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화世界一花연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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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허수련화
1994년 07월 149호
새벽은 습관처럼 어김없이 나를 깨운다. 건강함이 출렁거리는 황강 변에서 시작되는 아침은 언제나 활기차다. 연호사의 새벽 목탁 소리가 은은하게 강물 위로 퍼지면 건너 마을 첫 닭 울음소리가 서서히 어둠을 걷어 내고 앞산에 드리웠던 안개는 낮은 곳에서 차츰 그 모습이 선명해진다. 아직 꺼지지 않은 외등 불빛을 받아 더욱 영롱한 길섶의 이슬 방울. 삼삼오오 짝 지어 달리는 사람들의 가쁜 숨소리 강 건너 약수터에서 목청껏 외치는 “야호” 소리. 숲 속에서 들려오는 산새소리. 코 끝에 묻어나는 아카시아 향기. 자연이란 그 어느것 하나 아름답지 않고 정겹지 않은 것이 있을까. 나는 시골에 살면서도 자연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보지 가게 앞 가로수인 은행나무를 보면서 계절의 변화를 이따금 느끼곤 한다. 은행잎이 뾰죽이 돋기 시작하면, 봄이 시작 되는구나. 잎이 무성하면 여름이구나, 단풍이 노랗게 물들면 가을, 앙상한 가지를 보면 겨울을 느낀다. 정서적으로는 도회지 생활 못지 않은 결핑증의 연속이다. 이 정도의 삶이라면 포근함과는 거리가 먼 아주 삭막한 생활이었으리라. 우리 일상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늘 접하며 살다 보니 그 진가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연호사에 날마다 다니면서부터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언제 보아도 아늑한 정감을 가진다. 아침마다 부처님 앞에 향을 하나 사루고 백팔 배를 하고 나면 마음은 샘물처럼 맑아지고 콧등엔 땀이 흥건히 고인다. 법당을 약간 비껴 앉은 함벽루, 황강 변을 따라 길게 뻗은 모래밭, 연호사를 포근하게 감싸 안은 비봉산, 나의 정서 함양은 매일 아침 여기에서 비롯된다. 기도가 끝나면 마루에 앉아 확 트인 황강을 앞에 두고 부처님처럼 눈을 반쯤 감고 사색하는 시간이 무척이나 행복하다. 희망찬 미래를 머리 속에 그려 보기도 하고 한없는 그리움을 한 점 찍어 올리면 뒷산 뻐꾸기가 시공의 정적을 깨운다. 연호사 계단 아래 황강 변에 있는 함벽루는 옛 선조들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비스듬히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넉넉하지.” 이런 모습으로 풍류를 즐겼을 선조들은 얼마나 여유롭고 마음 넉넉한 삶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넉넉하게 흐르는 강물에 비치는 은은한 달빛 아래 돗자리 깔아 놓고 님과 술을 마주하고 시조 한 수 읊으면서 거문고를 뜯고 있는 여인이 있었다면 어느 사람인들 이 분위기에 흠뻑 젖지 않겠는가. 이렇듯 집에서 몇 분 걸리지 않는 거리지만 나는 이 곳에서 변화하는 자연을 보며 계절을 느낀다. 올해는 반갑게도 내가 어렸을 적에 보았던 “밀”이 논에 심어져 있어 얼마나 반가웠는지 이삭 하나를 뽑아 진한 입맞춤까지 할 만큼의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토록 분식을 장려했을 때는 슬그머니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가, 큰 나라 밀들이 농약에 섞여 들어와 이 땅 젊은이들의 건강을 좀 먹고 들어선지 무수한 세월이 흘러서야 이따금씩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난 지금까지 우리 것에 대해서 왜 이렇게 무감각 했을까.
내가 불교와 인연을 맺고 부처님께 귀의하면서 나 자신을 반추해 보는 마음의 여유와 많은 것을 배우고 터득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너무 좋아 어떤때는 잠까지 설친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세 명 이상이 모이면 대중이고 대중 곧 공중 생활에서는 화합이 가장 중요하고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 되고(一切唯心造), 세계는 한꽃 곧 모두가 내 가족이라는 말씀은 나의 작은 가슴을 감동시키고 남음이 충분하다. 연호사는 규모 면에서 해인사와 비교할 바는 못 되지만 신라 선덕여왕11년(642)에 창건되었다. 백제와의 대야성 전투에서 전사한 죽죽 장군의 넋을 위로 하려고 황강을 바라보며 지어진 절이다. 해인사보다 백육십 년이 앞서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호수에 연기가 피어나는 듯하다 해서 연호사烟湖寺라 이름 하는데 황강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꽃이 도량을 감싸고 돌 때는 신비스럽기조차 하다.
나는 가끔 딸 아이에게 나의 어린 시절을 얘기해 준다. 그러면 동화 속에 나오는 얘기 같다면서 “엄마는 나에게 그런 얘기 들려 줄 수 있지만 나는 이 다음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들려 줄 얘기가 없을 것 같다”고 한다. 우리 기성 세대가 물질이면 뭐든지 다 이룰 수 있다는 풍족함을 아이들에게 인식시킬 것이 아니라 틈나는 대로 아이들에게 가까운 산사에라도 찾게 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조금은 느긋해 질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명의 편리함을 좇아 도회지로 가지만 나는 싱싱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산촌이 좋다. 어쩌다 일이 있어 상경하면 뿌연 연기에 숨이 콱콱 막히고 길이란 길은 떠밀리다시피 미어지는 자동차 물결이고 사람들은 쫓기는 범인처럼 한 치의 여유도 없는 바쁜 걸음걸이 도대체 이러한 산업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주었으며 후손들에게는 무엇을 물려 줄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찌 보면 생동감과 부지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와 나의 가족만의 안전과 행복이 절대가치를 차지하는 도회지 생활보다는 세련된 태도는 아니지만 가난한 이웃에 관심을 주는 그리고 건강한 자연과 함께 긍정적인 사고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그러한 시골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 현재의 생활보다는 더 한적한 곳을 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때가 수 없이 많다.
불교만이 우리 것을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냥 지나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못했던 것일까. 불자로서 날마다 부처님 앞에 맑은 정신을 신진 대사함에 감사 드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님으로부터 우리의 것, 우리의 문화가 소중한 것임을 일깨우게 되었다. 선정적인 언론과 주변에 현혹되지 않고 나의 주체성으로 매사를 판단하고 행동함은 이번 정부의 전쟁 위기설에도 좋은 교훈이 되었다. 앞으로도 불교 교리와 내가 존경하는 스님의 가르침에 입각하여 정신의 힘을 농축하고 그에 따르는 행동으로써 삶을 열어 나갈 것이다. 잊혀졌던 우리의 “밀”을 만난 것처럼 인내심 부족한 아이들에게, 개인의 명예만 중요시 하는 위정자들에게 이 땅 모든 것이 너와 내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으로 인식해 시비가 끊이지 않는 폐습을 종식하고 매사를 주체적인 관점에서 풀었으면 하는 바람을 하면서 법당 마루에서 털고 일어난 긴 숨을 쉬어본다. 이번 여름에는 한적한 또 다른 산사를 찾아 나의 마음을 편안히 누이고 지나온 세월을 헤아려 보고 다가올 날을 희망으로 엮어도 보고 짜릿한 나만의 그리움도 그려 보고 싶다. 우리 모두 텅빈 마음 속에 황강 위에 떠오른 넉넉한 보름달을 채워 보지 않으실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