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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명사 주광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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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박연진 1994년 07월 149호
잔가지 솎아 내고 이마 위에 푸릇한 나뭇잎 둥그렇게 틀어 올리고 여름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늘어서 있는 가로수. 구불구불한 가로수에 기대어 가느다랗게 이어지는 일차선 도로를 끝없이 내달리다가 하늘이 맞닿을 즈음에서 문득 사라진다. 김천에서 선산으로 향하는 길은
단조로운 들녘을 가르듯이 그렇게 한가롭다. 너른 논밭 저 너머에 나지막하게 곱세운 구릉들이 앞질러 나아간다. 도로 오른 편에는 가물은 탓에 하얗게 바닥을 드러낸 강줄기가 은빛 모래알 눈부시게 반짝이며 유유하게 흘러간다. 시린 물빛으로 너른 강줄기 넘실대면 지친 몸 쉬어쉬어 이 여름 넉넉해질 듯하다. 월유산 영명사. 달이 머물며 쉬어 간다는 월유산에는 무명의 길을 밝히고 피안의 세계에 이르게 하고자 지어진 영명사가 있다. 영명사는 높지 않은 산길을 그래도 제법 걷는다 싶게 걸어 들어간다. 산길이 휘어지는 자리마다 몇 채의 집이 자리를 잡고 사과 나무와 포도 나무가 산등성이 다 덮도록 심어져 있다. 영명사는 불사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입구에서 보이는 건물이 요사채이고 그 뒤에 나란히 있는 것이 법당이다. 두 채 모두 보기 좋은 갈색 나무로 지었는데, 거의 완공되어 처마끝과 건물 구석구석에 단청을 하고 있었다. 은은한 단청 빛이 정성스럽게 채워질 때마다 산빛과 어우러져 오랜 세월을 업은 사찰의 모습을 띤다. 곱게 풀을 먹인 법복을 단정하게 입고 아주 반가운 이를 맞이하듯이 활짝 웃는 분이 바로 영명사를 세우고 절을 이만하게 자리하게 한 주광스님이다. 자그마한 키에 동그란 얼굴과 큰 눈. 어찌 보면 엄하게 보이는 듯도 하지만 가만가만한 말씀 끝에 터트릴 듯 말 듯 움쩍이다가 허허 하며 웃는 스님은 참으로 다감해 보인다. 육 년 묵언 정진을 해내셨을 듯한 매서움은 찾아 보기가 어렵다. 스님은 조근조근한 말 솜씨로 대하는 이들에 대한 배려를 잃지 않는다. 주광스님이 이 곳 영명사 터에 처음 발을 딛고 절을 지으려고 애쓰던 때는 89년 말이다. 월유산은 우거질 대로 우거졌고 여러 가지 이유로 준공 허가도 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지장 도량을 만들어 오탁악세에 고통 받는 모든 중생을 구제하기로 굳게 결심한 터라서 스님은 힘든 줄도 고생하는 줄도 몰랐다고 한다. 일념으로 기도하며 어렵사리 시작된 영명사는 불과 삼 년 반만에 지금의 모습을 갖춘 셈이다.
영명사에는 대웅전이 없다. 단지 지장보살님만을 모시고 있을 뿐이다. 무불시대의 부처님으로서 지장보살을 모시고 있는 것이다. 초록빛 머리에 유하게 내리고 있는 눈맵시가 한없이 부드럽다. 넓은 이만에 비해 턱선이나 목선은 씬하고 경쾌하다. 은근한 미소를 보이는 입매는 눈맵시와 어울려 보기 드문 신선함을 준다. 법당에 모셔져 있는 지장보살님의 형상이다.
