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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율장인 종헌 종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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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장이야기 - 원철 1994년 07월 149호
스님과 승녀
조계사 사태로 불교계가 날마다 언론에 오르내리던 지난 4월에는 신문기사를 유심히 대하면서 생경스런 표현을 하나 발견했다. “아무개 승려”라는 말이었다. 그 동안 호칭에 대하여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그냥 “스님”이 보통 명사화한 것으로만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언론은 “스님”이라는 표현이 존칭이라고 생각해서, 그 행태가 스님이라고 하기에는 전혀 존경심이 가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승려”를 찾아낸 모양이었다. 그 때 난 우리를 부르기에 마땅한 객관적 호칭이 없음을 다시 알았다. 문제는 “님”이라는 글자였다. 신부님, 목사님은 존칭하고 싶지 않으면 “님”자만 떼 내면 되는데, 스님은 그게 아니다. 글자를 떼어 낼 수가 없다. 떼 내고 나면 아예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불교 용어에 어두운 언론사는 모르긴 해도 승려라는 말을 찾아 내려고 애 좀 먹었을 것 같다. 어쨋거나 개혁 불사는 돛을 올렸고 종헌 종법도 문제가 되는 부분은 고칠 수 있게 되었다. 스님 대신에 승려라고 불러야만 했던 하심의 공덕으로 인하여.

시문, 비구, 법사, 중
불교 역사만큼이나 수행자를 일컫는 호칭 또한 다양한 길을 걸어 왔다. 불교 발생지인 인도에서는 출가자를 “사문沙門(Sramana)”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부처님 제자뿐 아니라 당시 모든 수행자를 통틀어서 일컫는 말이었다. 집 없는 사람, 삼림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다음으로는 “비구比丘(Bhiksu)”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걸사乞士 곧, 얻어 먹는 사람이라는 뜻으로서, 부처님께서 직접 제자들을 부를 때 사용했다. 이 말에는 부처님을 따라 빌어서(乞法) 마음을 닦고, 마을에 나가서는 밥을 빌어서(乞食) 몸을 유지한다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중국에서는 이 두 이름과 함께 “법사法師”라는 호칭이 나온다. 불법에 정통하고 청정한 수행을 닦아 남의 스승이 되어 대중을 이끌어 가는 수행자를 말한다. 또 승가僧伽(Sangha)를 번역한 “중승衆僧”이라는 말도 보인다. 이는 세 사람 이상의 화합 대중이라는 뜻이다. 승려僧侶라는 말의 근거가 된다. 우리말의 중이라는 용어도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불법을 믿고 불도를 행하는 수행자들의 무리라는 뜻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스님이라는 이름이 등장하였다. 그 어원에 대한 설은 대략 두 가지로 압축되니, 그 하나는 승僧에 존칭인 “님” 자를 부친 합성어인 “스님”에서 이응이 탈락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사師라는 뜻에서 스승, 스님이라는 의미와 말이라는 의미가 동시에 쓰이고 있다.
불교사전에는 일반적으로 출가 수도하는 수행자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라는 것도 아울러 적혀 있다. 어쨌거나 스님이란 말은 존칭어인 동시에 보통어라는 이중성을 가진 셈이다.

스님이라는 이름의 한계성
이름은 대중성과 정당성을 가져야 한다. 아무리 좁은 의미를 가지고 있더라도 여러 사람에게 쓰이지 않거나 잘못된 뜻으로 사용된다면 곤란하다. 원효는 자신의 이름 앞에 해동사문海東沙門이라는 말을 즐겨 붙였다. 통도사에서 간행되는 포교지 「등불」은 필자의 이름 앞에 “사문00”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하지만 사문이란 말은 바라문과 상대인 당시 외도를 포함한 모든 수행자를 일컫는 말이어서 한계가 있다. 비구(니)란 말은 어쨌거나 수계식이나 포살을 할 때 듣게 될 뿐 우리 자신도 잘 쓰지 않는다. 다만 사미(니)에 대한 상대적인 이름일 뿐이다. 둘 다 수행자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으로는 부적합하다.
법사라는 말은 그 본디 의미와는 상관없이 이즈음에 와서는 군법사軍法師나 재가불교운동을 하는 거사들에게 붙이는 의미로 바뀌어 수행자들은 꺼려하는 말이다. 중이라는 말은 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이미 수행자를 비하하는 표현으로 굳혀졌다. 스님이란 말은 현재 가장 대중적인 용어지만 그 출처가 분명치 않고 존칭의 의미가 강하다. 그래서 특히 전화를 걸고 받을 때 곤란하다. 자신을 밝히면서 스님이라고 할 때면 얼마나 멋적은지 모른다. 그렇다고 상대방이 알아 듣지도 못하는 사문이니 비구이니 하는 용어를 쓸 수도 없다. 이래저래 출가자 전체를 일컬을 만한 마땅한 호칭이 없어서 어정쩡하기만 하다.

종헌 종법에서의 수행자의 호칭과 자격
제도는 그만두고서라도 수행자의 자격은 시대상을 여실히 반영하기 마련이다. 조계종의 종헌 제9조에는 “승려는 구족계와 보살계를 수지하고 수도 또는 교화에 전력하는 출가 독신자”라고 규정되어 있다. 승니법에서는 “승니(비구, 비구니)는 사회의 정신적 지도자, 봉사자, 성직자로서 고매한 인격과 자질과 능력을 갖추어 평소 언행에 일반 민중의 사표가 되고 불타의 구세원력의 실천자로서 수도와 전법을 통하여 불국토 건설의 사명을 다한다”고 하여 그 구체적인 사명을 부연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 자격에 대해서는 구족계와 보살계를 수지하고, 사찰에 독신으로 상주하면서 머리를 깍고, 먹물 들인 옷을 입고, 실질적으로 가족 부양 등의 세속 관계를 끊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여기에도 개차법開遮法의 조항이 있어 시대상을 반영한다. 일제의 조선사찰령 본말사법에서는 주지의 자격에 비구계 항목을 삭제하여 사미계, 보살계 수지로서 승가를 대표하여 결혼을 허용한 바 있다. 1962년 정화운동이 일어나면서 이미 결혼한 승려의 기득권은 인정하고, 앞으로는 독신 출년에는 특수종무활동자(군법사)의 독신 규정을 완화하였다.

승려님, 법사님
종헌이나 종법대로 한다면 수행자의 공식 명칭은 승려가 되는 셈이다. 그러면 존칭어는 승려님이 되어야 하는가. 어쨌든 익숙치 않아서인지 몰라도 부르기가 껄끄럽다. 줄여서 스님이라고 하면 어떻게 들릴까. 역시 스님이란 호칭이 자연스럽게 들리기는 한다. 하지만 그럴 경우 일관성이 없다는 문제가 나온다. 법사도 괜찮을 성싶다. 법사란 불법에 정통하고 언제나 청정한 수행을 닦아 스승이 되어 대중을 이끌어 가는 수행자라는 뜻이므로 그 뜻도 괜찮고 법사님이라고 부를 때도 별문제가 없다. 출가자들의 이름으로도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삼장법사와 이미지를 연결시킨다면 더 무게도 있어 보일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