 나머지 열 명은 문서견책에 그쳤다. IMF 관리체제와 물 난리로 온 국민이 생존의 고통을 당하고 있던 때에 인천의 사표이어야 할 스님들이 억대도박판을 벌였는데,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문서견책으로 결정됐다.
윗물 맑히는, 조계종의 청정성을 회복하는 주요한 과제가 없다는 점이 이번 중장기 발전계획의 가장 큰 허점이다. 60개 사업과제는 별도의 운영계획과 실행계획서를 토대로 연도별 분야별로 인력과 예산을 고려하여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뒤에라도 60개라는 숫자의 의미가 없다면, ‘윗물 맑히기’는 반드시 과제로 포함되어야 한다. 조계종의 분규 이미지를 털어내고, 승가의 사회적 지도력을 회복하는 일은 사회적으로 능력 있는 스님의 배출 또는 활발한 사회 활동보다 ‘스님다운 스님’에 있다는 지적은 결코 작은 소리가 아니다. 거룩한 스님에 귀의코자 하는 바람이 불자들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60대 사업과제의 실현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은 사회의 급격한 변화 등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종단의 안정과 화합이 우선이다. 아직도 정화개혁회의의 움직임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교구본사를 근거지로 삼으려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내년부터 있을 주지 교체기를 이용해서는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이번 계획 발표에 종단의 안정과 화합을 위한 조치는 언급되지 않았다. 공들여 만든 중장기계획을 바라보며 불안한 마음을 떨치지 못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