지장보살님 오른쪽에는 예적금강이 모셔져 있다. 언뜻 보면 사천왕처럼 보이는 예적금강은 험한 얼굴과 표정으로 칼을 휘두르고 있다. 삼면에 저마다 조금씩 다른 얼굴로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추하고 더러운 곳에서 살며 법을 보호하는 천신이다. 지장보살님의 좌상 뒤 벽면은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어 밖의 모습이 다 보인다. 삼배를 올리고 고개 들어 지장보살 너머로 눈을 돌리면 하얗게 석조되어 있는 지장보살 입상이 눈에 들어온다. 왼손에는 동그란 보주 하나 들고 오른손에는 석장을 짚고 서 있는 거대한 지장보살의 모습은 마치 하늘에 닿을 듯한 위용이 서려 있다. 가운데 있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같은 크기의 입상이 여섯 분 더 모셔져 있다. 모두 일곱 분의 지장보살 입상이 법당 뒤 월유산 주봉 아래 석불로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일곱 분의 지장보살 입상을 뒤에서 보호하듯이 무려 삼천 불이나 되는 작은 지장보살 좌상이 반원을 그리면 둥그렇게 층층이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다. 가히 장관이라 할 만한 모습이다. 향로, 불자, 보주 등을 들고 어디든 고통 받는 중생들에게 다투어 달려가 줄 듯한 모습이다. 무엇이든 다 이해하고 헤아려 줄 듯한 미소는 햇살 아래 희미하지만 그 모습의 자애로움은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과거 오랜 옛적에 두 국왕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국왕은 성불하여 많은 인민들을 제도하겠다고 서원하였고, 다른 한 국왕은 저 죄업이 깊은 중생들을 남김없이 바른 길로 인도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고 서원하였습니다. 한 국왕은 성불하였고 다른 국왕은 지장보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원본존 지장보살이라고 하지요. 과거불 석가모니불과 미래불 미륵존불이 오시기까지의 무불시대에 부처님 역할을 하시는 분이 지장보살입니다. 그래서 저는 현세불로 볼 수 있는 지장보살은 큰사찰이나 다른 사찰에서 명부전 같은 곳에 모셔 두고 무관심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주광스님은 지옥문이 없어질 때까지 영원히 대중과 함께 하겠다는
지장보살의 대원력이 바로 모든 승려들의 메시지라고 말한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중요성을 다신 한번 각인시키는 말씀이리라. “혜안이 열리고 성불의 경지에 이르렀으나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날까지 몸을 쉬지 않으리라는 원력을 좇으려 노력해야지요. 비록 근기가 낮아 그 배의 노력과 의지를 가져야 하지만 최선을 다해 부처님의 가르침에 충실하고자 합니다.“
주광스님은 그리 어린 나이에 출가한 편은 아니다. 군대도 다녀오고 무엇인가 인생의 해답을 구하려고 고민하고 깊이 생각한 끝에 출가 사문의 길로 들어섰다. “사실, 하루 생각해 보고 다음날 바로 입산했습니다. 살면서 좋은 일 있어도 이게 아닌데 싶은 생각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길을 걷다가 스님 한 분을 뵈었는데 가슴에 안겨 드는 느낌을 받았지요. 모든 것을 다 이해해 줄 듯한 포근함이 느껴졌습니다. 그 잿빛 법복 속에 인생의 바른 법이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바로 그 다음날 출가했지요.“ 아직도 그 무렵의 감회가 생생한지 스님은 어색한 듯 웃으며 수줍은 모습을 보인다. 그 뒤로 스님은 사문의 길을 감사히 여기며 걷고 있다. 단 한번도 하룻밤 사이에 내린 결론이 미심쩍은 의구심으로 다가와 마음이 흔들린 바 없다고 한다. 그렇게 인연은 닿는 것인지 싶다. 진리를 찾고 애쓰며 살아도 허망함에 끄달리다 생을 소진해 버리는 이가 많음에 견주어 참으로 소중한 인연이지 싶다. 통도사에서 스님이 입승 소임을 맡고 계실 때였다. 대중 스님들을 잘 이끌려
한철 여법하게 매듭하고 더 나아가 모든 스님들 각자 좋은 결실 이루도록 하고자 주광스님은 엄하게 후배들을 대하였다 한다. “대중 처소에서는 저녁 아홉 시면 취침에 들어야 합니다. 저는 손전등을 들고 일종의 순찰을 나갔어요. 고무신을 살펴보고 방안에 스님들이 모두 취침에 들었는지 들여다 봅니다. 그러다 한 스님이라도 보이지 않으면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들어올 때까지 그 스님 자리에서 기다립니다. 한참 뒤에 스님이 들어오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을 나오죠. 그 다음날 아침 대중공사에 부칩니다. 그 스님이 경책을 받아들이겠다고 하면 아주 매섭게 경책을 합니다.“ 그래서 그 때 얻은 주광스님의 별명은 수용소 소장이란다. 스님은 아직도 그 때의 일로 자신을 험한 사람으로 여기며 농담하는 이들이 많다며 웃는다. 부처님 법 하나만을 바라보며 매섭게 정진하는 스님의 올곧은 의지를 알 수 있는 이야기이다. 