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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행복했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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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시명 1994년 08월 150호
「해인」지가 지령 150호가 되었다니 먼저 축하할 일이다. 무심히 지내던 사람들은「해인」지의 지령이 벌써 그렇게 되었냐고 놀라겠지만 다달이 원고를 청탁하고 교정을 보고 인쇄를 하여 한 권의 책으로 꾸려 내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무심하기만 한 세월은 아니다. 마지막 교정을 보고 대지를 인쇄소에 넘기고 어깨가 축 쳐져 편집실로 돌아온다. 며칠의 불안정한 평화를 끝내고 막 출간된「해인」지를 기대감에 부풀어 펼쳐 보면 잡아 내지 못한 오자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용용 죽겠지하며 나를 빤히 쳐다볼 때의 그 모멸감과 자책의 기분이라니.... 되풀이되는 일상에서 좀 푹 쉬어 보고 싶은 작은 소망이 늘 가슴속에서 맴돌지만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또 다시 원고를 청탁해야 하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또 다른 한 달이 시작되는 지긋지긋한 편집장의 굴레. 나는 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으나 두 번이나「해인」편집장을 맡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래도 그 때가 행복한 시절이었다. 많은 도반들과 늘 함께 있던 것은 분명히 행복이었다. 종림 화상을 비롯하여 원택, 여연, 현응, 향적, 법성, 법연, 소허 등 지금은 한국 불교권에서는 대표적인 필자들인 그들과 한방에서 뒹굴며 지낼 수 있는 행복함이 있었다. 더러 의견이 엇갈려 밤을 세워 입씨름을 했던 것도 모두들 일에 대한 진지함과 정열 그리고 제한 없는 순수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반들 사이에 정이 두터워지고 서로가 서로를 탁마해 주는 장으로서 해인지는 중심 핵이었다. 따라서 내 중노릇에서도「해인」지에서 일했던 동안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시간이었고 지금까지 어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체험이었다. 사실 나는 인품이나 재주나 무엇으로도 미련하고 부족한 사람이지만「해인」지를 중심으로 한 좋은 도반들 덕분에 두 번이나 편집장을 한 것이다. 같이 지낼 때에는 잘 몰랐지만, 저마다 성장하여 자신의 일들에 바쁘고 나는 이제 해인사마저 떠나 멀리 있다 보니 그들의 넉넉함 인품과 도량이 새삼 그립다. 소극적이고 미지근한 내 성격 탓으로 좀체 마음을 열어 놓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좀더 편안하게 해 주지 못한 것을 이 자리를 빌어 용서를 청한다.「해인」지는 사찰 포교지로서는 여러면에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 왔고 높은 품격을 유지해 왔다. 특히 주명덕 선생님의 사진이나 최만수 선생님의 디자인은 그 격을 더욱 높여 주는 데 큰 몫을 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 동안에 많은 사찰지가 창간되었지만 다들 그만 그만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뭇 칭찬 속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해 온「해인」지도 꽤 오랫동안 발전적 변화 없이 한결같은 틀을 이어 오고 있다. 그냥 그 자리에 답보 상태로 있다면 상대적으로 퇴보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이 자리를 빌어 바라건대, 부담이 되겠지만, 새로운「해인」편집팀들은 좀 더 참신한 창의력으로 선배들이 못다한 잡지 편집의 신기원을 이루어 나가기를 촉구하는 바이다. 월간「해인」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