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 개구리와 미국과 그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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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만우(시인)
1994년 07월 149호
절이 평야 지대에 있어 산 속에 있는 것과는 주위에서 들리는 소리가 다르다. 산에서는 숲을 터로 하여 살아가는 다양한 생명체들의 수런거림이 다정한 것에 견주어, 들에서 들리는 소리들은 아무래도 단조롭고 경이롭지 못하다. 요즈음은 아침을 여는 참새떼 소리와 밤을 지키는 개구리 울음 소리가 김제 넓은 들을 쉬지 못하게 하고 있다.
모든 생명체들은 제 나름대로의 호흡과 삶의 주기를 갖고 있다. 인지할 수 없는 극미한 숨결과 극대의 숨결들이 우주속에서 일어났다가 스러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존재들도 다양한삶의 방식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루에도 낮과 밤에 따라 활동하는 시간이 다른 무수한 생명체들이 일정한 주기로 활동과 휴식을 되풀이한다. 인간처럼 낮에 활동하고 밤에 쉬는 종이 있는가 하면 야행성 활동 주기를 갖고 있는 종의 수 또한 만만치 않다. 어쨌든 들숨과 날숨, 활동과 휴식, 생성과 소멸의 순환 고리가 원만히 균형을 이루어야만 모든 것들은 편하고 아름답다. 봄부터 개구리 울음 소리가 도량에 가득했다. 특히 밤이 되면 동요의 가사처럼 아들, 손자, 며느리 개구리가 다 모이는지 더욱 요란하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울어대는 걸 보면, 잘은 모르겠지만 개구리는 생물학적으로 겨울잠을 잘 때까지는 울며 깨어 있도록 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언제부터인가 밤이면 개구리 울음 소리에 섞여 이상한 소리가 들리곤 했다. 같이 사는 스님은 누가 날마다 밤이면 전축을 저렇게 틀어 놓는가 했더니, 그 소리를 처음 들으면 다들 예삿 소리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먼저 소리가 음울하고 섬짓하다. 음색이 거칠고 음량이 두껍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기분 나쁜 이 소리가 나중에 알고 보니 미국에서 건너온 황소 개구리 울음 소리라 한다. 감히 개구리 울음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짐승 소리에 가까운 이 소리가 어떻게 이 땅에서 들리는지, 그 원인은 내버려 두고서라도 여름밤의 정취를 파괴하는 주범임에는 틀림없다. 달이 뜰 때부터 질 때까지 볼 수 있는 평야 지대에는 밤이 산 속처럼 짙지 않다. 거닐면서 사색하기에 좋고 담소하기도 좋다. 개구리 울음 소리 또한 늘 길들여 온 음색과 장단 길이를 벗어나지 않기에 친근하다. 그러나 불청객인 미국 개구리의 거친 음색과 두꺼운 음량은 우리 개구리의 합창을 완전히 망쳐 놓는다. 소리를 흔들어 놓기 때문에 귀에 거슬리고 마음까지 언짢게 하는 이 황소 개구리가 생태계까지 파괴한다. 환경과 정서를 동시에 파괴하는 능력이 두 개의 전쟁을 동시에 감당해 낼 수 있다고 큰소리 치는 미국 그 자체를 보는 것 같아 답답하다.
우리 삶의 방식 가운데 많은 부분이 서구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언젠가는 우리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황소 개구리 울음소리로 대체되는 것은 아닌지 겁난다. 그럴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미국 개구리가 우리 개구리뿐만 아니라 미꾸라지 따위의 민물고기가 수입물고기-베스, 블루기-들에 의해 멸종되고 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벌레나 잡아먹던 토종 개구리가 황소 개구리에 의해 사라지면 종래 먹이 사슬이 파괴되어 생태계에 엄청난 해악을 끼칠 수 가 있다는 게 학자들의 지론이다. 생태계 파괴는 한 종의 파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연기 관계에 있는 다른 모든 생명계의 파괴를 의미한다. 하나의 건강한 생명계는 전체 세계의 바르고 순리적인 순환 질서속에서만 담보되고, 전체 역시 바른 하나에 의해서 제대로 지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달라진 개구리 세계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이 보금자리를 외부의 침입자로부터 지켜 내려고 내부적으로 어떤 변화를 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면 천적이라 일컫는 뱀보다 더 무섭고 교활한 적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까지 잡아 보신을 하는 인간도 큰 적대 세력임에는 틀림없지만 인간의 이런 짓은 그만두고라도 개구리들이 큰 위기에 처해 있음은 자명한 일이다. 적과의 동침은 이미 시작되었다. 황소 개구리와 미국은 어떤 면에서 매우 비슷하다. 거대한 몸뚱아리가 그렇고 약소 국가를 적당히 요리해 수탈하여 가는 식성도 비슷하다. 황소 개구리 앞에 놓인 우리 개구리보다 훨씬 앞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장 즐기는 맛 있는 요리 가운데 하나인 우리의 모습을 보면 개구리의 세계가 우리와 닮아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미국에 대한 예속이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본디의 세계를 회복하고 위치를 확보해 내려면 먼저 현실에 대한 철저한 진단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의 진정한 모습은 어떠했으며 지금은 어떤 모습이고 앞으로는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하는지를 근원적인 존재의 관계태에서 역사적인 구조태까지 함께 논의하고 걸러서 진정으로 우리가 부수어야 할 적- 내부, 외부의 적을 포함해서- 은 무엇이고 감싸 안아야 될 것은 무엇인지를 확연히 드러내지 않으면 안 되다. 문제가 드러나면 해결 방법 또한 함께 드러나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국토가 분단된 상황에서 한번도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모습을 보여 주지 않고 외세에 종속되어 질질 끌려 온 정권이 우리에게 입힌 가장 큰 폐해는 문제에 대한 올바른 논의 구조와 언로를 봉쇄해 버린 데 있다. 종속이란 말이 의미하듯 어떤 관계 속에서 균형이 상실되어 일방으로 기울어진 상황에서 강요된 생존 방법은 시키는 대로 하고 주는 대로 먹는 졸병 수칙 바로 그것이었다.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항명이었고, 그것에 대한 진압은 무자비했다. 따라서 균형을 회복하려는 정당한 주장이나 논의는 종속 구조 속에서 상처 입고 허우적대야 했으며, 지금의 현실 상황도 수평적 관계의 토대가 아닌 일방의 수직적 관계의 끄트머리에 그냥 매달려 있을 뿐이다. 이렇듯 비틀린 관계는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현대사에서 가장 큰 불행 가운데에 하나인 적에 대한 대상이 바뀐 데서 시작했다.
