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어젖히매
나타난 달아
흰구름 좇아 떠감이 아닌가
아니, 시퍼런 내에
기파 화랑 모습이 있어라
여기서 냇가 자갈에
화랑이 서 지니신
마음의 끝을 좇고지어
아아 잦가지 높아
서리 모르올 화랑장
양주동과 홍기문의 향가 풀이를 대조해 정돈해 보았다. 정신의 높은 차원, 끝간데 모를 이상이 신라 젊은이의 마음에 넘쳐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상에 못지 않게 겸허도 좋아했다. 신라 헌안왕 때에 이런 일도 있었다. 응렴膺廉이란 이름의 젊은이가 화랑도에서 윗자리인 국선國仙이 되어 전국을 여행하고 서라벌로 돌아왔다. 헌안왕이 응렴을 대궐로 불러들여 물어보았다. “랑이 널리 국토를 순례하면서 보고 느낀 것이 무엇인가?” 응렴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신이 여행하는 동안에 미덕을 지닌 세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지만 겸손하여 다른 이들보다 낮은 자리에 앉는 사람이었습니다. 둘째는 부자이면서도 남들보다 검소하게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셋째는 권세를 가지고 있으나 사람들에게 위엄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이 응렴을 사위로 삼은 후 왕위까지 물려주었다. 응렴이 신라 제8대 임금 경문왕이 되었다. 겸허보다 더 묘미가 있는 마음을 ‘부드러움’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부드러운 마음을 통해 진리를 터득한 이가 있다. 신라 경덕왕 때에 우리말로 ‘노골부들’이라는 이름과 ‘단단빡빡’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사람이 있었다. 한자로는 노힐부득努朕不得과 달달박박恒恒朴朴이라고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이 이름들을 향가 풀이에서 이채로운 업적을 보인 김선기 박사가 현대어로 바꾸어 ‘노골부들’ ‘단단빡빡’ 이라고 풀이해 놓았다. 그 근거는 “두 사람의 이름이 각기 지닌 성격을 뜻하는 우리말이었다”는 것이다. 노골부들은 오르내림이 자재로원 약동(00)하는 형이고, 단단빡빡은 절도를 지키기에만 고심하여 고지식(苦節)한 형이었다. 이러하니 순수한 우리말로는 노골노골하고 부들부들하여 부드러운 성격과 단단하고 빡빠하여 경직된 성격을 뜻한다. 과연 이 두 사람 노골부들과 단단빡빡에 얽힌 사연을 「삼국유사」남백월이성南白月二聲 대목에서 살펴보면 이 이름 풀이가 이해된다.
신라 성덕왕 때 구사군 북쪽에 백월산이 있었다. 고려 때에는 구사군을 의안군이라고 했는데 「한국지명연혁고」(권상노)에서 보면 오늘의 경남 창원이 이 지역에 해당된다. 백월산에서 동남쪽으로 삼천 보步 거리에 선천촌仙川村이란 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에 노골부들과 단단빡빡 두 사람이 살았는데 이들의 이름은 각기 지닌 성격을 나타내는 우리말이다. 두 사람 모두 풍모가 비범했고 서로 친한 벗이었다. 두 사람이 모두 이십대의 젊은 나이에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으나 또한 처자식은 거느리고 살았다. 하루는 두 사람이 자신들의 처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농사가 잘 되어도 자연이 스스로 풍요한 것에 미칠 수 없다. 아내와 다정해도 앵무새 한쌍의 즐거움에 미치지 못한다. 하물며 진리를 깨우쳐 부처가 되고자 하는 우리가 세속의 무리와 다름없는 생활에 얽매어 있어서야 되겠는가.” 이리하여 그들은 가족과 마을을 떠나 백월산 계곡으로 들어갔다.
단단빡빡은 계곡의 북쪽에 암자를 짓고 아미타불이 되고자 염원했다. 노골부들은 남쪽에 암자를 짓고 미륵불이 되고자 힘썼다. 그런데 어느날 저녁 무렵 이 산 속에 길을 잃은 한 젊은 여인이 나타났다. 용모가 아름답고 향기를 풍기는 이 여인은 먼저 북쪽 암자에 찾아가 딱한 처지를 말하고 하룻 밤만 암자에서 자게 해 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빡빡은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여인은 다시 남쪽 암자로 가서 같은 사정을 말했다. 부들은 여인의 청을 거절하지 못했다. “이 암자는 여인이 들어오는 데가 아니지만 산 골짜기가 이미 어두워졌으니 홀대할 수가 없구려. 먼저 중생을 돌봄이 보살도에 맞을 것 같소.” 이렇게 말하고 부들은 여인을 암자 안으로 들어와 자게 했다. 그리고 자신은 마음을 맑게 하고 계속 염불을 하였다. 밤이 깊자 여인이 갑자기 아기를 낳았다. 부들은 여인에게 짚을 깔아 주고 목욕물도 데워 주었다. 실은 이 여인은 두 스님의 수도하는 자세를 시험하러 온 관음보살이었다. 보살의 도움으로 부들은 금빛을 발하는 미륵불이 되었다. 이튿날 새벽에 빡빡은 남쪽 암자를 엿보러 찾아갔다. “부들이 지난 밤에 필경 파계를 했겠지.” 비웃어 줄 심산이었다. 그러나 뜻밖에 성불해 있는 부들로부터 경위를 듣고 자신이 야박했음을 한탄했다. 부들은 옛 우정을 생각해 빡빡도 성불하도록 도와 주었다. 경직은 죽음을 뜻하고 부드러움은 생명을 뜻한다. 이것을 아는 것이 진리에 다가가는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