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독자의 정서를 반영하는 「해인」이 되길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특집 - 최승천 1994년 08월 150호
어느새 지령 150호라니 십 년이 넘었다는 애기다.
해인사 벽화를 표지 그림으로 할 때 나는 이 잡지가 좀더 두꺼워졌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어느 때부턴가 사십여 쪽으로 늘어났으니 나의 작은 바람이 일단은 이루어진 셈이다.
「해인」지의 주된 독자는 누구일까, 해인사를 찾는 수많은 관광객이 일차 독자일 듯싶다.
그리고 해인사와 인연을 맺고 있는 불자들과 불교 잡지 하나쯤 구독하고 싶어하는 초발심의 불자이겠다. 따지고 보면 산중에 계신 스님이나 나처럼 불교 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주된 독자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관광객은 해인사가 어떤 사찰인지를 알고 싶어할 것이다. 그리고 경내에서 사는 스님들의 생활에 관심이 클 것이다. 과연 스님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실까. 날마다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 등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또 조화롭게 배치된 가람의 모습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대웅전 안의 불상은 왜 그 자리에 모셔져있는지 따위를 알고 싶어할 것이다.
주 독자가 명확히 밝혀졌다면 독자의 구미를 맞추어 주는 일은 편집자의 의무이다. 아마도 아들은 총무원이나 종회의 움직임 또는 스님들 사이의 분규와같은 기사에는 별 관심이 없을 것이다. 오히려 큰스님들의 깊이 있는 법문, 쉽게 쓰여진 교리 강좌, 찬란한 불교 문화에 관한 글들을 읽고 싶어 할 것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불교는 종교로서 세인들에게 어떤 정신적 자양분을 제공할 것인지고 생각해야겠다.
지금의 「해인」지는 이점을 나름대로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교계 움직임이나 사회 현황에 대한 비판적인 글은 「해인」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가이 든다. 물론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려 애쓰는 모습일 수 있겠지만 주 독자가 과연 그것을 원하고 있는지 검토해 볼 일이다. 이미 교계의 다른 매체에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자의 정서를 반영하지 않은 매체는 생명력이 없으며, 결국은 사라지고 만다.
덧붙여 바라는 바는 편집에 좀더 신경을 써 주었으면 한는 것이다. 사진과 컷 그리고 기사가 서로 조화를 이룰 때 읽고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죽비의 소리는 가로 행이 너무 길어 읽는 이에게 지루한 느낌을 준다. 한 면에 많은 기사라도 눈이 고정되게 하는 솜씨. 그것은 편집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