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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고려대장경연구소 종림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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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박연진 1994년 08월 150호
홍류동 물소리 따라서 울울창창한 가야산 품안으로 들어서면 어느새 저자거리의 눅눅함이 옛날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시비에 무거워진 발걸음 툴툴 털어 내고 길을 따라 한 걸음씩 걷다 보면 법보사찰 해인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천 년 세월로 묵중해진 해인사가 가야산의 튼실한 거목처럼 자리하고 있다. 쏟아져 내리는 햇살에 황토빛 등을 바삭하게 드러내 도량에 서면 눈앞을 가득 채운 당우들 너머로 기와 지붕이 첩첩이 이어진다. 대적광전 뒷편으로 돌아가면 맞은편에 가파는 층계가 있다. 높다란 층계 끝에는 장경각으로 들어가는 문이 ldT고 또 그 안에 보안문이 있다. 이 보안문은 서글서글한 눈매처럼 동그마하여 들어서는 운치와 바라보는 운치가 아주 좋다. 동그란 보안문에서 대적광전을 내려다 보면 대적광전 현판과 당우가 보이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미묘하여 인상적이다. 이렇게 대적광전 뒤에 높이 있는 장경각은 비로자나 부처님이 대장경을 머리에 이고 있는 형상이여서 그 의미가 크다. 일자형 장경각은 나무들이 빛이 바래서 더할 수 없이 평안하고 담백하다. 손 갈 데 없이 정갈하지만 요즘의 건물처럼 입을 굳게 다물어 안을 감추려 하지 않는다.
아래, 위의 창 크기가 서로 다르며 성글게 짜여진 창들은 듬성듬성 안을 보여 준다. 그 안에는 검은 목판이 빽빽하게 꽂혀 있다. 바로 고려대장경이다. 초판이 몽고병에 의해서 불타 버린 이후 고종 23년(1236)에 다시 조판하여 십육 년 만에 완성한 고려대장경은 완벽한 조판과 그 규모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검은 목판 위에 새겨진 부처님 말씀은 많은 사람의 솜씨인데도 그 글자들은 한결같이 아름답고 일정하가. 불법에의 철저한 신심과 민족의 염원이 팔만대장경의 글자 하나하나에 각인되어 있다. 요즈음 이 목판 고려대장경을 전산화하는 일에 전념하는 스님이 있다. 고려대장경연구소 소장인 종림스님이 바로 그 분이다. 희끗한 반백의 머리에 희미한 미소를 언제나 머금고 있는 모습은 스님을 아는 이들에게는 한결같은 이미지이다. 무슨 얘기를 시작하려면 종림스님의 눈자위는 이를 먼저 알고 짓무르도록 웃는다. 딱히 우습고 재미난 것이 아닌데도 늘 웃는다. 마치 웃음으로 많은 말을 하고 있듯이 그렇게 편안한 침묵이다. 스님은 평소에도 말이 없다. 사람들이 말을 하면 그저 싱긋이 웃음으로 대답할 뿐 웬만하면 입을 열지 않는다. 할배 스님인 종림스님은 나이가 그리 많지 않은데도 사람들은 스님을 자주 할배라고 부른다. 서원할 일, 힘겨운 일 모두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넉두리를 하고 싶어 찾아뵈면 그것만으로도 알아질 것 같은 넉넉함을 안겨 주는 것이 옛날 이야기 속에 나오는 할배의 느낌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리라. 종림스님은 늦게 출가한 편이다. 그러나 스님이 불법의 길로 들어서기로 마음을 낸 것은 아주 어릴 때부터였다고 한다.”속가 부모님이 사랑방을 했어. 지나가는 객과 마을 노인들이 머물다가 가고 또 다시 오고 했어 아마도 그런 환경이 내게는 불교적으로 다가왔고 출가에 대한 마음을 가지게 한 듯싶어.스님의 얘기는 무엇인가 한참을 생각한 끝에 애써 나오는 한마디처럼 나즈막하게 간간이 이어진다. 아주 오랜 일이어서라기보다는 스님의 생각과 마음을 말로 만들어 내기가 영 어색한 까닭인 듯하다. 스님은 동국대학에서 인도 철학을 공부했다. 스님의 문제 의식과 불교 공부가 함께 이루어질 듯싶어서 한 선택이다. 