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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니 팔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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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장이야기 - 원철 1994년 08월 150호
악법으로 지목하다
최근 “정혜도량이란 비구니 경사체를 중심으로 교단 구성원의 한축으로서 비구니 역할을 새로이 조명하기 위한 시도를 구체화하고 있다. 여기에는 의식과 제도 개혁을 통하여 교단 내에서 비구니의 위상 확립을 그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비구니 팔경계라고 한다. 특히 진보적인 비구니 사이에서는 “악법(?) 제1호로 간주되는 모양이다. 심지어”이렇게 불평등한 법이 그렇게 자비하고 평등하신 부처님께서 정말 제정하신 것일까하는 의구심까지 품는다. 하지만 비구니 대중의 정서는 그렇다고 해서 역사적인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원칙은 원칙이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른 경전이나 율장에서 평등법의 새로운 근거를 찾아 내면 된다. 그것이 불가능하면 위경僞經이라도 만들면 될 것이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마지막 방법은 비구를 포함한 전체 대중의 설득과 합의를 통해서 새로운 개차법을 제정하는 일이다.
비구니 팔경계의 조목
비구니 팔경계는 율장의 종류나 경전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그 전체적인 흐름과 내용은 비슷하다. 아래에 비구니 팔경계를 적었는데, 다른 부분은 괄호 속에 덧붙였다.
1. 비구니(또는 식차마니)는 비구(또는 이부중二部衆)에게서 구족계를 받아야 한다.
2. 비구니는 보름마다(포살할 때) 비구에게서 가르침(또는 팔경계)를 받아야 한다.
3. 비구니는 비구가 없는 곳에서는 안거를 할 수 없다.(비구니는 비구와 같은 공간에서 거주할 수 없다)
4. 비구니는 안거가 끝나면(자자自恣할 때) 이부중(비구, 비구니) 속에서 삼사三事(見, 聞, 意)를 청해야 한다.
5. 비구니는 비구의 허물을 말하거나 죄를 드러낼 수 없다.(비구니는 비구를 욕할 수 없다)
6. 비구니는 비구가 허락하지 않으면 비구에게 삼장三藏(經, 律, 論)을 물을 수 없다.
7. 비구니는 잘못을 범했을 경우(승잔죄僧殘罪 이하) 이부중에게 참회해야 한다.
8. 비구니는 백 살이 되더라도 새로 구족계를 받은 비구에게 먼저 절을 해야 한다.
최초의 비구니 마하파자파티 출가 조건
마하파자파티는 부처님의 어머니 마야 부인의 동생으로 마야 부인이 죽자 부처님의 양육을 맡았던 분이다. 나중에 석가족의 여자 오백여 명과 함께 출가하면서 비구니 교단을 탄생케 하여 최초의 비구니가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이 결코 수월했던 것은 아니다. 사분율 48권에 당시의 상황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여자들의 출가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부처님과 출가를 허락 받으려는 마하파자파티 사이에 세 번에 걸친 부탁과 거절이 이어지고 있었다. 부처님이 거절한 이유는 한마디로 “불법을 오래 가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울고 있는 마하파자파티를 발견한 아난 존자는 자기가 대신 부처님께 간청해 보겠다는 말로 달랜다. 그러고는 부처님께 달려가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어떤 집에 남자가 적고 여자가 많으면 그 집안이 쇠퇴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 부처님의 설명이었다. 부처님이 걱정하시는 문제가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는 데에 생각이 미친 아난 존자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부처님을 설득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되물었다.”여자들도 출가하여 계를 받으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까?부처님께서는”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하고 대답하였다. 아난 존자는 예상한 답변이 당연히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여자들의 출가를 허락해 달라고 다시 간청하였다. 부처님께서도 스스로 자신의 말과 행동에 모순을 느꼈는지 아니면 자비심의 발로인지 알 수는 없지만, 비구니 팔경계를 받아들이는 것을 조건으로 결국 여자들의 출가를 허락한다. 출가 자체가 궁극의 목적인 마하파자파티에게는 그게 무슨 문제가 되랴. 그리하여 교단 내에 새로운 비구니 제도가 생기게 되었다.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뒤 이십 년째 되는 해에 일어난 일이다.
