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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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가의 얼과 멋 - 편집실
1994년 09월 151호
좌복에 묵직하게 눌러지는 허벅지와 궁둥이 살은 땀으로 짓무르고, 내 몸 어딘가에 붙어 있을 아뢰아식은 “내가 누구인고” 하는 큰 바다에 침잠되어 잠시 꼬리를 감추는 것 같다. 무더웠던 여름 안거였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생각이 뜸해지고 말이 절제되어 몸은 더욱 더 가벼워졌고, 아침 공양을 끝내고 장경각 뒤 오솔길 잡풀을 밟으며 너그럽게 걷는데, 솔잎 향기가 가슴속 깊이 파고들어 형형해진 눈동자를 통해 뿜어지는 것 같은 벅찬 기쁨이다. 벌써 석 달 동안의 여름 안거가 끝나 가고 있다. 이제 안거에서 운수로 수행의 모습을 바꾸어야 할 때이다. 지대방 보이지 않는 구석에 팽겨쳐 두었던 걸망도 잘 세탁하여 풀먹여서 다림질을 한다. 바루, 장삼, 가사, 요령, 거울 따위의 수행자가 지녀야 할 열 가지 비구 필수품 대신에 소금을 가득 넣어 한나절을 강행군 해야 했던, 한때는 나라를 구하는 데 단단히 한몫했던 역사적인 의미도 곁들여진 남루해진 걸망이다. 이번 해제철에는 가진 것이라는 볼품없는 몸뚱이 밖에 없는 이 수행자를 반겨 줄 어느 선지식과 도량을 찾아 참배할까. 동해안을 따라 북쪽과 가까운 건봉사를 찾을까. 서해안을 따라 올라 중국과 조금 가까운 안면도의 간월암을 찾아 볼꺼나.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일손 부족한 지리산 깊은 농촌으로 찾아 들어 벼 이삭, 배추 한 포기에 애정을 쏟아 볼까. 걸망을 짊어진 채 산문을 뒤로 하고 고뇌하는 표정과 빛나는 눈빛의 이 수행자는 무엇이며 나는 진정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