그러나 스님은 과학과 서양 철학의 방법론에 더 끌렸단다. 가시적, 관념적 실체를 단순하게 믿기보다는 무엇인가 다른 실체가 있다고 진제하는 태도가 불교와 닮았기 때문이다.”불교란 본성론 아닌가. 영원히 변치 않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믿음 위에 형성된 것이 불교지, 그런데 우리는 깨달음이니 공이니 무니 하면서 변함없다는 형상적인 이미지를 실체화하여 믿어 버리는 심미적인 경향이 심하지, 분명히 공이라는 것에는 더욱 복잡하고 위대한 사상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환상적인 종교관으로 단순화시켜 불교를 믿어 버리는 자세는 왜곡된 형태가 아닌가 해.믿는 태도의 안일함에 대한 지적인 듯하다. 인연 따라 맺게 되는 다양한 믿음의 양식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참으로 불법을 알고자 하는 자세를 갖도록 노력해야 하리라. 사실 고려대장경 전산화라는 것이 발 빠르고 신속한 문명의 이기 자체가 종림스님하고 도대체 맞지가 않는 것 같다. 그렇게 스님은 산사에 부는 간간한 바람만큼이나 잔잔한 모습으로만 느껴진다. 그러나 스님은 불교와 함께 살아가고 삶을 바라보는 자세에 대한 고민을 화두로 삼아 침묵의 여백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다.”불교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해.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사고가 어쩌면 왜곡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제도적, 불교 상황적 억압에 눌려 자신의 입지를 세울 수 없는 경우가 많지, 그 점이 안타까워. 불교를 우리의 특수한 상황에 연결시키지 않고 객관적으로 제시해 보고 싶어. 기존의 틀을 벗어나서 철저히 부처님 말씀에 준해서 지금의 불교적 삶이 옳은지를 자문해 보는 거지. 옛날부터 옳았다고 했기 때문에 옳은 것이 아니라 부처님 말씀에 근거해서 진정 바른 행인지를 검증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봐. 전자대장경은 이런 의미에서 좋은 근거와 정보 제공처가 될 수 있겠지. 단순히 대장경만을 입력하는 것이 아니고 불교와 관련된 다른 모든 자료를 분류해서 넣을 거야. 그러니 어느 한 가지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면 전산화된 자료를 통해서 스스로 객관적인 검토를 할 수 있지.심미적이고 환상적인 종교관을 과거의 모든 자료들을 통해서 역사적으로 다시 구성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스님은 종교는 은폐에서 벗어나 공개적으로 자신을 드러내 놓아야 한다고 한다. 또 나름대로 근거를 찾아 저마다 자신의 불교관을 내세울 때 일어날 수 있는 혼란에 대해서 스님은 걱정하지 않는다.”자료는 공개되어 있으니 모두가 불교에 대해 연구할 수 있지. 아무리 개인이 자료에 근거해서 나름의 불교를 내세웠더라도 그것이 옳지 않으면 우리 모두에게서 제지 받을 수밖에 없겠지. 처음에는 다소 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나중에는 심미적인 데 치중하기보다는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려는 태도가 형성되리라 믿어.스님이 컴퓨터를 처음 접한 것은 강원에서 공부하던 중에 시작한 선방 운수납자로서 칠 년 여름 보냈을 즈음이라 한다.”컴퓨터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어떤 가능성을 느꼈어. 오랜 세월 동안 우리 불교가 만들어지고 형성되는 가운데 세습된 구태의연하고 왜곡된 관습을 새롭게 만들어 낼 자료를 제시할 수 있겠다 싶었지.처음 얼마 동안은 일이 진척될 기미도 보이지 않았고 주변의 이해도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고려대장경 전산화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종림스님이 일본에 신수대장경의 반자동 전산화는 이미 이루어진 상태였다. 