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분위기를 바로잡고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5년 01월 155호
우리는 갑술년 한해 동안 그야말로 한바탕 북새통을 겪었다. 종단의 해 묵은 과제인 “개혁”의 진통은 너무도 극심했다. 하긴 워낙 고질화된 병폐를 치유하기 위한 진통이므로 수월하게 종단 개혁 불사가 이루어지리라고 여기지 않았지만, 그 개혁의 과정에서 유형 무형의 피해는 상당하게 나타났다. 구종법회 당시 부상을 입은 사람은 아직도 완쾌되지 않아 불편한 몸으로 있으며, 승가 사회 안에서의 갈등을 비롯하여 승가와 재가 사이의 틈새도 상당히 벌어진 후유증이 남아있다. 게다가 종회의원 선거와 총무원장 선거 과정에서 빚어진 불상사는 우리의 내적 결속에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이직 정확한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후보 비방 괴문서는 “호사가”들의 좋은 소재가 되어 결국 한국 불교의 위신이 깎였다. 어쨌든 그러한 와중에서도 새로운 종단집행부가 구성되었고, 새 집행부가 최선을 다하여 종단 발전을 이루길 바라는 마음은 우리 모두 공유하는 바일 것이다. 엄청난 희생과 피해가 있었던 개혁 불사를 통해 종단은 많은 점을 실증적으로 경험했다. 원로와 중진 스님과 젊은 스님 사이에 “인식과 사고”의 차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다는 사실이 입증 되었고, 정치 권력이 엄존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자주화’라는 당위가 만만히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경험했다. 또 특수한 동질성을 갖고 있는 승가사회 안에서 해종 행위자에 대한 조치 역시 어려운 과제이며, 정당한 원칙을 고수하려는 실천이 얼마나 험난한 것인지를 여실히 알게 되었다.
이러한 산 교훈이 종단 발전의 중요한 토대가 될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문제는 이 교훈을 얻는 과정에서 파생된 여러 요인으로 현재 종단의 분위기가 대단히 흐트러져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제자리를 바로잡고 모두가 제 몫을 다하려는 진지한 자세가 보이지 않는 채 우리 현대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해가 될 을해년을 맞는 것이 걱정스럽다. 물론 대사를 치룬 뒤이고, 새 종헌에 따른 종단 구조가 이직 완벽하게 구성되지 못한 까닭도 있겠으나 그렇다고 하여 전체적인 동요가 해를 넘기면서까지 이어진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가급적 빠른 시일내에 종단 집행부를 비롯하며 산하의 각 단체 조직들은 분위기를 바로잡고 변화된 종단 운영에 맞추어 저마다의 정확한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다. 특히 을해년은 민족이 식민지 압박에서 벗어난지 오십 돌이며 또 조국이 두동강으로 갈라진 지 오십돌에 되는 해이므로 민족 종교라 자부하는 우리 한국 불교가 어수선한 상태로 지속되는 것은 불교로나 민족으로나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분단 오십돌을 맞아
일천육백여년을 민족사와 함께한 한국불교가 현대에 와서 과연 민족의 영욕에 얼마만큼 올바르게 기여를 했는가 하는 물음에 선뜻 당당하게 답을 하지 못한다고 하여도 지나친 지적은 아닐 것이다. 외부적 요인이 주가 되긴 했어도, 해방 이후 한국 불교는 내적 갈등으로 유구한 세월 동안 축적된 역량을 소진하다시피 했을 뿐, 민족과 사회가 당면한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다른 종교가 그런 역할을 의연히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을 따름이다. 식민지 억압이라는 모진 세월 속에서도 한국 불교 전통을 지켜냈고 해방 직후에는 남한반의 단독 정부 수립을 거부하고 통일된 조국의 실현을 위한 정도를 걸었던 “불교혁신동맹”의 자랑스런 역사를 갖고 있는 한국 불교가 그 동안 민족 문제에 있어 팔짱을 끼고 있었음은 실로 부끄럽기 짝이 없다. 권력에 의한 탄압으로 종단이 자주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불교가 제 몫을 못했다는 것은 그저 변명에 불과하다. 우리의 선배들은 더 혹독한 조건에서도 훌륭히 역사와 민족 앞에 빛을 발하였고 실천의 모범을 남겼다.
외적 조건이나 과거를 탓하는 것은 지금의 실천적 과제를 애써 외면하려는 바와 다를 바 없다. 설령 어려운 조건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타파하고 민족과 역사의 부름에 응하는 것이 더 불제자로서의 귀감이 될 것이다.