묵언 정진 육 년. 무심히 살아가자고 들면 육 년의 세월이 그저 그렇게 지나가겠지만 무엇을 인내하고 노력하는 세월로 육 년을 보내자면 참으로 버거운 일이리라. 그것도 하루 종일 눕지도 않고 말 한마디 않음을 어찌 가늠할 수 있을까. 주광스님은 통도사에서 나와 기림사에서 두 분의 스님과 함께 묵언 정진에 들어갔다. “부처님은 설산에서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려고 육 년 동안 고행하셨지요. 근기는 부족하지만 노력하고자 마음의 스승이신 기우스님과 육 년 결사에 들어갔습니다. 어쩌다 말을 하는 꿈을 꾸기도 했지요. 처음에는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워했습니다. 이 따위 정신으로 무슨 공부를 하는지 싶어서요.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더욱 매섭게 몰아쳤던 것 같아요.“ 스님은 한생각 일으키면 성인들에게 들킨다며 마음에서 속말로라도 중얼거리면 스스로를 경책하였다 한다. “저는 출가하자마자 묵언이나 장좌불와를 한다고 하면 더 공부해 보고 하라고 얘기해 줍니다. 묵언은 성인들에게도 들키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죠.“ 스님은 나중에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더 편안하고 좋더라 한다. 말을 하고 나면 허전해지고 속이 텅빈 것 같은 낭패감이 들던 경험을 떠올리니 스님의 말씀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육 년 공부를 하던 중 스님은 천도되지 못한많은 영가들을 구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해제를 하고 바로 지금의 영명사 터로 왔다. 그리고 지장보살의 대원력을 이루고자 영명사라는 지장 도량을 만들기 시작했다.“부처님의 가피겠지요. 맨손으로 시작해서 삼사 년 만에 이만한 도량을 이루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제가 생각해도 불가사의합니다. 단지 간절한 마음으로 원력을 세우면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장보살님의 마음과 같이 되도록 순간순간 다짐해야지요. 베풀며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스님은 기도하는 마음과 참선하는 마음이 다르지 않다고 한다. 구하고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간절한 한 마음을 내는 것이 바로 기도하는 마음이고 선禪하는 마음이기에 그러하다. “오늘의 승가상이요. 시대에 맞는 자기 위치를 찾아 간절한 마음으로 행하면 바로 올바른 사문이 아니겠어요. 자기 것만 옳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타인의 모습이 바로 자신의 모습일 수 있으니 스스로 자신의 자리에서 충실하면 다른 이들의 삶도 여여할 것입니다. 선과 교 그리고 기도 이 모든 것이 서로 인정하고 교류한다면 가장 바람직하겠지요.“ 그러나 스님은 단 한 가지만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처님의 말씀은 시대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사문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사항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기본에 철저히 입가하여 시대에 적응해야겠지요.“
“세상사 모두 다반사茶飯事입니다” 하며 차를 준비하는 스님을 뵈며 무슨 말인지 어리둥절했다 스님은 싱긋이 웃으며 “세상일은 다 차를 마시듯 해야 한다는 말이라나요.“ 차를 권하는 스님의 얘기가 퍽이나 재미있다. 스님은 차를 좋아하지만 차맛에 그리 예민하지 않은 듯하다. 한번에 열두 번이나 재탕을 해 먹으니 나중에는 뜰뜨름한 것이 영 제 맛이 아닐 게 분명한데도 스님은 그 맛이 그 맛이라며 계속 우리라고 한다. 영명사 산기슭 아래 언젠가“해 뜨는 집”이 세워질 것이다. 스님들의 노후와 병간호를 맡을 공간과, 어린이와 노인들을위한 사회복지관의 이름이 “해 뜨는 집”이다. “꽃들은 무상보시를 하는데 우리는 무엇을 돌려줍니까. 우리도 베풀며 살아야지요.“ 스님의 이 마음이 힘에 겨워도 힘겨운 줄 모르고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이리라. 시계를 보더니 스님은 갑자기 사가를 입고 밖으로 나간다.
몇 분 보살님과 스님들의 좌선 시간이다. 죽비 소리가 들린다. 딱딱딱 세 번 울리더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시끄럽게 우왕좌왕 하던 자신을 관하며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긴긴 여행을 떠나고 있는 것이리라. 새벽 예불 종성을 하던 주광스님의 음성이 떠오른다. 어디선가 멀리서 들려오는 듯 스님의 목소리는 맑고 아늑하다. 지옥 중생을 모두 구제하리라는 스님의 간절한 염원은 우리의 가슴을 울리듯이 가까운 날에 이루어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