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큰 소나무와 옹달샘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특집 - 김종하
1994년 07월 149호
내가 어렸을 때 겨울철에는 어른이나 아이나 거의가 나무하러 다녔고, 그게 일이었다. 벌써 이십 연도 더 된 일이지만, 국민학교 시절에 벌써 내 전용 지게가 있었다. ‘나뭇꾼 생활’ 은 남들보다 좀 빨랐다. 어른들 틈에 끼여 아침 나절에 산 속에서 나무를 한 짐 하여 지게에 지고 산능성이를 넘다 보면 목이 마르다. 작대기로 나무짐을 받쳐 놓고 옹달샘으로 가서 물을 꿀꺽꿀꺽 먹으면 배도 부르고 갈증도 가셨다. 그러고는 지게다리 밑 잔디에 드러누워 하늘 한번 쳐다보다가 산바람에 땀이 식을 때쯤 다시 나뭇짐 지고 오르락 내리락 산길을 걸어 집에 와서 밥 한 그릇 먹어 치우면 곧 하루해가 졌다. 호롱불 밑에 어른들이 모여서 얘기 꽃을 피우면 어린 내 귀는 어른들 얘기에 빠져 버리고, 그러다가 잠이 들어 날이 새면 또 나무하러 갔고, 그렇게 새싹이 돋는 봄날까지 똑같이 지냈다.
나무를 하다가 산길 걷다가 또는 호롱불 밑에서 모여들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삼신할머니 길쌈질 얘기, 누구네 조상님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묵은 고리짝 얘기, 누구에게 스님이 보아 준 사주 얘기, 동냥아치 한테 쌀 없다고 보리쌀 주니까 행패 부리고 갔다는 얘기, 영감하고 싸웠다는 얘기, 밤길 가다 귀신 만났다는 얘기 등 한없이 이어졌지만 나무하러 오다가다 들러서 물을 떠먹던 옹달샘 곁에 있던 산 속 기와집 얘기는 좀체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굳이 묻지 않았고 어른들도 말해 주지 않았지만, 가끔 구경 삼아 볼 때마다 방 안에 노오란 이상한 게 앉아 있었다. 장난감이 틀립없는 것 같은데, 방 가운데 혼자서 기와 집 하나 차지하고 있는지 아리송할 뿐이었다. 하지만 옹달샘 곁에 몇 백 년은 되었을 키 큰 소나무가 있어 그 인상만은 내 머리 속에 옹달샘과 함께 꽉 막혀 버렸다. 산 속의 다른 조그만 소나무를 압도하는 키 큰 소나무 서너 그루, 그 옆에 이상한 기와집 하나, 이게 내가 처음 접한 산 속 절집 인상이었다. 산 속의 집이 암자이고, 방 안의 이상한 것이 불상이란 걸 안 것은 중학교 다녔을 무렵이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 그 절 집에 불이났다. 소방관이 불 끄러 왔다 가고 나도 뒤늦게 불구경 한다고 달려갔으나 절집은 이미 타 버려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 옆에는 키 큰 소나무만 불에 타다가 그을린 채로 새까맣게 서 있는데, 그 모습이 내게 너무 낯설었다. 절 집에 불이 난 뒤로는 나무하러 오다가다 옹달샘에 들러 물 한모금 떠 먹는 것도 싫어졌다. 나중에는 어른들이 물 먹고 싶냐고 물으면, 집에 가서 먹겠다고 그냥 지나쳐왔다. 옹달샘이 있지만 키 큰 소나무가 없어져 휑해진 그 자리에 목 축이러 가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셔 버린 느낌은,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절 집을 새로 짓고 이제는 나무도 상당히 컷지만 아직도 그 산 속 절 집은 내 마음에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다. 그 뒤로 내 생활은 나뭇꾼에서 벗어났다. 시골에서 도시로 왔고, 학교에서 직장으로 왔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도시에서 사람들 틈에 끼여 빡빡하게 산다. 그래서 열기가 높은 여름에는 한적하고 시원한 곳이 가장 그립다. 이 여름에 그 옛날 나뭇꾼 시절에 언제나 들렀던 옹달샘 같은 그런 곳이 어디 없을까. 절이 불에 타서 없어져도 언제나 가고 싶은 그런 옹달샘 같은 곳이 어디 없을까.
나는 그 동안 절들을 많이 보았다. 도시에서, 산 속에서, 관광지에서, 등산로에서 크고 작은 절을 보면서 절이 바뀌고 변하는 것을 보았다. 관광 개발이다, 중창 불사다 하여 돈과 사람을 끌어 들여 절 주변을 거창하게 만든다. 그게 필요는 하겠지만 꼭 그렇게 거창하고, 그런 방식이어야만 할까. 몸과 마음을 쉬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혼자 자기를 만나는 법을 찾는 사람에게 진짜로 필요한 시설과 제도와 인력은 왜 중창 불사와 같이 거대하거나 구체적이고 지속적이지 않을까? 불 타서 없어진 절에서 받은 인상 때문에 그 곳에 옹달샘 물을 먹고 싶은 생각이 싹 가셨던 내 경험이 자꾸 되살아나는 것만 같다. 또한 절이 산에 있든 도시에 있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산 속 절이 도시 절과 다를 바가 없다면 아마도 사람들은 산 속 절을 보러 가는 것보다 산을 보러 가는 사람이 많아지지 않을까? 관광지를 낀 산 속 절을 갈 때면 그게 아무리 유석 깊은 고찰이라도 나는 늘 천상의 선녀와 결혼한 나뭇꾼이 이혼당한 것 같은 기분에 사로 잡힌다. 그러나 일주문을 지나서 절 집에 들어서면 사천왕과 역대 스님들의 부도탑이 나타나면 기분이 매우 좋아진다. 섬뜩한 인상의 험상궂은 사천왕 장수들, 그리고 죽어 재가 되어 흙으로 돌아간 스님네 터를 지나며 두손 모아 합장하는 곳, 이곳이 내 절 집 나들이의 끝이다. 부처님 보겠다고 나서지 않았기에 절에 있는 산자락에 올라 산비탈을 쳐다보면 그늘과 바람이 반기니 더욱 좋다. 저녁놀에 밥짖는 연기가 피어 오르면 집에 가는 길을 재촉하면서 절 집 근처에서 도시처럼 흥청대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만 골라서 저승으로 빨리 좀 데려가 줬으면 하는 헛생각도 자주한다. 또 큰 건물만 짓고 싶어하는 회주스님이나 신도들에게 이왕 지을 바에야 김제 금산사에 있는 미륵불 같은 큰 불상과 그런 집을 지어 보라고 권하고 싶은 때가 너무나 많다. 내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