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권태왕 K의 좌탈과 탈 안경 기념비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유마의 방 - 김홍경 1994년 07월 149호
살면서 권태를 느끼지 않는 의욕적인 사람을 보면 신기하다며 석가의 출가이유를 해 볼 대로 다 해 본 뒤에 오는 권태 때문이라는 이상한 주장을 하던 K. 권태를 통과할 때야 말로 죽음과 삶과 질병의 원인인 ‘마음’에 속지 않게 된다던 알쏭달쏭한 견해를 펼치던 K.
해변가 별장 같은 연구실 놓아 두고 옆의 죽변 해수욕장에 천막 치고 죽치던 그는 우리 사무실의 무인 응답 전화기에 입력시킨 메시지를 끝으로 사라졌다. “권태왕은 간다.”
우리는 급히 동해로 날았다. 방바닥이 뜨끈하여 창문을 열어제친 채 덜덜 떨면서 소주 마시던 겨울 바다의 연구소는 두한족열頭寒足熱이었다. 머리는 차게, 다리는 덥게 하라는 건강 비결을 실천하는 장소라더니, 바다를 내다 보고 앉은 좌탈坐脫 모습의 K는 또 하나의 극적인 반전을 연출하고 있었다. 천재민이 오직 권태를 안다던 K가 풍기는 태만의 ‘끼’는 전염성이 대단했다. 그를 방문한 즉시 우리는 언제나 자신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렸다. 그의 말대로라면 학교조차 졸업할 이유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K로부터 도망쳐 나오기까지는 그의 독소가 그렇게 심한 줄 몰랐다.
“너희는 절대로 학교, 직장, 가정, 세속 생활 그만 못 둬, 흉내내지 마. 실컷 속세에 나가 해 볼 대로 해 봐. 미화된 욕심이 의욕이라는 걸 너희들 알아 들어?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구. 시간이 황금이라고, 타임 탱크. 현대판 노예제도가 바로 이 사회 아닌가. 옛날 노예제도는 죽을 때까지 책임이나 졌지. 지금은 무능해지는 즉시 내쫓기지 않아.”
무승부 예찬론자이지. 승부심에 언제나 조소를 보내던 그와 우리는 사사건건 부딪쳤다. 특히 바둑, 장기, 테니스 등 오락잡기에도 강하던 우리는 웬만한 도박 승부는 다 좋아했다.
K, 그는 우열 다툼이 질색이었다. 아예 승부가 있는 사건을 싫어했다. 그는 입시나 경기를 사건이라 불렀다. 그는 비교하는 망상이 모든 고질병의 원인이라 했다. 그는 한때 한의사였다. “야, 함께 즐거운 일 좀 찾아봐라. 그렇게도 야구 경기가 좋으냐. 어느 편이나 편들지 않고는 경기를 보는 즐거움이 그렇게도 없더냐. X팔 놈덜, 여자의 아름다움도 점수를 매기다니... 어린애들 가슴에 못 박는 성적표 좀 봐라. 야, 나가서 여자 꼬셔서 연애나 해라. 경기 좀 그만 보고. 누군가 하나는 울어야 즐거운 승패 가름이 뭐가 그리 신나냐. 같이 즐거운 연애가 낫지. 하기사 그것도 쌍놈들은 폭행으로 조진다지. 여자는 죽이고 남자는 즐거웁고. 이런 세태도 알고 보면 어릴 적부터 정복의 즐거움에 물들게 해서 상대방을 괴롭게 해야 즐거움이 오는 줄로 배워 왔기 때문이지. 어떤 도시의 대학 교수 놈은 자기 도시의 대표 야구팀의 이기는 날은 휴강이래. 미친 놈들 하고는...”
바둑도 못 두게. 경기도 못 보게, 고스톱이나 포커, 토론도 못하게 하니, 그와는 지루하게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무료한 적막감이 밀려왔다. 의구심이 생겼다. 이렇게 아무 일 안 해도 되나. 무언가 해야만 할 텐데. 밖을 내다보니 낚시꾼이 한적하니 앉아 있었다. 낚시나 해 볼까. “새꺄! 살생을 해. 저 밑에 가면 죽은 고기도 싸게 많이 팔아. 느덜 대신 그 정도 잡아 들였으면 되었어. 낚시, 너희 즐거움을 위해 고기는 죽잖아. 고기는 고통스럽고 너희만 즐거운 그 일은 승부보다 더 악질 취미야. 저 옆에 고등학교 밴드부가 합주하는 음악 소리나 들어라. 하긴 저 놈들도 알 수 없지. 혹시 경연 대회 나가는지. 음악도 훈련에다 대회라니. 염병할 세상, 인디안의 교육 전통처럼 자연 속에서 홀로 있게 하는 편이 훨씬 영성 고양에 도움이 돼. 모래사장에 홀로 앉아 미역이 멱 감는 소리나 챙겨.”
