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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 범종 소리로 향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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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김송배 1994년 07월 149호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나무아미타불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나무아미타불

산사 어느 계곡 맑은 물소리처럼 흘러 보내는 비구니 스님의 청정한 목소리에 넋을 잃고 서 있던 적이 있다. 문학이라는 병으로 몸살을 앓던 시절에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산사를 자주 찾았다. 젊을 때는 누구나 한번쯤 경험함직한 이런 열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산이 갖는 포용의 안온함과 절이 풍기는 미지의 어떤 기대 같은 것을 무조건 동경의 대상으로 삼은 까닭이다. 지금 같으면 문학을 하면서 고갈된 지적 자양을 충족하거나 소재와 제재의 빈곤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나 마음을 바꾸는 방편으로 삼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사춘기의 방황이나 갈등이 온몸을 감싸고 있어 막연하게 도피처나 탈출구로 산사를 자주 찾았다. 나는 해인사 근처가 고향이라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따라 해인사에 자주갔다. 철부지의 머리 속에 드리웠던 대자대비 부처님에 대한 인상은 지금도 마음 한구석에 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좋은 시 한 편을 쓰려고 종종 여행을 한다. 아늑한 산사에서 느끼는 상상력의 영역은 무한하다. 부처님에 대한 신심이 돈독한 것도 아닌데, 무엇인지를 그냥 잊기에는 애절한 그리움이 늘 맴돌기 때문이리라. 시집 한 권을 주머니에 꽂고 옷깃을 세운 채 산길을 오를 때 은은하게 울리는 범종 소리는, 미망의 사바 세계에서 방황하던 나에게 새로운 활력과 안정을 가져다 주는 청량제 역할을 하였다.

목어를 두드리다
조름에 겨워
고오운 상좌 아미도
잠을 들었다

부처님은 말이 없이
웃으시는데

서역 만릿길

눈부신 노을 아래
모란이 진다.

이 시는 내가 좋아한 조지훈의 ‘고사1’ 인데 ‘승무’ 와 함께 줄줄 외웠다. 시인이 되든 스님이 되든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강박감으로 제대한 직후에 해인사를 다시 찾았다. 맑은 물소리를 내는 홍류동 계곡에 누워 나뭇잎 사이로 드러난 하늘만 쳐다보며 며칠 밤 낮을 지냈다. 그 무렵 나의 문학적 방황은 시골에서 이렇다 할 스승도 만나지 못해서 ‘알 길 없어라 향적사 가는 길은/몇 리를 들어가도 구름 덮인 산이로고/나무는 길이 넘고 인적도 끊겼는데/깊은 산 어드메쯤 들려 오는 종소린가/산 깊어 푸른솔에 햇볕도 서늘하다/해설피 여울물 소리만 들려 오는데 선정에 드니 알길이 없어라.(不知香積寺 數理入雲峰古來無人徑 深山何處鍾 泉聲咽危石 日色冷靑松 博幕出潭曲 安祿制音龍)’ 는 등의 왕유나 장단, 이백, 두보등의 시에 몰두해 있었다. 어찌 보면 지금 내가 심취해 있는 시풍은, 이 때에 얻어진 영감이 그 동안 내 마음 깊은 곳에서 곰삭아 이제는 나와 떨어질 수 없게 되어 내 문학에서 하나의 진실로 분출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처음에는 그저 마음의 안정을 얻으려고 산사를 찾았지만 지금은 내 문학의 근원으로서 찾는다. 그러나 아직도 인간 본연의 깨달음을 알지 못해서 내면의 진실을 갈구하는 문학 여행을 많이 한다. 해인사를 비롯하여 통도사, 불국사, 직지사, 월정사, 화엄사, 선암사, 금산사, 수덕사, 선운사, 내장사 등 많은 산사를 순례하였지만,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밤새도록 강론해 준 스님에 대한 기억은 어쩌면 내가 찾고 있는 시의 의미적 요소에서 인식의 자아로 자리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잊을 수가 없다.

아 걷어 내지 못한 분진의 아픔
어느날 일백여덟을 헤아리지 못한
검은 구름은 밀려 오는데
두 손 모두운 합장
그래도 모자라는 눈물처럼
늦가을 산사에 비는 내리고
지친 꿈속을 허우적거리는
나뭇잎 몊 개
스러지는 물안개 위에
다시 흐느적인다.

내가 산사를 배회하던 시절의 초기 시인 ‘가을 산사’ 끝부분이다. 직지인심견성성불을 들어 보지 못한 지난날이기에 깊은 시심이나 내면 성찰은 보이지 않지만 아무튼 이러한 접근은 나의 좁은 시야에도 심우도를 바르게 읽을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었다.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번뇌를 다 끊어오리다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이 시간에도 귀에 쟁쟁한 사홍서원의 한 소절의 맑은 여음이 내 온몸을 감싼 채 위선과 가식으로 치장된 번뇌를 벗어 던지라고 한다. 또 다시 울리는 범종소리에 내 마음은 어느새 산사로 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