불타의 가르침은 바로 이것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화두 참구를 통한 “파격”의 깨달음 역시 실천으로 나타날 때는 이러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금껏, 아니 당장 분단 오십 돌을 맞으면서도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실천의 지침 하나 없이 망연히 흐트러진 종단 분위기에 쓸리고 있음은 냉철하게 반성하여야 한다.
사실 한국불교가 그 동안 민족의 공통된 염원인 “통일” 문제를 전혀 나 몰라라 한 것은 아니다. 민중 불교 운동이 본격화되던 팔십 년대중반 이후 어려운 상황에서 적은 역량이나마 통일운동의 일익을 담당하기도 했다.
서울 올림픽 개최를 맞아 남북의 공동 올림픽이 되어야 다는 운동을 펼친 적도 있으며 남북의 불교지도자가 함께 만나 조국 통일을 위한 불교의 역할을 선언한 사례도 있으며 그와 같은 맥락에서 북한을 방문하여 직접 북한의 사찰을 답사하고 그 성과를 책자로 낸 스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운동이 전혀 변화되지 못한 채 단속적으로 이어진 한계와 개인의 활동에 그쳤으며 일관된 계획으로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저 큰 통일 운동의 흐름에 하나의 샛강으로 기록될 뿐 진짜 본류로서의 불교 역할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올해 우리의 역사적 책무는 막중 할 수 밖에 없다. 늦었다, 못했다는 후회감으로 자괴만을 안고 있기보다는 오히려 못한 만큼 더 큰 발심을 내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다행히 개혁 불사로 일구어낸 종단의 새로운 움직임은 이러한 발심에 그 어느 때보다 좋은 조건이 될 것이므로 지금이라도 종단 내 각 단체와 조직은 올해의 주요한 사업을 체계적으로 조직화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흐트러진 분위기를 바로 잡고 제 역할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설정하는 일이 일차적이라 생각된다.

각자의 역할 정립이 우선
이 난에 몇 번에 걸쳐 거론한 바 있듯이 그 동안 한국 불교의 내분으로 종단 내의 지켜져야 할 가풍이 대단히 우려될 만큼 훼손되고 있는 현실이다. 승단내에서의 위계가 그렇고 승가와 재가의 엄연한 공경 관계가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는 불교가 어떤 사업을 벌인다 하여도 그것을 힘있게 추진하기란 무망할 것이다. 종단의 운영에 있어 궁극적으로 책임은 승가에 있는 만큼, 재가는 한 주체로서 승가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힘을 받쳐주는 관계가 바람직한데도 여전히 일각에서는 당위와 명분만을 내세워 종단의 화합을 저해하고 있음은 참으로 유감스럽다. 사회 각 영역에서 꾸준한 노력으로 쌓아올린 재가 불자들의 다양하고 높은 전문성을 불교 발전이라는 한길로 흡수하는 것은 서로의 명확한 역할을 바로 할 때 여법하게 이룩되는 것이다. 따라서 승가가 재가의 전문성을 격하시켜 대우해서도 안되며 반대로 재가가 구태 의연하게 종단 운영의 주체에 관한 일로 의론을 분열시켜서도 안 되겠다. 이러한 지적은 누가 누구를 예속한다거나 또는 무조건한 권위와 인정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교단이라는 독특한 공동체가 유구하게 유지되어 나오는 과정에서 정착된 모법적 질서이며 그 안에서 가장 합리적인 발전이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부정할 수 없는 체계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중심을 바로 잡지 못한 채 흔들리고 있는 종단 각 부문의 분위기를 일신하려면 무엇보다 각자의 역할에 대해 분명하게 확립하는 것이 절실함을 거듭 강조한다. 바로 이것이 지켜져야 분단 오십 돌을 맞는 올해에 한국 불교 역할이 제대로 힘을 받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를테면 종단의 새 집행부에서 수익 사업을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그렇잖아도 사회 여론이 별로 좋지 않은 생수 장사를 한다는 것은 승가가 할 일과 재가가 할 일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처사의 본보기이다. 새 종단은 그에 걸맞게 우리의 역사가 바라는 과업을 짊어지는 의연함을 갖아야 한다. 종단의 지도부가 그러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대중은 더욱 발심 할 것이며 각각의 위치에 맞는 운동과 사업을 벌이게 될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 을해년을 맞아 우리는 각자 위치에서 정확한 역할을 찾아야 하며, 그것이 상호 보완하는 관계에서 민족의 새 희망을 찾는 사업을 추진할 것을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