현실적으로 규정된 우리의 가장 큰 적은 같은 핏줄인 동족이다. 지구상에서 하나뿐인 분단 국가이면서 냉전의 산물을 골동품처럼 끌어 안고 있는 한반도, 남쪽이나 북쪽이나 목숨바쳐 죽이고 승리를 쟁취해야 할 대상이 아직도 한민족 한핏줄 현실에서 어떻게 민족의 자주성이나 주체성이 생기겠는가. 이미 황소 개구리가 들어와 야금야금 우리의 터와 생명을 앗아 가는데, 앞논과 뒷논으로 갈라져 터 다툼을 한다면 양쪽 다 파멸함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제 우리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적대 관계를 해소하고 하나로 뭉쳐 삶의 기틀을 뿌리부터 흔들고 있는 진짜 적과 맞서야 할 것이다.
현재 북한의 핵 문제로 온 나라가 야단법석이다. 정부나 언론은 전쟁 위기설을 외쳐대고 또 다시 6․25와 같은 전쟁이 일어날 듯하다면 미국 모방송사는 한반도 전쟁 특별 취재팀까지 구성했다니 아연실색할 따름이다. 국토가 분단된 지 반세기가 가까워 오는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나 자세가 대미의존적인 구태가 여전하다. 또 하나의 사건을 침소봉대하여 정치적인 악재를 묻어 버리는 호기로 삼으려는 어리석은 작태 또한 변한 게 하나도 없다. 우리만이 아니라 이 나라의 백년대계를 위해 참으로 손질하고 다듬어야 할 문제 하나 둘이 아닌데, 자신의 잘못을 덮는 데 급급해서 자신의 양심과 국민의 눈을 속이는 파렴치하고 안목 없는 짓을 계속한다면 황소 개구리의 뱃속에서 소화되고 있는 토종 개구리의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핵 문제는 시대적인 하나의 사건일 따름이다. 부분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할 사건 상황이고 또 종료가 될 게 틀림없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문제가 발생될 소지를 없애는 것이다. 그것은 하루 빨리 종속적인 대미 관계에서 벗어나 균형 있는 관계를 회복하는 토대 위에서 올바른 적대 관계를 정립하는 데 있다. 적 다운 적을 상대로 투쟁을 했을 때 승리의 희열이 있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가질 수 있다. 내부의 적이든 외부의 적이든 참으로 맞서야 할 대상을 무너뜨린 뒤 새롭게 세워질 세계는 언제든지 어느 곳에든지 흔들림이 없는 중심으로 자리할 수 있다. 남북의 수뇌가 모여 핵 문제를 포함한 제반 문제를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니 다행스럽다. 이 회담이 이루어진다면 방법에서라도 바른 길을 여는 셈이다. 정말로 양심과 정의에 따라서 허심탄회하게 대화한다면 회담의 성과는 기대 이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과거처럼 정권 유지 차원에서 자기 주장이나 되풀이한다면 정치에 대한 불신, 사회 도덕의 마비, 가치관의 혼란 따위가 핵 문제보다 더 심각해져 우리를 일어설 수 없는 좌절로 이끌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지만 변화는 균형을 유지하려는 하나의 운동이다. 따라서 올바른 변화의 모습은 비록 균형이 흔들리더라도 곧 무게 중심을 회복해서 하나와 전체 속에서 중심을 잡고서 외롭지 않게 서 있는 것이다. 최고의 경지라 했을 때, 경지라는 말에는 구획이나 경계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만 실상은 허공과 같은 대상조차도 포용하고 섭수하는 원융한 세계를 의미한다. 그런 경지에서도 너와 나, 적과 아라는 상대적인 틀에서 벗어나 무게나 부피가 아닌 존재 그 자체로서 만난다면 땅의 모습과 허공의 모습이 조금도 다르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개구리의 세계가 어떻게 변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황소 개구리 울음이 귀에 거슬리고 그 뱃속에 우리 개구리가 소화되고 있는 시점에 아직도 우리는 서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