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보수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죽비의 소리 - 종림
1994년 07월 149호
지금은 별반 의미가 없게 되었지만, 진보와 보수라는 개념은 한때 우리들의 사고나 태도를 분류하는 기준이었다. 현재는 진보주의도 없고 보수주의도 없다. 그러나 진보적인 인간이나 보수적인 태도는 있다. 진보도 보수도 없다는 것은 진보적인 꿈이나 보수적인 이상들이 이데올로기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되었음을 뜻한다.
진보적인 입장이 사라진 것은 진보적인 새로운 꿈들이 이루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보수적인 체제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보수적인 체제라는 비판의 대상이 사라졌기 때문에 상대인 진보주의 입장 역시 무의미해진 것뿐이다. 적이 분명할 때 아我도 분명해 지는데 적과 아를 구별하는 선이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결국 집단적인 꿈이나 입장이 사라진 대신에 개인적인 꿈만 남게 되었다. 현실의 상황은 더욱 나빠진 셈이다. 입장만 분명하다면 일상을 유지하면서 개선이나 타협도 할 수 있고 체제 변혁의 꿈도 펼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거의 일상에 매몰되어 이를 유지하기도 힘겨워하고 있다. 평상심이 도라고 했을 때는 가장 궁극적인 지평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아니면 조직의 목적이나 질서에 암묵적인 동의라도 있을 때는 작은 일상들이 평상이 된다.
전통적인 체제나 질서가 살아있을 때는 상식적인 질서나 윤리만으로도 일상이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전통적 체제나 질서가 사라지는 한편 새로운 질서는 검증받지 못하고 있다. 현대사회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익명성과 일상성을 들 수 있다. 익명성은 사건에 대해서 책임질 주체가 없다는 것이다. 산업사회의 거대한 조직은 개인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질서에 의해서 움직여진다. 여기에서는 인간의 감정이나 시비 선악의 개념이 끼어들 여지가 줄어든다. 그리고 조직 속의 개인 역시 하나의 톱니바퀴에 불과한데, 이것이 이른바 현대의 일상성이다.
문제는 개인적인 꿈들을 집단의 꿈이나 합의로 만드는데 있다. 현실적인 일상의 기능들을 조절하고 유지할 수 있는 조직의 틀로서 가장 쉽게 취할 수 있는 방법 가운데에 하나가 신보수 연합이다. 기존의 조직에 현대 운영기술만 도입한다면 불가능한 방법은 아니다.
다음으로 기대해 볼 수 있는 것이 반문화 운동인 종파 운동이다. 새로운 꿈을 찾는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