“아 지루해, 할 일이 없어. 짜릿한 건 전부 승부가 있어야 하는데.” K와 함께 있는 것은 일종의 고문이었다. 밥도 배가 고프면 각자 앉아서 찾아 먹기. 졸리면 말하다가도 자기. 비디오 코미디나 애정물 외에는 금하기. 아무리 전세 영웅 이야기라도 대량 살륙 전쟁광의 뺑끼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K의 지론인데, 예수 석가 등의 일생을 그린 비디오가 뭐 그리 흔한가. “아, 따분해.” “잔머리 좀 쓰지 마라. 한눈에 보인다. 이기라고 머리 좀 쓰지 마라. 부러워 하지 마라. 되고 싶어하지 마라. ‘처럼’을 잊어라. 견주지 말아라. 여기 그냥 있어 봐라. 무능해져야 오래 산다. 너희들 눈 밑이 까만 것 보니까 꿈에 꽤나 쫓기는구나. 가진 게 꿈에서도 많구나. 느덜 부자구나. 빼앗길 게 있으니...”
“치, 꿈까지 간섭하네.” “뭐, 꿈이라구. 야, 이 놈덜! 차라리 눈감고 꿈꾸는 건 애교나 있지. 눈 뜨고 멀쩡한 놈이 꿈을 꾸냐. 눈 뜬 봉사. 당달봉사 같은 놈들. 야심이라는 게 고작 전부 남 이길 궁리나 하고 있으니, 이게 어디 아수라 세상이지 인간 세상이냐. 뜻을 품을 때 곧 좌절이 생기나니라. 이놈들아! 너희들 먹은 꿈이라는 게 다 뭐냐. 몸이나 아껴라. 너희 꿈이 마음과 몸을 더 망치고 있다. 이 멍청이들아!” 하긴 K형의 옆에는 입에 웃음이 헤픈 당달봉사 같은 M형이 언제나 있었으나 생전 말이 없었다. 그 날 분향소에서도 마냥 헤프게 웃으며 앉아 있는 M을 보니 갑자기 무료해졌지만, 건강한 그의 안색에는 질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건강을 회복하려고 우리도 무료하게 하룻밤을 세워 보기로 했다. 실로 아무 기계(?)도 안 돌리고 초상집 밤 세우기는 처음이었다.
새벽 동해의 일출에 우리는 졸리운 눈을 비볐다. 일제히 안경을 썼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안경을 쓰니 시야가 더욱 어지러워 모두 픽픽 쓰러지는 것 아닌가. 헤실헤실 M이 모처럼 빈정거리듯 “안경을 벗어 보시지요” 했다. 사실 우리는 모두 안경을 써야 하는 근시안 클럽이었다. 안경을 벗으니 시야에 태양이 더욱 뚜렷하게 들어왔다. 태양을 정면으로 볼 수 있다니. 시력 장애가 올까 봐 걱정이라는 놈이 슬며시 옆구리를 파고 들 때였다. 갑자기 흑점 시야로 K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예의 그 무료한 얼굴로 웃을 듯 말 듯 묘한 표정의 권태왕K. 그는 태양의 일부였던가. 그의 입술이 쫑긋거릴 때마다 글이 무지개로 쓰여졌다.
“너희들 마음이 곧 안경이다. 사회가 마음이다. 사회에 대해 그만 지껄여라. 태고에는 너희들이 대단하게 여기는 안경이 없어도 잘 살았다. 대단한 물질은 눈 그 자체이다. 옛날의 예언자 사무엘이 왕과 국가라는 힘의 안경을 달라고 아우성치던 어리석은 유대 백성에게 사율왕을 주면서 경고한 뒤로 인류는 안경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있지. 사회가 하는 일이 뭐냐. 교활한 두뇌를 훈련시켜 내보내는 전쟁 교육의 마당에서는 게을러도 돼. 권태가 약이야. 신기한 것은 권태조차 느껴 볼 시간이 없는 저 바쁜 군상들의 저장 창고인 심포경心包經 작동 욕망 의욕이지. 오늘도 정보 쳐 먹기 분주한 지식의 위장 심포경락이 펑펑 터지는 소리가 들려. 성공, 성취, 경쟁의 안경을 벗어 던지고 인생 극장 막간의 권태나 즐겨라.”
지루하게 우리는 또 K의 독화살에 마취가 되어 버린 셈이다. 서로가 서로의 안경을 벗겨 주는 탈 안경 기념식을 가짐으로 사회를 등졌다. 바다를 마주 보고 ‘헤실M\'과 가만히 아주 조용히 적만 무료하게 앉아 있는 중이다. 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