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피아골의 불락사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특집 - 이현정 1994년 07월 149호
지난해 여름은 유난히도 서늘했다. 여름의 서늘함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던 것은 처음이었다. 그 서늘함을 더욱 더해 준 계곡물은 엄청난 소리로 위압을 주어 보기만 해도 무서웠다. 약골 체질이라서 추위와 더위에 맥을 못 추는 나는 춥고 더운 게 분명한 우리나라의 사계절을 마뜩찮아 했다. 그래서 활동하기에 별 무리가 없을 듯한 나라의 날씨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산수를 그림으로 그리며 젖어 들어 함께 호흡하다보니 우리나라 사계절이 곧 부처님 말씀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처음 맞이하는 지난해 지리산행에서는 여름 불볕 더위로 땀과 뒤범벅이 되어 부처님을 만나고 싶었다. 손오공의 수십 가지 변술만큼이나 요란한 내 맘의 요동과 변덕을 자책해 가며, 깊게깊게 지리산 품으로 안겨 들어갔다. 얼마만에 가져 보는 휴가인데...
그런데 그 해 지리산행은 날씨가 스산하고 비도 많아 유난히 서늘했다. 풍부한 양으로 위압감을 줄 만큼 우렁차게 내리쳐 흘러가는 계곡물은 서늘함을 더해 주었다. 여름 더위를 견디기 힘들어 하는 내가 서늘한 여름 날씨를 원망스러워한 것은 처음이었다. 산으로 들어갈수록 더욱 짙어지는 운무를 헤쳐나가야 했기에, 여름인지 겨울인지, 산속인지, 하늘 속인지 분간하기조차 어려웠다. 성급한 맘으로 나아가다 보니 빗줄기가 세차게 내려 시야마저 가로막았다. 그러나 긴팔 티셔츠에 잠바를 단단히 껴 입고서도 차 안의 히터를 틀어야만 체온을 유지할 수 있었다. 더욱 더 세차게 내리 퍼붓는 빗줄기. 산세가 험하기로 유명한 피아골 계곡에서 두려움은 호기심과 오기로 뒤범벅되기 시작했다. “그래 내려라. 더 내려...” 평소 나답지 않은 이런 오기를 곧추세우자 불락사佛樂寺의 입구 표시가 비에 축 쳐진 나뭇가지에 가리워져 수줍은 듯 반겼다. 다시 좁다란 사잇길로 무척이나 경사진 언덕을 기어 올랐다. 한 발 앞을 내디딛을 수 없는 빗줄기로 몇 시간을 차 안에 갖혀 있느라 굳어진 몸을 좀처럼 펼 수 없었다. 그러나 얼마쯤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런 고생스러움은 산행의 감동을 더욱 크게 하였다. 가늘어진 빗줄기 사이로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하는 경내의 아름다움은 마치 둥둥거리는 법고의 파랑처럼 내 가슴에 마구 저며들었다. 큰 산이 뒤로 병풍처럼 받쳐 주고 아래로는 제법 큼지막 한 대웅전이 한 채 있었다. 아주 반듯하게 펼쳐진 앞마당 대웅전 맞은편엔 공양간과 사무실 그리고 오목조목 모인 방들이 일자형으로 서 있는 초라한 집 한 채가 내 눈에 들어왔다.
다시 쏟아붙기 시작하는 비의 장막帳幕은 엄청난 속도와 소리로 나를 주눅들게 하고 계곡물은 폭포수로 변하여 천둥보다 더 큰 소리로 나를 긴장시켰다. 소름마저 오싹오싹 돋고 몸은 새우처럼 움츠려 들었다. 대웅전에 들어갔다. 창호지 문을 닫으니 그나마 안심이 되고 포근했다. 대웅전 안은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법당은 요란하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장식 없는 민자형의 수미단이 썩 잘 어울렸다. 수미단 위에 계신 부처님은 밖에서 우르렁 부르렁대는 소리와는 아랑곳없이 편안한 모습으로 내려다 보고 계셨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화원처럼 뿌듯하게 음악을 감상하고 계시는 듯하였다.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밖으로 나오니, 그새 비는 그치고 운무만 멋들어지게 걸쳐 있었다. 소개장을 받고 와서 스님을 뵙고 인사를 드리려고 기다리는 동안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녀 일행들이 하나 둘씩 계속해서 올라오더니 저마다 소임이 기다리는 듯 바쁘게 산 속으로 들어갔다. 깊고 깊은 산골, 비가 그친 저녁의 불락사는 요란한 굉음으로 계속 나를 내리 누르며 감쌌다. 하늘의 비를 몽땅 받아 먹은 듯한 계곡은 모든 소소한 소리들을 다 잡아 먹고는 조금 전보다도 더 당당하게 사람의 존재를 무색케 했다. 어디선가 간간이 희뿌연 소리가 새어 나올 뿐이었다.
어디선가 껄껄걸 웃으며 나오는 스님을 뵙고서야 나는 그 소리를 저버릴 수 있었다. 대웅전의 부처님과 어쩌면 그렇게도 닮았을까. 계곡 물소리에 빨려들지 않으려고 웃으면서 큰소리로 인사를 한다. “여기 부처님은 음악을 좋아하여 이름이 불락사요.” 해마다 여름과 겨울에 국악인들과 국악과 고등학생 그리고 대학생들이 여기에 모여 수련회를 갖는다고 한다. 마침 지금도 국악과 학생들이 와 있어 밤에 조금 시끄러울거란 귀뜸을 해 주신다.
“처음 겪는 사람은 잠도 잘 못 자겠지만 난 이 때가 제일 좋아.”
아, 그러고 보니까 아까 새어나오는 듯한 소리가 단소, 퉁소, 해금 따위의 악기 소리였다. 아, 그랬구나. 산 속에서 저마다 자리를 잡고는 모두 소리 삼매경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스님이 잠잘 방을 가리키는 데를 보니 무시무시한 그 폭포 계곡을 건너야만 했다. 별채로 새로 지은 가건물 같았는데, 방마다 그 많은 학생들이 악기를 하나씩 거머쥐고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내가 들어간 방은 맨꼭대기여서 더욱 복잡 미묘한 여러 소리에 나는 묘한 감동에 젖었다. 부처님께 저녁 인사를 드리러 대웅전에 들어갔는데, 나이 좀 들어 보이는 한남학생이 부처님 앞에서 가야금을 뜯고 있었다. 아주 조심조심 약하게 그러다가 한번쯤 강하게 그리곤 숨을 죽이고 다시 띵 하고 튕겨 나갔다. 가만히 서 있다가 절만 올리고 나가려는데, 그 남학생이 얼굴을 붉히며 “절하는데 미안합니다. 저는 절 대신 가야금으로 인사를 드렸어요. 여기 부처님은 음악을 좋아하시거든요” 하였다.
그 날밤, 내 가슴 속에서 울려 오는 불음의 진동은 갖가지 악기 소리와 폭포 소리가 함께 조화를 이루어 가느라 진한 감동으로 벅찼다. 나름대로 불심을 갖고서 그리는 나의 그림에 불음의 진동까지도 담아 내는 계기가 된 뜻깊은 여행이었다. 그 다음날 알았는데, 그 날 밤 개구리들도 목청껏 울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