우리 고려대장경은 일본 것보다 먼저 만들어진 것이고 내용면에서도 우수하다는 자긍심은 있지만 활자본을 만들어 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고 스님은 지적한다.”만일에 일찍 활자본을 만들었다면 우리의 인쇄문화는 좀더 성숙해졌을 테고 다른 문화권도 자체적으로 발전시켜 장악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하지만 지금은 일본이 우리보다 인쇄나 전산화가 월등하게 앞서 일본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가 없어. 자체적으로 일을 추진해 나갈 수 없는 상황이라서 일단 일본의 것을 최대한 연구해서 어느 정도까지 우리의 것을 위해 활용하면서 우리 식으로 연구해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한다면 그 가능성은 있다고 봐. 대략 삼 년에서 오 년쯤이면 판가름이 나리라고 봐.지금은 일의 진척이 빨라지고 있다고 한다. 홍보도 많이 되고 컴퓨터도 많이 좋아져서 어느 정도는 하고자 하는 만큼 해낼 수 있고 한다.”예산이 문제지 뭐.(웃음) 나라에서 보조를 해 줘야 할 일인데 그게 뜻대로 안 되네. 앞으로 세계는 정보화 시대가 된다고 봐.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전자대장경이 완성되면 일본 신수대장경의 그것보다 월등할 거야 세계에 우리의 것을 보여 줄 수 있고 그러면 우리 문화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리라고 생각해. 물론 우리 불교계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겠지. 흔히 불교를 불립문자라고 하지. 하지만 그래도 최후의 근거는 문자밖에 없지 않은가 싶어. 출발도 말이고 끝도 말이라고...선종을 내걸고 있으면서 염불이나 기도 따위를 해서 운영하는 형태의 혼란이 전자대장경을 계기로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스님은 말한다.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철저하게 바른 자신의 신심으로 자신감 있게 수행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스님은 절의 질서가 수직 구조에서 수평 구조로 바뀌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씀도 한다. “대중 스스로 각자 승가의 질서를 엄격하게 지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무턱대고 추종하는 식의 관습은 그리 원만한 불교 내의 질서는 아니야.우리 불교의 오랜 역사, 그것은 또한 그만큼 종교 안팎의 굴절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온전히 부처님 말씀에 귀 기울이는 데는 새로 태어나는 불교인으로서의 냉엄한 자각과 노력이 요구될 듯싶다. 이야기가 끝나자 스님은 싱긋이 웃는다. 스님의 편안한 모습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를 청했다. 평소 말이 없는 스님에게 너무 오랫동안 얘기를 하게 하였다는 마음에 어쩔 줄 몰라 하자 스님은”아니야하며 웃음 띤 한마디로 듣는 이를 위로한다. 그러고는”저녁 먹고 가야지 응하며 염려도 잊지 않는다. 스님은 서울로, 해인사로 바쁘다. 서울 합정동에 조그마하게 고려대장경연구소 사무실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고려대장경연구소 일이 매듭지어지면 스님은 자신의 평생 화두를 푸는 데 주력하고자 한단다. “지금의 틀은 비연기적인 듯해. 참다운 견성과 세상을 바라보는 틀을 제시해 보고 싶어. 무엇보다도 내게, 그리고 여러 사람들에게... 스님은 앞으로도 언제나 같은 웃음과 침묵으로 우리 모든 이들을 다독여 줄 것이다. 그리고 스님이 하고자 하는 일이 이루어지는 날 스님은, 아주 가끔씩 보이는 그 커다란 미소를 한번 더 보여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