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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회의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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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4년 06월 148호
한눈 팔 수 없는 개혁
차분히 내리는 봄비로 여느 해보다 무거운 듯한 분위기 속에서 초파일 봉축 제등 행사를 치루었다. 봄비도 봄비지만 현재 한국불교가 직면한 현실적 문제로 올해의 초파일은 그리 가벼운 마음으로 치룰 여건이 아니었다. 시간을 마냥 끌 수만도 없는 제한 속에서 종단 개혁이라는 막중한 과제를 원만히 처리하여 차기 집행부로 이양해야 할 현재의 종단 집행부에게 걸려 있는 책임은 역대 어느 집행부보다 무겁다.
종단 집행부에게 걸려 있는 하중이 무거운 것에 비례하여 사대부중이 거는 기대는 그만큼 크나. 이제야말로 오랫동안 꼬일대로 꼬여 온 종단의 잘못된 점을 대수술 할 수 있는 기회이기에 대중은 상당히 큰 기대를 갖고 있다. 이번 기회에 종단을 올바로 세우지 못한다면 한국불교의 장래는 나락에서 헤어나지 못하리라는 강박감조차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기대가 높고, 개혁에 대한 강박감이 작용하는 반면 무엇 하나 제대로 개혁하지 못한 채 두루뭉실하게 처리하여 차기 집행부에 넘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만만치 않게 나오고 있다. 그런 우려의 근거는, 현재 개혁회의가 추진하고 있는 업무의 양이 많은 점을 감안 하더라도 두 달이나 되는 현 시점에서 아직까지 대중이 명확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개혁의 과정에서 제시되고 있지 않은 점이다. 구 총무원 체제를 옹호하여 종단을 부패하게 만들었던 해종 행위자에 대한 조사와 처벌이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처리속도나 그 대상이 애초 긴박했던 4월의 분위기와는 많은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해종 행위자 처벌이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고 결국 부패한 세력이 다시 득세하는 계기를 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갖게 한다. 해종 행위자에 대한 특별법까지 제정된 상황에서, 그들에 대한 폭넓은 조사와 처리는 종단을 개혁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조속하고 단호한 조치가 지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비단 해종 행위자에 대한 조치만이 아니다. 제도 개혁의 문제, 종회 구성의 원칙, 개혁의 일정 등이 지금쯤 대중에게 제시되어야 하고 또한 실행에 들어가야 한다. 뿐만 아니라 총무원과 근본적으로 차별성을 갖게 될 ‘자주화’의 실천 의지도 확고히 할 필요가 있다. 곧 권력에 예속되어 한국불교의 도덕성을 훼손시켜 왔던 지난 시기의 과오를 바로잡으려면 개혁 과정에서 나타난 현 정부의 공권력 만행에 대해 확실하게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 법난의 책임자 문제를 확실하게 처리하지 않은 채 차기 총무원으로 이양한다면 그것은 현 집행부의 책임 회피에 다름 아니다.
집행부는 산문 폐쇄에 대한 구체적인 시행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입장을 유보하고 있다. 몇 번에 걸쳐 산문 폐쇄를 한다고 했으나 이것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으므로 엄포용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감출 수 없다. 개혁회의 위상을 탄탄히 하고 정권이 불교를 경시하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하려면 현 집행부가 일관되고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다.

달라지는 구체적인 모습을 요구한다
초파일 봉축 행사에 개혁회의 상임위원장이자 총무원장인 탄성스님은 ‘광주민주화운동’을 거론하면서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런 장면을 한국불교의 개혁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일례로 받아들이고 있다.
두 달 남짓한 시기에 종단은 외형상 많은 변화를 보여 주고 있다. 총무원 청사가 변했고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 전과는 판이하게 변했다. 권위적이고 관료적인 소임자들 때문에 관공서보다 더욱 드나들기가 꺼려졌던 곳이 총무원이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대중의 여론을 수렴하여 종단 개혁에 반영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정책 수립을 위한 밤샘 토론도 다반사라 한다. 종단의 발전을 위해 무척 고무적인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그런 노력이 대중에게 구체적인 정책이나 일관된 집행으로 가시화되지 않으므로 대중의 궁금증이 생기고 있다. 각 교구 본사별 순화 공청회다 열린 마당을 통한 여론 수렴이다 또는 개혁회의의 업무에 대한 홍보보다 업무에 대한 홍보다 하여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으나 실제로는 어떤 정책이 얼마만한 골격으로 만들어지고 있으며 그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제대로 전달되고 있지는 않다.
개혁회의에서 대중에게 배포하고 있는 인쇄물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도 바로 그것이다.「불교 개혁의 길」등 지금까지 몇 종류의 홍보물이 나왔으나 그 내용은 한결같이 법난의 진상을 홍보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종단의 달라지는 방향 제시도 실려 있기는 하지만 지극히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물론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는 자연 인쇄물이니 그 내용도 자연히 개혁의 당위라든가 선언적 성격일 수밖에 없으나 이제는 이를 재고하여야 한다.
