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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짚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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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가의 얼과 멋 - 편집실 1994년 07월 149호
파아란 하늘에는 하얀조각 구름이 한가롭게 흘러다니고, 구불구불 이어진 논에는 농부들이 몰를 내면서 파랗게 물들어 가고, 동네 물레방아와 세월을 함께 한 아름드리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는 만행의 여독에 걸망을 베게 삼아 밀짚 모자에 얼굴을 가린 스님이 고르게 숨을 쉰다. 한여름에도 열을 흡수하지 않는 밀짚 모자를 챙겨 들고 농촌 활동을 떠나는 젊은이들, 한 쪽 어깨에 짊어진 지게만큼이나 헤어지고 찌들은 밀짚 모자를 쓰고 들판으로 나가는 이 땅의 농부들, 여름 한철 화두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가 그 동안의 공부를 점검하려고 선지식을 찾아 만행을 떠나는 스님들도 밀짚 모자를 꼭 챙긴다. 농부들과 스님들이 쓰는 밀짚 모자가 생명력을 가지고 수십 년을 이어옴은 열을 받아들이지 않아 시원할 뿐만 아니라 우리 정서에 놀랄 만큼 깊이 베어 있기 때문이다. 밀짚 모자는 밀 농사가 끝난 뒤에 밀짚을 모아서 만든다. 밀짚 모자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호서의 강경과 영남의 안강에서 밀짚 모자를 처음 만든 것으로 짐작된다. 밀짚이 아닌 볏짚이나 보릿짚은 비를 맞으면 금방 늘어져서 모자 모양이 나지 않아 사용할 수가 없다. 묵직한 걸망에 밀짚 모자 눌러 쓰고 허벅지에 힘줄 돋우고 산문을 나서면 장부의 모습 그대로니 무엇이 걸릴 게 있을까. 산천 방방곡곡의 대궐 같은 사찰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