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는 바로 시일진데
이떤 이는 게를 지었다고 한다.
시나 게나 모두 같은 것이니
모름직이 읽을 때 자세해야 한다.
我詩也是詩
有人喚作偈
詩偈總一船
讀時順子細
이는 문학성 및 예술성에 근거하여 구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문학적 범주를 확대하여 포괄적으로 문학작품을 수용하려는 오늘의 연구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구분은 그리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습득의 말대로라면 중송 또는 응송이 게가 되는 것이고, 풍송 또는 고기송이 시가 될 수도 있으며, 아니면 이러한 불교의 게송 전체를 게라고 하고 이에 대비되는 속세의 한시를 시라고 한 것일 수도 있다. “시언지 가영언詩言志 歌永言”이나 “시자지지소지아詩者志之所之也”를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불교시가를 창작하는 작자의 ‘志‘ 가 교훈적인 서술이든 관념적인 표상이든 정감적인 술화이든 간에 표발하였다는 자체와 문학적 창작과정 및 형식을 갖추었다는 점에 있어서 시가의 범주에 속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본고에서는 이러한 불교시가의 갈래를 다음과 같이 설정하여 불교시가에 대한 이해와 연구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는 불교시가의 갈래 규정에 있어서 그 골격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 주제 및 내용, 그리고 형식 등에 따라 다양한 하위장르가 설정될 수 있음을 전제로 해둔다.
기야祇夜: 응송應頌, 중송重頌
① 응법송리應法頌理: 송리시頌理詩- 불교경전에 의거하여 그 법리를 거듭 강조하면서 노래한 시가.
② 응법송덕應法頌德: 송덕시頌德詩- 부처의 일대기나 행적에 의거하여 그 덕을 찬양한 시가.
③ 응사찬술應事讚述: 찬술시讚述詩- 불교적 사실에 의거하여 덧붙여 찬양하거나 자신의 술회를 노래한 시가.
④ 송고구법頌古求法: 송고시頌古詩- 조사의 행적을 가리고 고칙古則에 의거하여 불법을 노래한 시가. 가타伽陀: 풍송諷頌, 고기송孤起頌, 불응부중不應付重의 조송造頌.
⑤ 불응시법不應示法: 시법시示法詩- 일반 불제자들에게 불법을 포교하면서 노래한 시가.
⑥ 불응설리不應設理: 설리시說理詩- 불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나 입장을 직설적으로 노래한 시가.
⑦ 즉물선정卽物禪定: 선정시禪定詩(禪詩)- 외물을 직관적으로 노래하고 선정禪定의 과정이나 의취를 노래한 시가.
⑧ 영물오도詠物悟道: 오도시悟道詩- 외물을 노래하거나 의탁하면서 깨달음의 경지를 노래한 시가.
‘시’ 와 ‘가’ 에 대한 논의는 굳이 하지 않으며 위의 분류에서 붙인 ‘시’라는 명명으로 ‘시가’ 전체를 포괄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 둔다. 이러한 분류는 지극히 형식적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이러한 시도 자체가 불교시가의 갈래를 규정하는데 더욱 혼란을 가져올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동안 불교시가의 갈래에 대한 논의가 구체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어차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도 사실이다. 불교시가에 대해 선구적 업적을 남긴 이종찬 교수와 인권환 교수도 그 논저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하여 숙고한 바 있고, 김갑기 교수 역시 이러한 불교시가의 유형에 대해 이종찬 교수가 분류한 유형에 따라서 ‘탈속한정脫俗閑情의 시정신’이라는 논문에서 문사들의 불교시가를 교리시敎理詩, 불사시佛事詩, 선취시禪趣詩 등으로 나누어 논의한 바 있다.
그럼 본고에서 규정한 갈래의 유형에 대하여 논의하가에 앞서 먼저 불교시가의 유형에 대하여 오랫 동안 숙고하여 나름대로 그 체계를 갖추고 있는 이종찬 교수의 선시의 유형에 대해 살펴보면서 본고에서 제시한 갈래 규정이 어느 정도의 적합성 및 타당성을 지니는지 검토하도록 한다. 이종찬 교수는 선시의 유형으로 선가들의 ‘인시우선引詩寓禪’ 에 해당하는 선의 시적 원용에는 ①시법시示法詩, ②오도시悟道詩, ③염송시拈頌詩, ④선기시禪機詩가 있고, 일반 문사들의 ‘원선입시援禪入詩’ 에 해당하는 시의 선적 함축에는 ⑤선리시禪理詩, ⑥선사시禪事詩, ⑦선취시禪趣詩가 있다고 보았다.