지난 3월 종단 개혁을 위한 구종법회 이전부터 우리가 대중에게 제시한 대안은 무엇인가. 종회의원의 겸직 반대, 의원직선, 권력이 소수에게 몰린 중앙집권 체제를 지방으로 분산하자는 것이었다. 그 가운데 권력 분산은 총무원으로 집약된 권력을 본사 단위로 대폭 이양하고 반드시 중앙에서 처리하여야 할 사안 곧 입법 활동, 행정의 총괄업무, 호계 업무 그리고 통일된 역경 사업 및 문화 포교의 관리들은 총무원이 담당하자는 안 이었다. 아울러 이미 마련된 대안에 첨가하여 사찰의 운영에서 ‘운영위원회’를 구성하여 재가 신도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종단 권력 구조에 대한 대안은 얼마쯤 여론의 합의가 이루어졌으나 정작 개혁회의는 이러한 대안을 실천으로 옮기는데 머뭇거리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권력의 분산이 기정 사실화되면 중앙에 쏠렸던 종단의 모순이 작은 단위로 쪼개져 지방에서 재현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심사숙고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째든 권력의 분산은 ‘개혁의 공약’이었다는 점을 상기하여 이 점에 대한 의구심을 없애야 한다.
다음으로 종회 구성 문제에 대해서도 명확히 입장을 밝혀야 한다. 다름이 아니라 재가자의 일부에서 주장하는 재가자 의원 문제와 비구니 종회의원 숫자 문제이다.
특히 재가자 참여 문제를 놓고 개혁회의 내부에서 일관된 견해를 마련하지 못한 채 시간을 끌고 있다보니 개혁을 위장한 부패 보수 세력도 이문제를 갖고 현재의 개혁회의를 음해하고 있음을 볼 때 입장의 정리는 시급하다. 재가자 내부문제로삼아 재가자 스스로 객관적인 대표기구를 만들 때까지 유보할 사항이 아니다. 개혁의 주요한 지표라고 믿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납득할 수 있는 개혁회의의 정책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이렇게 다양한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는 모습은 개혁의 여파가 어디까지 미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따라서 종회 구성의 원칙을 정립하여 대중에게 제시하여야 한다.
해종 행위자에 대한 조치가 다소 지연되고 있는것도 신중하게 고려할 문제에 속한다. 물론 과거 독선적인 권력 남용의 시절처럼 마구잡이로 처리하여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하여 너무 시간을 끌어서는 때를 놓칠 우려도 있다. 기회주의적인 속성을 갖고 있는 자들에게 시간을 준다는 것은 개혁의 시간을 아껴야할 우리에게 좋지 않은 일이다.


시간을 아껴야 한다.
격앙되었던 분위기가 가라앉으면서 종단 운영의 기본 방향이 어느 정도 자리잡아 가고 있으며 부패 보수세력의 반발도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지는 않다. 이제 개혁의 파장이 서서히 지방으로도 확산되고 있으며 다른 부문에서도 개혁을 위한 자체노력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승단의 문제인 비구니의 위상 문제 역시 새로운 환경에서의 개혁 노력이기에 발전적으로 진행될것으로 믿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전국신도회가 진통을 겪고 있으며 이와 맞물려 재가자의 새로운 조직도 꾸려지고 있다.
과도기구로써의 개혁회의는 많은 문제를 다루기보다는 가장 핵심적인 사안에 대한 명확한 정리로 개혁의 의미를 제도로 구현하여야 한다.
권력구조를 포함하여 종회 구성의 원칙, 해종 행위자에 대한 조치가 확실하게 처리되고 이러한 개혁 일정이 공개되어 대중이 스스로 참여하고 동시에 감시할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임무일 것이다. 이것은 지난 3월 하순부터 4월 중순까지 조계사를 굳건히 지킨 참여대중에 대한 개혁회의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자주적인 종단을 구축하려면 법난의 책임을 철저하게 추궁하는 일 또한 개혁회의의 중요한 업무이며 다시는 종단이 권력에 의해 간섭받는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다만 대중에게 공개된 법난대책 활동이 번복되고 바뀌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 개혁회의의 공신력을 떨어뜨리고 대중의 신뢰에 흠집을 내는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다른 정책에도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개혁회의에 부여된 시간은 마냥 늘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불교가 해결하여야 할 과제는 수미산에 버금간다. 그러므로 숱한 문제를 모두 풀려고 하다가는 시간과 노력을 생산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주변의 이러저러한 얘기를 모두 듣다가는 개혁의 가파른 길을 제대로 오르지 못한다. 대중의 힘으로 성취한 개혁의 고삐를 바로잡아 일관된 자세로 힘찬 전진을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