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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대형 사고에 숨겨진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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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김종찬 1994년 06월 148호
요즘의 우리 사회는 소란과 비극의 연속이다. 더구나 사건을 터졌다 하면 대형이고 잔혹스러운 특징을 갖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마치 미궁을 헤매듯 해결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불교계와 맞물린 상무대 사건을 비롯하여 국제 무대를 뒤흔들고 있는 북한핵 문제, 농촌을 유린하는 UR협상에서 농안법 파동 사태, 이런 것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곁을 맴돌며 혼란의 주범으로 작동하고 있다.
어이없는 사건도 많다. 국민적 관심을 한껏 모았던 엑스포 잔치 때는 공무원들이 치부하는 비리를 저질렀다. 더구나 비리를 총지휘한 사람은 장관으로 영전되엇다. 예비군 훈련장에서 젊은이가 어이없이 죽은 것도 미해결이며, 불량 레미콘에 의한 건축 비리는 마루리 문제가 제기되고 계속되고 있다. ‘고발’은 많은데 ‘해결’은 없는 것이다. 우리의 이러한 허점을 즐기기라도 하듯, 일본은 한국 침략에 대한 ‘사과’를 놓고 장난을 계속하고 있다. 얼마전에는 법무상이 또 망언을 했다. 비극적 사건이 연발하더니, 급기야 부모를 잔혹하게 살해한 희대의 패륜아 사건도 터졌다.
마치 누군가 비극을 더울 불거지게 만드는 것 같은 오늘의 현상은 엄밀하게 따져서 그 원인조차 제대로 규명된 것이 없다. 사건이 나면 떠드는 전문가들은 많다. 그러나 그들은 한결같이 윤리의 붕괴와 누구의 탓이라는 따위의 당위 명제에만 매달려 있다. 사회 병리를 진단하면서도 사실은 사회의 내부 변혁은 차단하는 것. 그것으로 이 같은 문제의 일단은 가닥을 잡을 수 있다. 곧 사건은 아무리 커지더라도 사회 구조에 변혁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여기에 접근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지난해 어처구니없이 수많은 인명을 앗아갔던 구포 무궁화호 열차 탈선 사고를 예로 보면 된다. 이 사고는 사실, 현 정권이 줄기차게 추진하고 있는 고도 산업사회 진입에 대해 일대 전환을 요구받을 충분한 근거가 된다.
첫째, 고도산업에 필수적인 응급 구호 체제가 우리 사회에서 그 동안 완벽하게 외면 당해 왔음을 적나라게 보여줬다. 그 때 비가 오는 사고 현장에서 앰브란스가 부족해 팔이 잘린 채 부상자가 길바닥에 누워 있는 비극이 있었다. 둘째, 고도화의 일환으로 추진되어 온 경부고속철도 사업에 회의가 생긴 것이다. 기간 산업의 핵이 철도의 철로가 허술한데 고속만을 강요하는 산업 구조 변경 시도는 무의미할 수 있다. 그 당시 수많은 전문가들이 나서서 이야기했지만, 이 둘은 어느 누구도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 사건 뒤에도 지하철 사고로 인한 교통 대란 사건은 계속 졌다. 모두가 현재의 철도 노후 상태, 철도 운영의 미성숙 등 기초적인 문제가 근원으로 지적된 사건이다. 이는 어디가 문제이고, 누구의 책임이며,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를 정확히 밝혀 주었다.
그렇지만 이런 근원은 사회 여론 형성에서 철저하게 외면 당했다. 그 결과는 지난해 여름의 서해 폐리호 침몰 사건으로 나타났다. 더 큰 비극이 터진 것이다. 이 때도 여론은 들끓었으나, 우리 사회 내부에 변화를 가져온 것은 없다.
이를 두고, 우리 사회에는 변화를 차단하는 일정 기류가 있다고 지적하기 쉽다. 서구 민주 사회는 사건이 터지면, 사건을 방치하기 위해 여론이 들끓고 정책이 변화하는 순서를 밟는다. 우리 사회에는 이런 정상 구조가 차단된 상태가 분명히 드러난 셈이다.
패륜아 사건도 마찬가지이다. 사건에 대해 수없이 발표된 패륜아 전문가의 진단에는 상식적인 것밖에 없다. 윤리 마비, 신세대의 체질 허약성, 부모 과보호, 무분별한 향락성 유학 문제 등이 고작이다.
사실은 이 문제가 던진 파장의 핵심은 부정한 돈 흐름을 사회가 차단하지 못한 데 있다. 의사란 직업이 치부의 수단이 되지도 못하며, 부모 자식간이라도 무조건 큰돈을 주고받을 수 없다.
서구사회가 블랙머니를 가장 큰 사회악으로 치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른바 자료 없는 돈, 출처 불명의 돈이 쓰여지면 사회 전체가 부패함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 공권력은 그것을 차단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때로는 그것 때문에 정권이 바뀌기도 한다. 그것이 공익의 기본권이고, 공권력이 국민 위에서는 기초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약상으로 출발한 살해범의 아버지가 한의사협회 간부가 되어 치부한 것이야말로 근원적인 사회 문제를 밝혀내는 지름길이다. 그리고 유학 보낸 아들이 돈을 물쓰듯하며 외화 불법 유출을 했으며, 미국 내에서 블랙머니를 썼으니 관세법 위반 및 세무조사 대상이고, 또 마약까지 손대었으니까 주 경찰 FBI 마약단속국 IRS(미연방국세청)등 모두에 걸린다.
만일 그것을 방기한 국가 공무원이 있다면, 직무유기로 고발되고 처벌 받아야 한다. 그것이사회가 책임지는 것이고, 병리 진단을 통해 사회가 건실해지는 정상 구조이다.
사실 사고, 사건이 연발하는 사회는 그 깊숙한 곳에서부터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이는 거꾸로 실질적인 변화 없이 대형 사고를 예방할 수 없음을 일깨워 준다.
더욱이 그 변화는 외피를 바꾸는 겉치레 행사에 그칠 경우 더욱 큰 불행을 예고한다. 실질적인 구조 조정을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또 위로부터의 임의 조정이 아니라, 당사자의 요구가 실질적으로 담보되어야만 구조 변혁이 가능함을 시사하고 있다.
개인이 변화를 체감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개인은 그 사회 안에서 책임있는 존재가 되고, 개인이 사회 구조에 밀접해 맞물리게 된다. 개혁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