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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빚으로 시작한 「해인」편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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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도각 1994년 08월 150호
꼭 일 년만에 해야지 하고 시작한「해인」지 편집을 지난 5월 호로 만 삼 년을 채웠다. 처음 결심한 것에 무려 이 년을 더한 것이다. 짧지 않은 삼 년 세월을 편집 마감에 쫓기고 부실하게 발행된 책에 가슴 졸이고, 살림살이 펴 나가는 데 온 신경을 쓰다 순식간에 보냈다. 그 사이 지령 100호를 넘긴 월간「해인」은 150호에 이르는 세월의 연륜을 더했다. 단명으로 끝나고 마는 교계 잡지의 수명에 견주어 대단한 생명력임엔 틀림없다. 돌아보건대 이 중요한 시기에 편집장 소임을 보면서 책다운 책을 만들었는가 하는 물음에는 부끄러움이 앞선다. 선배 스님들이 쌓아올린「해인」에 대한 명성이나 권위를 자꾸만 까먹고 있다는 자책을 숨길 수 없기 때문이다. 팀웍을 중심으로 만들어 온「해인」편집 일이 새로운 구성원을 만들지 못하고 편집장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는 구조적 한계가 있는 한 이러한 결함은 노정되는 문제이지도 하다. 아마도 나의「해인」에 대한 인연은 사형 여연스님에게 진 말 빚에서 출발했지 싶다. 80년대 초 해인사 원당암 시절 여연스님은 전통적 산중 수행에 갇혀 있는 교계 현실을 답답해 하며 현대적인 문서 포교에 대한 열망을 가끔 내 보이곤 했다. 일 년 내내 땀 흘려 배운 치문 한권의 양이 팔만대장경의 수백 수천 분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에 두려움 가지고 있던 나로서는 여연스님의 경전 한글화와 문서 포교에 대한 지론에 쉽게 경도될 수밖에 없었다. 그 때 지나가는 말로 사형님이 그런 일을 하면 나는 밑에서 교정 작업이라도 도와 드리겠다고 했던 것이 결국은 삼 년의 긴 세월을 글자와 씨름하게 만들었다.「해인」이 쌓아 온 가장 큰 성과는 문서 포교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것임에 누구라도 주저없이 동의하고 있다. 팜플렛 수준에 지나지 않던 포교지를 알찬 내용과 보기 좋은 디자인으로 혁신하여 선을 보이자 사람들은 월간「해인」의 성과에 크게 주목하여 반기기 시작했고, 결국「해인」은 각 사찰에 이러한 유형의 사보를 만드는 데 선도적 역할을 했던 것이다. 더불어「해인」은 만드는 사람들의 면면도 책 못지 않게 중요했다.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은「해인」지 팀 하면 진보적인 불교의 지평을 열어 가는 젊은 그룹으로 인정해 왔다. 문중이나 파벌 중심으로 나누어지기 쉬운 교계 현실에서 그러한 장애를 극복하고 모인「해인」지 팀은 신선하고 활기차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해인」에 대한 발길은 일에 대한 보살의 원력보다 이러한 사람과 분위기에 대한 동경이 우선했던 것이다. 참으로 낭만적이고 무모한 선택이기도 했다. 막상 일을 맡고 보니 사람은 보이지 않고 지천으로 쌓이고 가로막는 일만 가득했다. 편집 기획, 원고 청탁, 편집 교정, 독자 관리, 영업 등등 어느 일 하나 만만한 게 없었다. 이러한 모든 일을 편집장 혼자서 거의 도맡아 해야 하는「해인」의 인적 구성은 사실 쉽게 일에 지치게 했다. 열악한 재정 형편은 사람을 늘려 일을 분담하는 것을 결정적으로 가로막았다. 이러한 모든 장애 가운데에서도 가장 큰 고민거리는 자꾸만 매너리즘에 빠지는 편집 태도이었다. 잡지란 다달이 새로운 내용과 형식을 창조해야 하는 것인데 충만한 내적 에너지가 없으면 이러한 창조적 생산을 금방 고갈되고 만다. 결국에는 그냥 만든다는 형식에 끌려가고 마는 경우가 참으로 힘들게 했다. 이런 것은 곧 잡지의 정체성으로 나타나 잡지의 활기찬 생명력을 소진하게 했다. 이러한 정체성을 극복하려면 활기찬 사람들로 편집진이 새로이 보강되어야 하겠고, 이제는 읽는 잡지에서 보는 잡지로, 계몽의 성격에서 독자와 만나는 사람이 함께 하는 공동체적인 잡지로 전환되는 것이 당연한 현실이 되었다. 포교의 영역도 이제 단순한 문서 포교에서 신문과 방송의 매체까지 확대되었다. 그만큼 잡지의 고유한 영역이 축소되었다는 의미도 있을 터이나. 다른 한편으로는 잡지는 잡지에 걸맞는 고유성을 더욱 확보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해인」이 맡고 있는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고 풀어 나가지 못한 채로 다만 문제만 제기하고 후배들에게 그 짐을 떠넘기고 가는 것 같아 못내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젊고 패기 있는 젊은 스님들로 편집진이 재구성되고 있어서 앞으로는 좀더 나은「해인」의 모습이 기대되기도 한다. 삼 년의 고투를 마감한 이제, 나름대로 좀더 객관적이고 성숙한 안목으로「해인」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겠다.「해인」의 발전이 곧 나의 발전이요 나의 성숙이라는 운명공동체를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 아니겠나 싶다.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