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채색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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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이연정
1994년 08월 150호
유난히 무공해를 찾는 친구가 있다. 오랜만에 친구들이 만나면 그녀는 친구들에게 잔소리하기 바쁘다. 혹여 음식이라도 남기면 우리나라의 쓰레기 공해가 얼마나 심각한 줄 아느냐에서부터 세제를 쓰고 있느냐는 등 깔끔하고 원칙을 좋아하는 그에게 대강 하고 넘어가자는 우리의 대강주위는 늘 못마땅하다.
그런 그녀가 요즘 어떤 계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불교에 한참 심취하여 불교 잡지 하나를 소개해 달란다. 그런데 언젠가 한번 ‘잡지는 많아도 볼 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며 그 특유의 독설로 잡지 공해론을 펴는 것을 들은 바고 있고, 잘못 소개해 주었다가 불교에 대한 관심까지 식을까 걱정이 되어 신중하게 고르고 고른 것이 「해인」이었다.
판단은 적중했다. 깐깐한 그에게서 보기드문 무공해 잡지라는 찬사를 받았으니, 그이 첫마디는 “야, 잡지가 꼭 스님 같다였다. 그러고 보니 「해인」의 빛깔은 무채색이고, 스님들에게서 나는것과 같은 은은한 향내가 풍기는 듯하다. 아마 스님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스님 필자가 많은 것도 한 까닭일 것 같다. 또 은은하면서도 깊이가 있고 정갈하여 기품이 흐르는 외모(편집)가 한몫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수준높은 편집 덕분에 자칫 지나치기 쉬운 것이 있다. 펴잉ㅎ란 듯하면서도 튀는 글맛이다. 해인을 찬찬히 읽다 보면 글들이 한결같이 감칠맛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즘 잡지들이 시원치 않은 글이라도 화려한 편집으로 그럴듯하게 꾸며놓는 데 견주면 「해인」의 편집은 상당히 정직하다. 이것이 전체의 수준으 높여 준다. 편집의 한차원 높은 정직성과 감칠맛 나는 스님들 애기. 이것이 바로 「해인」을 무공해 잡지이게 하는 요소가 아닌가 싶다.
덕분에 나의 친구는 확실한 불교 신자가 되어 올해는 해인사에서 벌이는 수련대회에 다녀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해인의 무궁한 발전을 빌며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켜 주기를 바라느 한편, 가끔은 무채색 위에 빨갛고 파란 점 하나씩 찍어 주는 묘미도 발휘되었으면 하는 욕심도 함께 부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