비구니 팔경계의 모순
비구니 팔경계의 내용 자체가 부처님과 마하파자파티 사이에 있던 역사적 사실로 보기에는 석연찮은 점이 있다는 견해가 일부에서 대두되고 있다. 그 근거로서 팔경계 내용 가운데에 이부승중二部僧衆(비구, 비구니), 식차마니式叉魔那 등은 아직 비구니 교단이 성립되기 전임을 감안할 때 수긍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곧 부처님께서 여자의 출가를 허락하시기 전에 이미 비구니의 존재가 있음을 반증한다는 것이다. 식차마니에 대한 언급도 마찬가지이다. 식차마니는 사미니에서 비구니가 되기 전 이 년 동안 법을 배우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이는 사미니의 존재까지도 염두에 두어야 성립될 수 있다. 이처럼 시기적으로 앞 뒤가 맞지 않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를 되묻고 있다. 어쨌거나 팔경계는 오분율, 십송률, 마하승가율 등 모든 율장에 함께 언급되어 있으며, 구담미경瞿曇彌經이라는 이름으로 중아함경 28권에도 실려 있다.
팔경계와 비구니계와의 관계
하지만 이러한 개념 자체에 따른 논쟁은 내용보다 형식에 더 비중을 두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따라서 비구니계와의 상관성을 찾는 것이 오히려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비구니께 속에서 팔경계와 관계되는 계목을 가려내는 건 쉬운 일이다.
1. 비구니는 새로 수계한 비구를 보면 마땅히 일어나 영접하며, 공경히 예배하고 인사하며 앉기를 청해야 한다.
2. 비구니는 비구를 꾸짖으면 안 된다.
3. 비구니는 계를 받은 그 날로 비구승중에 가서 인준을 받아야 한다.
4. 비구니는 아픈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름마다 청법聽法하러 가야 한다.
5. 비구니는 보름마다 마땅히 비구승중에 가서 가르침을 청해야 한다.
6. 비구니는 비구승이 없는 곳에서 안거를 하지 못한다.
7. 비구니가 안거를 마치고 비구승중에 가서 숨김없이 삼사三事(보았거나, 들었거나, 의심나는 것)를 물어야 한다.
8. 비구니는 미리 말하지 아니하고 비구에게 교의敎義를 묻지 못한다.
비구니 팔경계와는 달리 비구니 제목은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씩 제정할 수범수제隧犯隧制이다. 당시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비구니가 비구를 곤경에 빠뜨린 경우가 많았던 모양이다. 그것이 부처님의 눈에는 재가자의 눈에 곱게 비쳤을 리가 없다. 따라서 팔경계 역시 비구니계의 연장 개념으로 보는 것이 계율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다. 더욱이 가장 적은 참회를 요구하는 바일제죄라고 해서 가볍게 여기는 것은 더더욱 계율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다. 계는 부낭浮囊(수영할 때 사용하는 튜우브)과 같아서 어느 부분만 떼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 않는가. 참회 방법이 가볍다는 것이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담보할 수는 없다.
비구니 팔경계의 본래적 의의
계율은 깨달음이라는 수행의 측면과 교단 유지라는 제도의 측면을 동시에 충족시켜서 정법을 오래도록 이 세상에 머물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부처님이 여자의 출가를 세 번이다 거절한 것은 여자라고 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보다도 교단 유지에 대한 어려움을 예상한 것이었다. 교단 유지에 가장 문제가 되었던 부분이 비구와의 위상 관계 정립의 문제였을 것이다. 그리고 여자의 신체적 구조가 지닌 한계 때문에 따로 떨어진 곳에서 수행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팔경계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팔경계 가운데에 세 번째인”비구니는 비구가 없는 곳에서는 안거할 수 없다(비구니는 비구와 같이 살 수 없다)에서 보듯 한 공간에서 안거한 것이 아니라 조금 떨어진 다른 공간에서 각각 수행하도록 한 것이다. 이것이 현재의 큰절과 암자 형태로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또한 당시”여섯 무리의 비구 비구니(六群比丘比丘尼)로 불리는 역경계 보살들 때문에 교단 내에서 물의가 일어나고, 그로 인하여”비구, 비구니는 서로 약속하고 다니지 말라,”비구는 친척 아닌 비구니에게 빨래나 바느질을 시키지 말라,”비구니는 예고 없이 비구 절에 가지 말라는 따위의 많은 계율 항복이 뒤따랐다. 팔경계로 대표되는 이러한 종류의 계목은 결국 교단을 오래도록 유지하려는 자구책인 셈이다. 그와 동시에 정법을 오래 머물게 하려는 수단이다.
제2의 아난 존자의 출현을 기다리며
어쨌거나 그 날부터 이천오백여 년이 흘렀다. 앞으로도 부처님의 가르침은 영원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아난 존자도 부처님에 버금가는 통찰력을 가졌었나 보다. 부처님을 설득할 만큼의 확신과 신념 그리고 안목을 가진 제2의 아난 존자의 출현을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