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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무한한 잠재력을 일깨워 주는, 많은 독자가 참여할 수 있는 잡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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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가족 모임을 끝내고 - 편집실 1995년 01월 155호
「해인」 가족 모임을 끝내고

칠십여 명의 「해인」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던 이박삼 일중 둘쨋날 저녁 「해인」지에 미래 시간, 한 용감한 여성 구독자가 거침없이 한마디했다.
“「해인」지가 도착하면 표지만 보고 맙니다.”
전체적으로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독자는 ‘혹, 「해인」지가 귀족주의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물론 책을 보는 사람에 따라 느낌이 모두 다르겠으나, 오다가다 한번쯤 「해인」지를 보았던 것도 아니고, 한 달에 한번 꼬박꼬박 받아 보는 정기 구독자가 한 얘기라서 순간 가슴이 뜨끔했다. 어느 불교지보다 ‘격조 높은’ 잡지라고 은근히 자부하던 터였기에 그랬고, 책을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느 한 사람의 목소리도 놓칠 수 없기에 더욱 그랬다.
어쨋거나 「해인」지는 그 독자의 지적을 소중하게, 그리고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 달 내내 「해인」지를 만드는 일로 발을 동동거리는 우리도 할 말이 있다. 이에 대해 다음날 아침 ‘차 이야기’ 시간, ‘율장 이야기’의 필자인 원철스님의 얘기는 자못 호쾌했다.
“내 그릇을 넓히고 내 눈을 높이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왜 그리 어려우냐, 내 수준에 맞춰 달라는 식의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내가 내 눈을 빨리 열어 불교를 이해하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다음 단계로 끊임없이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노력과 시간, 정성이 필요하죠. 여러분이 우리에게 진짜 스님이기를 원하듯, 우리도 진짜 신도를 만나길 원합니다.”
책을 만드는 사람도, 보는 사라도 새겨들어야 할 말씀이 아닐까.
이 밖에도 「해인」지에 대한 많은 애정어린 주문이 쏟아져 나왔다.
예전의 ‘치문리 일기’나 ‘지대방 이야기’ 같은 아름답고 진솔한 내용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많았고, 방장 스님의 법문이 너무 어렵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철수 씨의 그림 마당을 선호하는 독자들이 많이 눈에 띄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잡지 수준에 맞추라는 식의 요구보다는 독자가 요구하는 쪽으로 가겠다는 생각을 가져 주었으면 한다는 충고, 편집 여백이 좀더 시원스레 많았으면 한다는 얘기, 독자 투고란이 있었으면 한다는 소박한 바람까지 우리 「해인」지는 껴안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 「해인」지가 ‘불교의 무한한 잠재력을 일깨워 주는데’ 힘을 기울였으면 한다는 과학원 이진수 교수의 충고도 우리는 잊지 않을 것이다.
다달이 표지 사진 밑에 숨은 듯 보이는 한편의 글이 ‘시’라기보다는 차라리 ‘그림’ 같았다는 평을 받은 법연스님, 중국 대륙을 행각하고 돌아와 중국 불교의 면면을 들려 준 만우스님, 사찰 예절을 강의해 준 원철스님, 좌선 및 요가를 지도해 준 본해스님 그리고 시종 무언으로 모임을 지켜보며 응원해준 종림스님께 감사드린다.
불편한 몸으로 먼 길을 달려와 삼 년 동안의 「해인」지의 편집장 시절을 담담하게 돌아본 도각스님의 ‘해인 마당’시간과 해인사의 소금 창고를 개조해 서점으로 만들자 ‘한밑천 잡아 장가 가려한다’는 소문까지 감수했다는 여연스님의 걸죽한 입담으로 시작된 ‘차 이야기’ 시간도 흥겨운 자리였다.
충분한 준비가 안 되어 공양이 좀 부실했던 것과 따뜻한 차 한잔을 대접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뜻밖에도 많이 참석해 준 독자들께 머리 숙여 감사 드리며 앞으로도 더욱 매서운 채찍을 부탁드린다.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