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 신문의 현황
아무래도 교계 신문의 대표를 꼽으라면 “불교신문”이다. 최대 종단인 조계종의 기관지로서 종단의 시련과 운명을 함께 해 온 역사를 갖고 있다. 통합 종단을 발족하면서 창간한 이 신문은 이름도 여러 번 바뀌었다. 이름도 그렇지만 주인 역시 우여곡절을 겪으며 종단 기관지였다가 개인이 인수하여 발간하다가 다시 종단이 인수하기를 되풀이하였다. 무엇보다 80년 10.27법난 직후에는 등록이 취소되는 비극도 겪었다. 83년 비상종단 때는 긴급하게 사무실을 옮겨 신문을 찍었으나 배포하지 못한 적도 있다. 종단의 기관지라는 성격은 필연적으로 기사 내용이 종단 운영에 관한 홍보를 넘지 못하는 한계를 나타냈다. 서의현 체제에서 그 성격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 지난 3월과 4월의 개혁 과정에서 종단을 구하고자 정진하던 스님과 재가자를 ‘폭도’로 몰았던 불교신문이었으나 개혁회의가 출범한 이후 ‘돌변’하여 진보적이다 싶을 만큼 앞서가는 신문이 되었다.
“주간불교”는 80년 11월 정부의 탄압으로 “불교신문”의 경영권을 잃은 경우스님(부산 대각사 주지)이 재단법인 화쟁교단의 목적 사업으로 82년부터 발행하는 ‘범불교 언론지’이다. 초기 에는 “불교회보”로 등록했다가 86년부터 “주간불교”로 제호를 변경했으나, 매주 발행하지는 않았다. 열흘에 한번 발행하는 순간이었다가 92년 10월부터 주간으로 나오고 있다.
교계 신문 가운데에 “법보신문”은 여러 점에서 특이한 전력을 갖고 있다. 불국사가 재정을 지원한다는 점. 한국불교의 특성상 한글 쓰기가 만만치 않으데도 파격적으로 가로쓰기 편집을 시도하여 성공해서 다른 신문에도 적용하게 했다는 점, 서의현 체제를 전면 비판했는가 하면 최근에는 게혁회의에 대해서도 이론을 제기했다는 점 들이다.또 이따금 정간과 복간을 되풀이 하는 속사정이 있으면서도 올 3월의 법난 때는 기자들의 주머니 돈으로 ‘편집 뉴스’를 제작하여 일반 언론에서 높게 평가받은 일이 있다. 그러나 제정 지원 사찰의 영향력이 매우 큰 탓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신문사가 “법보신문”이다.
구설수에 오르기로는 “해동불교”를 꼽을 수 있다. 89년 3월에 창간한 이 신문 역시 주간으로 발행되고 있는데,교계의 사정이 열악한데도 일간지로 내겠다는 발표를 작년부터 계속하고 있다. 교계 신문은 거의 구독료를 책정한 유가지 임에도 사실 구독료 수입은 매우 적다.
“불교신문만은 종단 기관지로서 각종 종무에 관한 공고 등의 관계로 의무적인 구독과 그에 따른 구독료를 내야 하지만 그 밖의 신문은 구독료 납무와는 별도로 무상 배포되다시피 발행된다. 이런 여건인데도 일간지로 전환한다면서 주주공모를 하는”해동불교의 포부에 대해 뜻은 갸륵하나 그 실현에는 회의를 갖고 있다. 일간지를 목표로 하기 이전에 운영과 편집에서 내실을 우선하여야겠다.”해동불교는 우리 사회의 인권 문제를 비중있게 다루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
내용이 충실하기를
그 밖에도 교계에는 많은 신문이 있다. 그런 신문도 있나 할 만큼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꾸준하게 발행하는 신문도 꽤 있다. 부산에 본사를 둔”대한불교,”동국불교, 광주의”정토불교, 제주의”한라불교는 지역 차원의 포교와 함께 정보 전달을 열심히 하는 주간신문이며 여성 불자를 대상으로 하는”여불련 신문, 실천승가회의”불교정론(현재는 휴간),”승가대신문등은 단체의 기관지 성격을 갖고 있다. 조계종단 외에도 각 종단을 대표하는 주간지나 격주간 발행의 신문이 있다”국제불교처럼 몇 번 발행하다 문 닫은 신문이 있는 가 하면”법보교화신문처럼 교화를 목적으로 발행하는 신문도 있어 다양한 편이다. 그러나 적은 수의 신문을 제외하고는 직원 수가 두 명이나 세 명, 심지어 사진 기자도 없이 취재 기자가 사진도 찍고 기사작성, 편집까지 도맡아 하는 실정이다. 더욱이 교계 신문사치고 기사의 교정, 교열을 전담하는 직원이 있는 곳은 단 하나도 없다. 기자가 원고 작성에서부터 마지막 교정까지 책임지고 처리해야 한다. 교계 신문이 영세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첫 번째 원인은 제정의 빈약함이다. 신문사 발전을 위한 투자는 고사하고 현상 유지조차 벅찬 것이 공통된 문제점이다. 심지어는 외부 필진에게 청탁한 원고에 대한 고료도 변변히 지급하지 못하다 보니, 심한 경우에는 신문 지면 가운데 세 개의 면을 혼자 채우는 일도 흔하다. 그런 까닭에 손쉽게 지면을 채우려고 학위 논문을 옮겨 놓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한결같이 불교의 생활화와 현대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신문사 자체가 비합리적인 운영을 하고 있어 진정한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의심이 간다. 신문을 이용하여 남의 비리나 들추어 내려는 일종의 정치적 술수가 더 큰 목적은 아닌지 또는 특정 집단의 세 과시는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교계의 각종 신문이 진정 정법을 구현하고 급변하는 사회 발전에 맞추어 불교의 현대화를 지향하려면 먼저’구멍 가게’식의 영세성을 벗어나야 한다. 기자의 취재비도 보장하지 못하는 신문사는 과감하게 문닫기 바란다. 그리고 시세에 따라 표리부동하는 또는 선정적인 기사로 재미 보려는 양식 없는 논조를 반성하고 참으로 정보 매체로서의 내용을 충실히 해야 한다. 광고 문구를 빌려 충고하건대”신문은 포교지가 아닙니다. 신문은 종합정보매체입니다를 확고하게 인식하여 해체와 통합이 빠르게 진행되는 현대 사회에서 불교계의 상황을 대중이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정론을 펼쳐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계 신문의 발전을 위해 대중 스스로 책임 있는 구독자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