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새 잡는 그물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어른을 위한 동화 - 정호승 1999년 08월 210호
경상도 한 농가에 새를 잡는 데 쓰는 큰 그물이 있었다. 그 그물을 ‘덮치기’ 라고 하는데 외양간 처마밑에 벌써 몇 해째 버려져 있었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처마 밑에 버려져 있었으니까 망정이지 우물가나 장독대 뒤에 버려져 있었다면, 그물은 이제 온몸이 흐물흐물 썩어 버리고 말았을 터였다.
그물은 자신이 왜 그곳에 오랫동안 버려져 있는지 그 원인을 잘 알지 못했다. 너무 오랫동안 그 곳에 버려져 있어서 예전에 자신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잘 기억하지 못했다. 지금은 그렇게 외양간 처마 밑에 버려져 있는 것이 자기 삶의 전부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예전에 신나게 새를 잡는 그물이었다. 주인집 외아들이 중학교를 다닐 때만해도 그는 심심찮게 새를 잡곤 했다. 특히 가을 들판에 추수가 다 끝나고 여기저기 나락들이 떨어져 있을 때 주인 아들은 그를 데리고 나가 곧잘 새를 잡곤 했다. 그러나 주인집 외아들이 서울에 있는 외삼촌 집에서 고둥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새를 집아 본 적이 없었다. 가끔 방학 때 고향집에 내려오기도 했으나 주인집 아들은 한번도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는 그런 그가 처음에는 몹시 섭섭했으나 이제는 왜 섭섭해 했는지조차 잘 모르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그는 그 동안 자신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조차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저 그렇게 그 자리에 놓여 햇살이 비치는 것과 바람이 부는 것과 눈비가 내리는 것과 앞마당의 감 꽃이 몇 해째 피었다 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외양간에 송아지가 태어나면서 부터 그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그는 송아지와 어미소가 자기를 두고 나누는 이야기를 우연히 엿듣게 되었다.

“엄마, 저기 저 처마 밑에 버려져 있는 건 뭐야?”
“응, 그거 별거 아니야, 관심 갖지마.”
“도대체 뭔데 허구헌날 저기 저렇게 놀고만 있는 거야?”
“새 잡는 그물이야, 덮치기라고 해. 예전에 주인 아들이 열심히 가지고 놀던 거야.”
그물은 그들의 그런 대화를 듣자 정신이 번쩍 났다. 무엇보다도 어미 소가 자기를 두고 별거 아니라고 한 말에 몹시 자존심이 상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그가 예전에 어떠한 일을 했는지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는 다시 새 잡는 그물로서의 존재성을 확인하고 싶었다. 새를 잡는 그물의 삶이란 새를 잡는 삶을 사는 것밖에 다른 삶이 없었다.
하루는 논에 나가 참새들을 쫓아 내다 돌아온 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주인님, 저도 이제 일을 하고 싶어요. 제게 일을 좀 시켜 주세요. 새를 잡는 게 제 일인데 왜 저를 이렇게 처박아 두기만 하세요? 저를 데리고 나가 새를 잡으세요. 요새 논에 참새 떼가 극성이잖아요?”
주연은 우물가에서 발을 씻다 말고 물끄러미 그를 쳐다볼 뿐 말이 없었다.
그 뒤 몇 번이나 일을 시켜 달라고 이야기해도 주인은 그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주인의 바짓가랭이를 붙들고 늘어져도 주인은 본 척 만척할 뿐이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스스로 새를 잡기로 마음을 먹고 새들이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논으로 나갔다. 논에는 참새들을 잡으려고 비상대책회의를 여는 등 야단이었다. 곳곳에 울긋불긋한 반짝이 종이를 달아 놓고 새들로 하여금 놀라 달아나게 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공기총을 가져와 펑펑 허공을 향해 공포탄을 쏘아대기도 했다.
그는 농부들의 눈에 잘 띄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새들이 날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새들은 날아오지 않았다. 벼들이 익어 고개를 숙이고 추수가 다 끝나도 새들은 날아오지 않았다.
그의 소원은 새를 한번 잡아보는 것이었다. 그는 새를 잡지 못하는 그물로 살아가고 싶지가 않았다. 그러나 새가 날아오지 않는데 어떻게 새를 잡을 수 있겠는가.
참으로 막막했다. 새들은 바닥에 떨어진 나락들을 쪼아먹으면서도 그의 그물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점차 깊은 절망감에 빠진 나머지 어느 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 난 이제 어떡하나? 이제 이대로 썩어 죽는 수밖에 없구나.”
그의 목소리가 너무 절망감에 젖은 탓이었을까.
“너무 그렇게 슬퍼할 것 없네.”
그루터기 하나가 그에게 말을 붙였다.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새 잡는 그물에 새를 잡지 못한다면 어떻게 살아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무척 자조 섞인 어조로 말했다 .

“그건 자네가 새를 잡을 생각만 하니까 그런 걸세.”

“새를 잡을 생각을 하지 않고 어떻게 새를 잡을 수 있겠습니까?”
“새를 날려보낼 생각을 한번 해보게. 그러면 새들어 자네의 그물 속으로 들어올 걸세.”
“새를 날려보낼 생각을 하면 어떻게 새 잡는 그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허허, 자네가 새를 날려보내는 그물이 되면 되지 않겠는가. 남을 위하는 일이라면 때로는 자신의 본질을 변화시킬 줄도 알아야 하네. 나뭇가지를 한번 보게. 나뭇가지에는 왜 새들이 날아와 앉아 있겠는가. 나뭇가지에 새가 날아와 앉는 것은 나뭇가지가 새를 잡은 것이고. 나뭇가지에 앉았던 새가 포르르 날아는 것은 나뭇가지가 새를 날려보낸 것일세.”
그루터기의 말에 그물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러나 곧 나뭇가지와 같은 마음이 되었다. 그러자 새들이 날아와 쉬었다가 또 날아가고 싶을 때 마음껏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