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옛날 이야기 가운데 ‘원숭이와 게의 싸움’. 이 있다. 나도 그랬다고 생각되지만 아이들에게 이 그림책을 사서 읽어 주면 다들 즐거워 눈을 반짝인다.
커다란 주먹밥을 발견한 엄마 게에게 원숭이는 감 씨하고 바꾸도록 한다. “이 씨를 심으면 가을에 맛있는 감이 잔뜩 열리지 하면서 게의 대답도 듣지도 않고 원숭이는 감 씨를 내던지고는 커다란 주먹밥을 가로챈다. 할 수 없이 게는 감 씨를 땅에 심어 열심히 돌보아서 가지가 휘어질 만큼 감이 열리는 나무로 키운다. 게는 감을 즉시 먹고 싶지만, 손이 닿지 않는다. 심술쟁이 원숭이가 또 와서 “내가 따 줄께”하였다. 그러나 혼자서 맛있게 감을 먹을뿐 게에게는 한 개도주지 않는다. 결국 딱딱한 퍼런 감을 게에게 던져 가엽게도 게는 죽는다. 깨진 껍데기에서 세 마리 새끼 게가 태어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씩씩하게 자란 새끼 게들은 원숭이에게 원한을 품은 ‘밤돌이’ ‘벌’ ‘절구’ 거기에 요즘 그림책에는 ‘쇠똥이’ 까지 힘을 합해서 함께 엄마의 원수를 갚는다.
이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읽어 주는 사이에 담마파다의 시가 떠올랐다.
바보 같은 자는 나쁜 일을 해도 그 응보가 나타나지 않는 사이에는 그것을 꿀처럼 달콤하게 여긴다. 그러나 그 죄의 응보가 나타날 때는 고통을 받는다
69, 나카무라 하지메 옮김
좋은 일도 그렇지만 나쁜 일을 했을 때도 그 결과가 곧 바로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나쁜 행위는 그 행위를 한 사람 속에서 마치 콩자반이 시간이 걸려 익는 것처럼 보글보글 끓어서 이윽고 그 응보가 나타난다. 불교는 그때가 금세가 아니고 내세일 수 있다고 설한다. 무리를 하거나 남에게 너무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하면 반드시 그 응보가 온다는 것이 최근 갑자기 정말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사치를 경계하는 비유로서 ‘게를 철撤하다’ 는 말이 중국에 있다. ‘철撤’은 ‘거두다, 치우다’이다.
송나라 때의 인종은 첫물 게를 먹으려다가 밥상에 오른 서른여덟 마리의 게를 보고 말했다. “여기에 쓴 돈이 얼마냐”하자 신하가 “이만팔천입니다” 하였다. 인종은 “한번 젓가락질에 이만팔천을 쓰다니 도저히 짐은 먹을 수가 없구나 “ 하면서 게를 도로 가져가게 했다. 또 게는 매우 맛있어서 회의를 하면서 식사를 할 때는 식탁 위에 올리지 않는 편이 낫다고 한다. 껍질을 벗기는데 열중하기 때문이다.
<자타카>에는 게가 드물게 나쁘게 나오는 예가 많다 (267 게의 전생 이야기). 게의 빠리어원은 ‘캇카타’이다.
옛날 히말라야산에 큰 호수가 있었다. 거기에 커다란 금빛 게가 살았다. 그 게는 하도 커서 코끼리를 잡아 먹을 정도였다. 코끼리들은 그 게가 무서워 호수 근처에도 못 갔다. 코끼리로 태어난 보디삿타-전생의 부처-는 그것을 알고 다른 코끼리들과 함께 게를 쳐부수러 나갔다. 그러나 보디삿타는 그만 물속에서 게 발에 다리가 끼고 만다. 다른 코끼리들은 자기가 죽는 것만 무서워서 똥, 오줌을 싸면서 달아났다.
경전에는 큰 게를 “뿔 같은 가위를 가진 짐승, 툭 튀어 나온 눈을 하고 그 살은 뼈 같으며, 물에 살며 털이 없다” (마에다 젠가쿠 옮김)고 표현하였다. 그때 아내 코끼리만 떠나지 않고 큰 게에게 듣기 좋게 “이 세상에 사는 게 가운데서 당신이 으뜸갑니다”하고 속삭였다. 게는 목소리의 임자가 여자인 줄 알자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흔들려 코끼리 발을 놓아 주고 말았다. 그러자-보디삿타-는 곧 게의 등을 발로 밟아 다른 코끼리들과 함께 미운 게를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이 이야기는 좋은 아내의 미덕을 기림과 동시에 여성의 달콤한 말에 주의하려는 것을 의도한다고 생각되는데, 그렇다고 해도 코끼리를 먹을 정도의 게는 인도다운 발상이라 하겠다. 게다가 이 이야기는 먼저 말한 일본의 “원숭이와 게 싸움”을 본 떠 “코끼리와 게 싸움”이라고 따로.이름을 불일 수 있을 것이다.
아베 지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