먼저 ①의 시법시는 조사들이 일반대중들을 제도하는 데 있어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고 또 표현되어서도 안 되는 선의 묘체를 부득이 시의 형식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혜능 선사의 시법시와 중관 대사, 월저 대사의 ‘임종게臨終偈’를 예로 제시하였다. 다음은 혜능의 시법시이다.
마음 바닥이 여러 종자를 품고 있어
두루 비가 내리면 모두 다 돋아나리.
꽃마음이 다하게 됨을 문득 깨우쳐야
보리의 열매를 절로 이루게 되리라.
心地含諸種
普雨悉皆生
頓悟華情已
菩提果自成
불도들을 교시하고 제도하는 입장에서 일체법을 초월해야 번뇌에서 벗어나 해탈하고 득도하여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였다. 1, 2구에서는 「육조단경六祖壇經」에서 “저마다 스스로의 마음을 관찰하여 자기 본래의 성품을 문득 깨닫게 하되 만약 능히 스스로 깨치지 못하는 이가 있다면 모름지기 큰 선지식을 찾아 지도를 받아서 성품을 보아야 한다” 고 했듯이 마음을 알아 성품을 보아야 한다는 ‘식심견성識心見性’ 의 중요성을 설명한 것이다. 3, 4구에서는 허상인 ‘공화空華’ 의 실정을 통하여 정각해야 한다는, 곧 부처의 법리를 올바르게 깨우쳐 마음 자리를 바로잡고 수행하며 나아가 일반 중생들을 교화해야 한다는 보리심을 강조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바로 본고에서 밝힌 ‘불응시법不應示法’ 또는 ‘불응설리不應說理’ 의 대표적인 예가 된다고 하겠다. 작품이 지어진 동기나 의거하고 있는 출전의 내용에 따라서 시법시, 또는 설리시라고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불교시가의 갈래를 규정하고 유형을 분류하고자 할 때 무엇보다도 그 작품의 출전과 지어지고 불려진 동기, 작품을 수용하는 독자나 청자 등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중관대사와 월저대사의 ‘임종게’도 단지 시법示法에 있지 않고 ‘영물오도詠物悟道’ 와 ‘불응설리不應說理’ 에 가깝기 때문에 오도시, 설리시라고 해야 할 것이다.
②의 오도시에 대해서는 시법시가 화자와 청중의 관계에 있어서 듣는 대상자를 의식할 수 있으나 오도시는 독백이며, 깨달음의 희열과 황홀감을 간직할 수만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표현하는 것, 이것이 오도시라고 하였다. 따라서 시법시는 동일한 작자가 여러 편을 가질 수 있으나 오도시는 깨닫는 그 순간 한번의 작시로 족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법연 선사, 청해 선사, 비구니의 오도시를 그 예로 들고 있다. 이들 작품들은 대체로 ‘영물오도詠物悟道’ 의 창작 태도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들 작품은 본고에서 규정한 오도시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다음은 청해선사의 오도시이다.
실제로 옛날부터 속진俗塵을 받지 않았으니
이 가운데에는 오래됨도 새로움도 없다.
하물며 푸른 산이 우리 불가佛家의 물건인데
제 집 찾으려 하지 않고 따로 길을 묻는다.
實際從來不受塵
箇中無舊亦無新
靑山況是吾家物
不用尋家別問津
이 작품은 ‘영물오도’ 라기보다는 오히려 ‘즉물선정卽物禪定’ 에 가깝다고 하겠다. 공안에 가까운 문답을 통하여 스스로 선정의 정로를 깨닫게 되는 자신의 심회를 읊은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청산처럼 속진을 벗어나 청정무구하고 무념무심의 오묘한 이치를 깨닫는 불가의 이치를 선적 의취를 통하여 노래한 점으로 볼 때 이는 선정시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③의 염송시는 조사들의 어록이나 공안에 대해 시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 뒤 「선문염송」이나 「송고연주통집頌古聯珠通集」에 실려 있는 작품들이 대부분 염송시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들 작품들은 본고에서 규정한 송고시, 설리시, 선정시, 오도시 등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책 이름이 ‘송고’ 또는 ‘염송’ 이라고 해서 송고시 또는 염송시라고 명명하는 것은 무리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