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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깃불을 피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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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암 이야기 - 법장 1999년 08월 210호
저녁참이면 모깃불 놓을 풀을 베는 게 하루 일과의 끝이 됐다. 쑥덤불이 집 주위에 지천이어서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궁벽산촌에 혼자 살며 한철 소일로 꼭 지겨운 것만은 아니지만, 모깃불을 아무리 지성으로 피워도 모기떼의 극성은 여전하다. 등 뒤에서 보란 듯 물어 뜯는 대담함에는 별 도리가 없다.
이 많은 모기는 다 어디에서 왔을까. 해가 설핏하게 넘어가면 몰려드는 떼거리는 날로 감당하기 힘들었다. 덜된 집이나마 살려고 짐을 챙겨 들어온 것은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처음엔 모기의 위협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그랬기에 밤이 이슥토록 혼자 마당에 앉아 차를 마실 수 있었다. 마당에 굴러다니는 합판조각을 조악스럽게 잇대고 그 위에 대충 비닐장판을 덮어 씌워 식탁을 하나 만들어 놓았다. 그와 더불어 어울리게 만들어진 의자도 두어 개 있어 그런대로 기분을 낼 만했다. 어둠이 깃들면 바람을 피해 촛불을 여기저기 밝히고, 아무런 상념없이 찻물을 데우는 재미도 참 괜찮았다. 모처럼 만에 북적이던 대중으로부터 벗어난 홀가분함까지 즐긴달까. 꽉 짜여진 대중 생활에선 늘 아쉬웠던 것이 혼자만 가지고 즐기고 싶은 시간을 놓치는 것이었다.
정말 혼자만 가지고 싶던 시간과 분위기가 있었다. 어스름한 해거름녘, 저녁 공양마저 마치고 뒤란 툇마루쯤에서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즐기는 차를 사방이 어두워 올 때까지 마시고 그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있고 싶은 마음이었다. 거기에 정담을 나눌 수 있는 벗이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고. 그러나 아직 집이 정리되지 않아 그 마음은 접어두고 마당의 어줍잖은 식탁을 앞에 하고 그 기분을 흉내내 보려 했다. 그런데 괜찮던 그 기분도 며칠뿐, 처음엔 몰랐다.
무언가 위험스런 요소가 감지되긴 했지만, 물 맑고 산 맑은 이 곳에 설마 모기일까 싶어서 였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고 차츰 위협의 강도가 심해졌다. 쑥을 한 아름 베어다가 모깃불을 놓아보았다. 며칠은 견딜 만했다. 이 정도쯤이면 오랫동안 별러 왔던 기분이니까 하며 유지할 것 같았다. 그것마저도 잠시, 오래 버티며 즐길 시간을 주지 않았고, 어느 날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려야만 했다.
수십 년 동안 인척이 없던 산골에 느닷없이 맡아지는 사람 냄새와 불빛 때문인지 떼거리는 점차점차 몰려왔다. 극성도 날로 견딜 수 없이 심해져 모깃불만으로는 어림도 없게 되었다. 저녁 식탁주변에 모기향을 주렁주렁 메달고, 거기에 모깃불까지 피워 올리지만 아랑곳 않는다.
몇 십 년 만에 맞는 대목을 어찌 그냥 넘길 수 있겠느냐는 심산인가 보다. 내 힘으로 해볼 만큼 했지만 도저히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방으로 조용히 들어오는 방법밖에는. 더욱이 장마 전 벽과 천장마다 새까맣게 들러붙은 떼거리들에게 기겁을 하고 나서였다.
찌그러진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밤하늘에 쏟아놓은 무수한 별밭을 바라보는 뒤늦은 낭만도, 어린 날 이후 오랜만에 만났던 개울 건너에서 일렁이는 반딧불이를 쫓는 즐거움도 여름 한철 다 앗아가 버린 것 같다. 그 씁쓸한 기분보다 더한 아쉬움은 토요일이면 책가방을 등에 메고 쫄랑거리며 올라오던 승록이가 여름이 지나고 모기가 없어질 때까지 절대 못 온다며 떠난 것이다. 그놈이 한번씩 오지 않으면 이 산골이 더 적적할 텐데. 하긴 가끔 살림을 살피는 ㅅ보살도 정강이 아래가 온통 모기 물린 자국이라고 어른도 못 오겠다며 난리다. 그래도 이번 토요일엔 그놈이 하마 오겠지 하며 허실 삼이라도 쑥을 한 짐 지어다가 지성으로 모깃불을 피워 본다.
등 뒤에 모기떼는 윙윙거리는데.